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적 권리의무 존재 여부를 가리는 가장 두드러진 장면인 민사소송은 결국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로 하는 싸움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싸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싸움은 폭력이나 집단의 은근한 심리적 압력을 동원하여 하는 것이 아니고 드러내놓고 말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욕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하는 자원이 부족한 한, 세상살이에는 이러저러한 싸움이 없을 수 없다(양창수,『민법입문(초판3쇄)』, 127쪽)”
양창수 전 대법관의 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법정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말로 하는 싸움이 난무하는 곳이다. 때론 몸보다 말로 공격하는 것이 더 날카로운 경우도 많다. 당연히 당하는 쪽은 생채기가 남게 된다.
변호사법 제24조 제1항은 “변호사는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변호사윤리장전에는 “변호사는 성실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명예와 품위를 보전한다”, 윤리규칙에는 “변호사는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품위를 해하거나 공공복리에 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같은 취지의 규정이 있다. 마땅히 변호사는 법정에서든, 그 밖의 장소에서든 의뢰인에게 그리고 상대방 당사자에게 변호사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긍지와 명예를 소중히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법정 공격의 예비, 탐색 단계인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비속어나 경멸적인 표현은 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면에서 상대방을 가르치려는 듯한 표현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변호사끼리의 예의는 아닌 것 같다.
“승부의 첫째 조건은 뭐니뭐니 해도 기백이다. 표정도 자세도 행동도 자신만만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기가 죽지 않아야 한다. 쫄았다는 걸 들키는 순간 상대방의 기세가 등등해진다(조훈현,『고수의 생각법』, 104쪽)”
조훈현 기사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법정에서 자신감 있는 자세로 변론을 하는 변호사를 보면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저절로 존경심이 들 뿐 아니라, 재판을 마친 후에도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반면 거친 표현을 써가며 큰소리로 윽박지르거나 변론내용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발언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변호사는 두고두고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의뢰인이 보고 있더라도, 고액의 성공보수가 걸려있더라도, 변호사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흥분하여 큰소리로 면박을 주는 행동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의 법률적 대리인이면서 한편으론 사건당사자들 간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충돌을 한 차례 여과하여, 그들이 법률적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의뢰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변론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별개로 의뢰인의 격앙된 감정을 고스란히 상대방 변호사에게 드러내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예와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법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부터 반성해야 하지만 말이다.
정상희 변호사
사법시험 제50회(연수원 40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