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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상념] 고죽(孤竹)과 홍랑(?娘)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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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함경도 홍원 기생 홍랑이 사랑하는 연인 고죽 최경창을 떠나보낸 후 애절한 마음을 담아 쓴 시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처음 이 시를 배운 후, 홍랑의 고죽에 대한 애절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었지요. 그러다가 고죽의 자손들이 홍랑의 무덤을 고죽의 옆에 같이 모셔 두고, 지금까지 예를 갖춰 돌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 전에 두 연인의 무덤에 다녀왔습니다.
참! 무덤에 다녀온 얘기를 하기 전에 두 연인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들의 사랑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홍랑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홍원 기생이 됩니다. ‘홍랑’이란 이름도 요즘식으로 말하면 ‘미스 홍’이라 할 것이니, 사실 홍랑의 이름은 모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최경창(1539~1583)은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써, 백광훈,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불렸으며, 정철, 송익필, 백광홍, 김득신 등과 함께 조선 8대 문장가의 한 명으로 꼽힐 만큼 문재(文才)를 날렸습니다. 그런데 최경창의 호 고죽(孤竹)이 재미있네요. 외로운 대나무라... 최경창은 어릴 때부터 퉁소를 잘 불었답니다. 그래서 을묘왜란 당시 왜구가 영암에 침입하였을 때 최경창이 퉁소를 구슬프게 불자 - 당시 최경창은 처가가 있는 영암에 살았습니다. - 왜구들이 구슬픈 곡조에 갑자기 고향 생각이 나면서 싸울 의욕을 잃고 물러갔답니다. ‘고죽(孤竹)’이란 호도 그래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1573년 고죽은 북해평사로 발령이 나 여진족과의 접경지역인 경성으로 부임하던 중, 홍원에서 하룻밤을 머뭅니다. 이 때 고죽의 친구인 홍원부사가 멀리 전방으로 떠나가는 친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고죽과 홍랑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홍랑은 고죽 앞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자신이 평소 애송하던 고죽의 시를 낭송합니다. 이를 들으며 빙긋이 웃는 홍원부사. “여보게! 홍랑! 지금 자네가 읊고 있는 시를 지은 시인이 지금 바로 자네 앞에 앉아 있다네!” 홍랑은 평소 사모하던 시인이 바로 자기 앞에 앉아 있다고 하니,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겠지요. 그러나 정말로 바로 앞에 앉은 양반이 고죽임을 확인한 홍랑, 그리고 홍랑의 미모와 재주에 반한, 특히 자기 시를 애송하는 홍랑에 반한 고죽.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이제 단순한 호감에서 뜨거운 정염의 눈길로 변합니다.

밤 새워 시를 논하고, 육체의 문도 열었을 고죽과 홍랑, 날이 밝자 고죽은 예정대로 가던 길을 계속 갑니다. 그런데 하룻밤 정분을 나누고 떠나간 고죽의 영상은 날이 갈수록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뚜렷한 영상으로 홍랑의 가슴을 태웁니다. 그리하여 석 달여를 가슴 속에서 고죽을 지우지 못하고 끙끙 앓던 홍랑은 마침내 남자 혼자도 떠나기 어려운 그 험한 변방에의 길을, 그것도 한 겨울에 고죽을 찾아 떠납니다. 물론 미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남장을 하고, 얼굴에는 숯검댕이 칠을 하였겠지요. 어린 여인이 어느 날 자신이 있는 전방으로 불쑥 찾아왔을 때, 고죽의 놀라움은 어떻겠습니까? 그 놀라움은 곧 감동으로 변하였을 것이고, 아마 고죽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홍랑을 힘껏 자기 품안으로 끌어안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지만 그 달콤했던 시간은 너무나 짧게 끝납니다. 다음 해 봄이 오면서 고죽은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납니다. 너무나 짧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헤어져야 하는 고죽과 홍랑. 두 연인은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겠지만, 결국 이별의 아침은 밝아옵니다. 

그렇지만 고죽과 홍랑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같이 길을 떠났고, 마침내 홍랑으로선 더 이상 갈 수 없는 쌍성까지 옵니다. 함경도 기생 홍랑이 그 이상 넘어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거든요.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이별에 두 연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고죽의 모습이 더 이상 안 보일 때까지 흐르는 눈물과 함께 고죽을 전송한 홍랑은 발길을 돌립니다. 홍랑이 돌아오는 길에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은 저무는데 하늘도 이들 연인의 이별을 슬퍼했는지 눈물비를 내립니다. 이 때 비를 맞으며, 님을 생각하며 홍랑이 쓴 시가 바로 위의 시 입니다. ‘묏버들을 꺾어 님에게 보내노니, 고죽이여!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고죽과 헤어진 후 고죽과의 뜨거웠던 사랑을 가슴 한쪽에만 간직한 채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홍랑에게 2년 만에 멀리 한양의 고죽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은 홍랑의 가슴 한편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고죽이 중병으로 앓아누웠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홍랑은 함경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금기는 멀리 날려버리고 한양을 향하여 쉬지 않고 7일간 밤낮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고죽과 홍랑. 홍랑은 파리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고죽을 보자 정신없이 고죽의 품으로 뛰어들었겠지요. 꿈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연인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고죽도 처음에는 ‘이게 꿈이련가’ 하며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더듬으며 다시금 확인하여도 님은 분명 바로 앞에 있으니, 고죽은 그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병마를 쫓아버리고 일어납니다.

