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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갑과 을의 관계
교육청 법무팀 변호사로서의 역할 

필자는 서울시교육청 법무팀 7년차 변호사이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교육청 법무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주변에선 ‘교육청에서 변호사가 할 일이 뭐가 있어?’라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흔히들 교육계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 별다른 송사 같은 건 없을 거라는 인식 때문이리라. 

하지만 교육청은 방대한 조직을 거느린 만큼 수많은 소송의 당사자로서 크고 작은 민사사건은 물론, 수많은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교육부 장관이나 시장과 교육감의 권한 행사 관련 기관소송 및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변호사가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필자는 일반 사무실의 변호사였다면 접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되었다. 

학교안전사고로 인해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지도 감독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 다친 학생 입장이 아니라 지도 감독의무가 있는 학교 입장에서 변론할 때 학부모의 원망을 듣기도 하지만, SH공사가 제기한 토지 무단점유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해 오히려 반대로 시효취득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공유재산을 확보하는 성과를 이루었을 때는 보람도 있었다. 


학교용지 기부채납 무효 소송 사건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학교설립과 관계된 사건을 소개해 보자면, 교육청은 학교수용계획에 따라 학교설립을 하는데 재개발사업을 하면서 학교용지에 대한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기부채납의 법적 성격은 증여로서, 행정기관에 대한 기부채납이 단순 선의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만은 없을 것인데 고액 대상물의 행정기관에 대한 기부채납은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재개발사업을 하는 경우「학교용지확보에 관한 특례법」상 사업시행자는 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수립하는 계획에 학교용지의 조성·개발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켜야 하고, 사업시행자가 학교용지를 개발 또는 확보하려는 때에는 교육감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한편, 학교용지를 기부채납하면 학교용지 부담금을 면제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조합이 관련 법령에 따라 학교용지를 기부채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사업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는 교육청이 소위 ‘갑질’을 하여 어쩔 수 없이 기부채납을 한 것이라며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행위와 제104조 불공정한행위 등을 이유로 기부채납의 무효를 주장한 사건이 있었다. 

조합 입장에서 기부채납을 하는 배경은, 많은 금융비용을 끌어들여 사업을 진행하고 분양 후 이를 갚는 형식이기 때문에 이자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사업진행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학교용지 부담금을 구청에 납부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이 되어 자치단체 내 학교 전체에 분산되어 사용되고 조합과 관련된 학교에 직접 사용될 가능성은 희박한바, 기부채납하여 조합의 부동산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당 학교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조합에 유리하므로 기부채납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청 입장에서는 계약의 당사자로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학교용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담당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학교용지를 기부채납하여 학교용지 부담금을 면제받고도 이후 분양하고 정산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때서야 뒤늦게 교육청이 기부채납을 강요했다며 이는 갑의 횡포이며 조합은 궁박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기부채납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약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교육청이 반사회질서적인 계약을 강요하거나 불공정 행위를 하였다 할 수 없어 원고 조합의 청구는 기각되었지만, 철저히 이해타산을 따져 기부채납을 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뒤늦게 기부채납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외형상 행정기관이 권력기관으로 보이는 점을 이용하여,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갑의 횡포로 인한 갑질 논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재판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것이 엿보여 씁쓸하였다. 

이 사건 외에 학교용지를 교환하거나 매매하는 경우에도 사업이 마무리되면 처음에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애쓰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양한 이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 당사자 중 어느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더욱 원할 수 있고,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시일에 쫓기는 나름의 이유로 약자적 지위에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일방의 사정일 뿐이므로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계약을 한 이상 계약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지 이를 두고 강자인 갑과 약자인 을의 관계로 몰아갈 일은 아니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갑과 을 

계약서에서 보통 당사자는 갑과 을로 칭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사이엔가 ‘갑’은 보다 우위에서 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강자를, ‘을’은 갑의 주도에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약자를 표현하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약자를 항상 을이라고 하고 강자를 항상 갑이라고 해 왔다. 물론 을에 대한 보호는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거나 어느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갑인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을이 되기도 하며, 실제로는 아니면서 제3자에게 보여지기 위해 갑 또는 을인 척 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부적절하고 불편한 이야기가, 마땅히 전제가 되어야 하는 계약 주체 간 기본적인 평등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적어도 재판에서만은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기본 전제 앞에 완벽한 갑도 완벽한 을도 없는 관계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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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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