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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인문학두드림] 기억 속의 이름, 아처 영(我始 榮)
이번 호는 인문, 문화, 예술의 주제라기보다는, 법조인들께 익숙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2013년에 처음 필자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 보임 받아 갔을 때,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특히, 이 사건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나 관련법 개정으로 제조사와 유통 · 판매사 등의 회사에 대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의사결정에 관여한 자나 행위자 등은 당연할 것일진대, 피해자들에 대한 완전한 보상과 행위에 대한 적절한 형사책임 추궁을 위해서는 법인의 형사 · 민사책임을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검찰수사까지 벌어졌으니만큼, 앞으로 이 사건에 있어 법률가들의 치열한 법리 구현과 피해의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이런 사건에 관하여, 작금의 법률가들이 당연하게(?) 접근하고 있는 법인의 본질과 그 책임에 있어 기억할 누군가가 있다! 

기억 속의 이름, 아처 영. 법인의 본질과 책임에 관하여 선구적으로 논의를 제시했던 그 아처 영(我始 榮, 1897. 4. 1. ~ 1973. 10. 21.) 교수다. 곽윤직 교수의 민법 책을 접했던 법학도라면, 아처 영이라는 이름은 참 낯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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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교수는 일본 민법학의 태두로서 존경을 받는 인물이고 현대 민사법의 이론적인 체계를 만들어 놓은 인물로 알려져도 있다. 특히, 곽윤직 교수의 책에서 크게 소개되었던 “법인실재설”의 주장자로 잘 알려져 있다. 법인이 사법체계에서 자연인처럼 실제로 존재하고 행위하며 그 책임을 부담한다는 이론은 꽤 신선한 것이었다. 
아처 교수의 법인실재설(사회적가치설)은 ‘사법(私法)에서 법인이 무엇이고 왜 사법상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해 놓고 있었다. 유독 아처 교수는 법인(회사,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앞으로 법인이라는 존재가 자연인처럼 행위하고 그 책임을 부담하는 존재가 될 것을 예측했던 것 같다. 이외에도 그는 일본이 현대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근대에서 통용된 ‘사적자치(私的自治)’라는 불변(?)의 원리를 ‘공공의 복지’를 위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를 설파했고 기존에 물권 위주의 권리관계가 차차 채권 우위로 변화할 것을 예견했다. 
실제로 불과 몇십 년이 지나지 않아, 아처 박사는 수많은 법률관계 속에서 자연인보다는 법인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을 목도했다. 자연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법인은 거대하게 성장했고 마치 자연인처럼 의사를 표시하고 무수히 많은 법률행위를 주도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사법(私法)체계에서 법인이 실재하고 있다는 점과 법인의 법률행위(법적 활동)가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인을 대체하는 법인의 진격을 예견했던 아처 교수께서 거대 회사 · 법인의 폭주를 봤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가 다수의 자연인들이 법인의 불법행위에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Damages)나 집단소송제도(Class Action)를 목도했다면 어땠을까? 특히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고는 어떤 생각을 술회하셨을까? 법인의 존재와 본질을 탐구하셨던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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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도 오랜만에 기억 속의 이름을 꺼냈다. 아처 영 교수의 저서인 『민법안내-사법의 길잡이』, 『민법안내-민법총칙』이라는 책은 오랜만에 읽어도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민법의 입문서일지라도, 사법(私法)에 관하여 풍부한 이해와 농밀한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노교수의 편안한 강의를 듣는 것처럼, 그의 저서는 생생하게 들릴뿐더러 명쾌한 선견을 전해주고 있었다.

기억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이름, 아처영. 문장문장마다 활기가 넘치는 그의 호쾌한 글귀를 읽어가다 보면, 법조인으로서 생각할 거리도 많아지고 글쓰기에 배울 점이 많다. 
아처 교수의 호쾌하고도 장대한 이론을 들여다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인용과 주석달기에 주력하는 논고보다는 사회를 아우르는 넓은 통찰로써 선견(先見)을 내놓는 호탕한 발제가 많아지게 되리라 기대한다.

我始 榮(아처영, 와가쓰마 사까에)
1897. 4. 1. ~ 1973. 10. 21. 민법학자. 도쿄대학교 법학박사, 도쿄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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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1897년 :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에서 출생
1914년 : 요네자와중학교졸업
1917년 : 제일고등학교 졸업
1919년 :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1920년 :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1922년 :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조교수
1927년 : 도쿄제국대학 교수
1945년 :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학장
1946년 : 귀족원의원
1949년 : 일본학사원 회원, 제1기, 제2기 일본학술회의부회장
1957년 : 도쿄대학 명예교수(정년퇴직)
1961년 : 법학박사(도쿄대학)
1964년 : 문화훈장수장
1973년 : 사망. 훈1등 욱일대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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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입법조사처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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