다시 만난 고죽과 홍랑. 이들의 사랑은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질투의 신은 이들의 행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고죽의 정적들이 임금에게 고죽이 한양에 들어올 수 없는 함경도 기생을, 그것도 명종비 인순왕후 국상(國喪) 기간에 데리고 살고 있다고, 이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합니다. 이들의 눈에는 두 연인의 진실한 사랑은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홍랑은 눈물을 뿌리며 홍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고, 고죽은 관직에서 파면당합니다.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연인 홍랑에게 고죽은 시를 건넵니다.


相看脈脈贈幽蘭 (상간맥맥증유란)
此去??幾日還 (차거천애기일환)
莫唱咸關舊時曲 (막창함관구시곡)
至今雲雨暗靑山 (지금운우암청산)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멈출 수 없는데, 떠나는 그대에게 유란을 주노라
이제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으랴
그대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오
지금까지도 청산은 비구름에 어둡기만 하나니

아! 이젠 두 연인은 영영 이별인가요? 그 후 홍랑은 고죽을 다시 보게 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무덤에 누워있는 고죽을 차가운 무덤 위로 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죽은 1582년 종성부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번에도 그의 임명에 시비 거는 사람들 때문에 부임 1년 만에 한양으로 돌아오다 객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당연히 홍랑도 이 소식을 들었겠지요? 홍랑으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홍랑은 결심합니다. 자기가 지켜주지 못한 연인이지만, 연인의 무덤가에서라도 연인을 지켜주겠다고...

이후 홍랑은 고죽의 무덤을 찾아가, 무덤 앞에 묘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합니다. 미모의 여인이 산속에 홀로 남아 시묘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속 검은 남정네들이 안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후환이 두려워도,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은 홍랑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그런 놈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면서 남정네들이 그런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아예 자기 얼굴을 긁어 버립니다. 자기 생명과도 같은 얼굴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죽은 연인의 옆에 있겠다는 홍랑의 각오. 세상에나! 전 이 대목에서 홍랑에게 깊이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랑이 이렇게 고죽의 무덤을 지킨 지 9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홍랑도 이제는 고죽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홍랑은 님의 분신인 양 고죽의 시집을 소중히 품에 안고 떠납니다. 이후 홍랑도 마침내 지상을 떠나 그리던 님의 곁으로 갔을 때에, 고죽의 자손들은 홍랑을 고죽의 발치에 묻어 주고, 예를 다해 모십니다.

이제 저도 두 연인이 묻혀 있는 파주시 다율동 514-9을 찾아갑니다.(원래 묘지는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는데, 1969년 군용지로 수용되면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오기 전에 청석교회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을 숙지하고 왔는데, 청석교회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일대가 재개발 되면서 마을의 사람들은 다 떠나고, 비어 있는 집들은 이리 저리 부서지고 금이 가고 있습니다. 버려진 마을길을 지나 산 밑의 고죽과 홍랑에게 가려니 사람들이 떠난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개들이 다가와 사납게 짖어댑니다. “아서라! 나는 지금 420여 년 전의 연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개들을 살살 달래며 마을을 벗어나, 마침내 고죽과 홍랑 앞에 섭니다. 떠나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 고죽의 후손들도 떠났는가? 사람의 손길을 떠난 무덤 위에선 제멋대로 커버린 풀들만 바람에 춤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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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바라보노라니 고죽은 본부인과 같이 묻혀 있고, 그 아래에 홍랑이 홀로 묻혀있군요. 비석을 보니 홍랑에게 지아비의 마음의 자리를 내준 본부인은 선산 임씨이네요. 홍랑의 무덤 오른쪽 앞으로는 홍랑과 고죽의 시를 앞뒤로 새긴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전국 국어국문학 시가비 건립동호회에서 세운 비입니다. 시비에는 당연히 서두에서 인용한 홍랑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고죽의 시는 홍랑의 시를 한시로 번역한 번방곡(飜方曲)이 새겨져 있네요. 이왕이면 고죽이 홍랑을 홍원으로 보내며 쓴 시를 여기다 새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잠시 이들 연인들 앞에서 묵념을 합니다. “고죽 선생! 홍랑 아가씨! 당신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찾아 420년 뒤의 후손이 이렇게 당신들 앞에 섰습니다. 후손들에게 사랑의 숭고함을 깨닫게 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 주신 님들이여! 이제 저는 떠나나, 당신들의 사랑은 제 뒤의 후손들에게도 계속적인 존경과 상상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무덤가를 떠나 다시금 스산한 바람만 스치고 지나가는 마을 앞에서 고죽과 홍랑을 되돌아봅니다. “다시 보고 싶은 님들! 그리운 이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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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
사법시험 제23회(연수원 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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