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학계에서 ‘연구실적’을 중시한다는 점은 굳이 학계진출을 꿈꾸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실적’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학위취득’을 목표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학위논문 작성’이라는 숙제는 당사자에게는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학위논문도 연구실적도 모두 ‘양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문화가 형성되다 보니, 쉽게 남의 것을 ‘일단’ 가져다 쓰고 보는 표절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컷 앤 페이스트(cut and paste)’식의 학위논문 및 연구논문 작성이 자행되곤 했으나, 최근 논문표절에 관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면서 연구윤리의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어 왔다. 대학별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조직되고, 자정(自?)의 움직임도 활발해 보인다. 필자도 서울 유명대학의 교수가 동 대학의 연구윤리 위반으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회부된 사안에 관한 자문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당 사안은 ‘자기논문의 중복게재’임에도 상당히 엄격하고 심각하게 다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표절론』은 표절과 저작권에 관한 전문적인 서적임에도 일반 교양서적을 읽는 것과 같은 속도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만큼 저작권 혹은 표절에 관한 책이나 논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잘 다듬어진 평이한 문장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저작권에 관한 동양적 전통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지식보호의 전통이 서양과 같이 ‘권리’로서 발전해 오지 않았을 뿐 동양에서도 있어 왔다는 점을 여러 역사적인 문헌을 제시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흥미롭다. 또한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모태인 일본 저작권법이 어떤 역사적 배경하에 태동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 부분도 재미있다.
‘표절’을 주제로 한 책인 만큼 『표절론』의 각주(인용부분)만 살펴봐도 저자가 심혈을 기울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법학서뿐만 아니라 철학서, 역사서, 문학서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헌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 솟아난다. ‘인용’의 형식도 정확성은 물론 독자를 위한 배려심까지 깃들여 있기에 가히 ‘인용’의 교과서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다. 특히 원출처 인용에 관한 문제와 보도기사를 인용할 때 글을 쓴 기자(혹은 신문사)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인용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
연구논문과 학위논문을 비롯한 모든 글쓰기는 창작의 고통이 수반되는 힘든 과정이다. 남의 것을 빌려쓰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때마다 학문과 문화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소명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후배 변호사로서 선배 변호사들이 쌓아올린 문화적 업적에 부가가치를 더하여 다시 우리들의 후배들에게 물려주고자 한다면 보다 진정성 있는 정직한 글쓰기를 하여야 하지 않은지 마음을 다지며 자세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현지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2회(연수원 33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