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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최소한의 기쁨이 변호사를 하는 최대의 이유
2015년 4월 16일 아침. 카카오톡 알림이 계속 울려댄다.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을 하던 강모 어머니가 2013년 11월 19일 단장면 동화전마을 96번 송전탑 현장 진입로 입구에서 경찰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던 사건의 무죄판결을 축하하는 메시지였다. 이 날이 나에게는 변호사로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창녕군에 있는 변전소로 수송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가 건설한 밀양 송전탑. 마을 주민들은 2005년경부터 싸움을 계속해 왔고, 이러한 저항은 지역 어르신의 분신 및 음독자살이라는 비극적인 흔적을 남긴 채 아직도 진행 중이다. 

평소 환경소송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밀양 송전탑 사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14년 6월에 이루어진 행정대집행 현장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변호사님들과 ‘인권침해감시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함께하였다. 

대집행 현장에서 느낀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장을 들고 현장에 온 경찰, 공무원, 한전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마치 불도저 같았고, ‘사람을 끌어내는’ 모습이란 것이 그렇게 처참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등에 ‘인권침해감시’라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서있는 나의 존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합법적’인 강제 집행절차에 저항한 죄로 연행되는 주민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서울로 돌아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강모 어머니에 대한 공소가 제기되었고 나는 변호인으로서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공소사실은 송전탑 부지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던 피고인이 그녀의 손발을 잡고 길옆으로 들어내려는 경찰에 저항하면서 버티던 중 여경의 얼굴을 발로 차 폭행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검사가 신청한 증거는 피해자인 여경 및 동료 경찰 2명의 진술조서,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 파일 등이었다. 

당시 검사는 위 동영상에 대한 열람·등사를 거부했고, 나는 법원에 대한 열람·등사허용신청 절차를 진행한 후에야 동영상을 받아볼 수 있었다. 여느 사건처럼 적어도 강모 어머니가 여경을 발로 차는 장면 정도는 찍혀있을 거라 생각했고, 발로 차는 행위에 고의가 없거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전형적인 변론계획을 세워두고 동영상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동영상을 아무리 봐도 발로 차는 장면은 없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느리게 재생해 보기도 했지만 명확히 발로 차는 모습은 찍혀 있지 않았다. 희망을 갖고 증인신문 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바탕으로 동료 경찰인 목격자들이 보고 들은 내용을 꼼꼼하게 체크하였는데, 증인신문이 진행될수록 피해자가 진술한 경험과 이를 옆에서 보았다는 동료들의 구체적 진술들이 엇갈리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 검증절차에서 재생한 동영상을 보고 검사에게 어떤 장면을 폭행의 증거로 하고자 함인지 묻는 판사의 질문에 나는 무죄 판결을 직감하였다. 

하지만, 어떤 재판이든 선고가 나기 전까지, 아니 확정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변호사의 숙명인가 보다. 선고기일 전날 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았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였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강ㅇㅇ 어머니 무죄!”라는 메시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진행한 사건의 결과를 보고 여러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만큼 가슴 벅찬 장면은 없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재판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긴장과 피로가 현장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함께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공권력의 적절한 집행은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행위의 처벌은 단호하고 강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행이 ‘공공’으로 불리는 타인 내지는 특정 집단을 위한 사업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자들에 대한 것일 때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합법적 절차에 따른 집행의 정당성을 일응 인정해야 함을 알지만, 그 ‘합법’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의를 수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마저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사태를 방관한다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손은 누가 잡아줄 수 있을까? 

그 중간지점에 서서 손 잡아줄 사람은 분명 필요하고, 그렇게 잡은 손으로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일부에라도 동참하는 것이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임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해준 사건이었다. 

모든 사건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상치 못한 판결에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도 있지만, 변호사 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은 힘든 와중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각자의 꿀 같은 경험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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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화 변호사 
사법시험 52회(연수원 42기)
법무법인 제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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