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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법조인의 조언] 전현희 국회의원 인터뷰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은 기존 지역주의와 계급주의 공식이 깨진 한국 정치의 발전상을 목도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러한 돌풍을 이끈 주역 중 하나가 강남에서 24년 만에 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전현희 의원이다. 의원님을 뵙기 위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전현희 의원님의 사법연수원 은사였던 이선희 양육비이행관리원장님을 우연히 뵙게 되어 같이 전현희 의원실에 동행하여 당선 축하인사도 나누고 전 의원님의 사법연수원 시절의 모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선희 원장님에 따르면 전 의원님께서는 연수원 시절에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정치를 한다는 소식이 매우 의외였고 걱정도 했었지만, 늘 한결같고 겸손하고 열정을 지닌 멋진 정치인이 되어서 너무 기쁘시다는 소감을 전해주셨다. 

[인터뷰/정리 : 이지은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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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민으로서 지역에서 굉장히 어려운 선거를 치르신 것을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각오는 어떠하신가요? 

지금의 각오는 대한민국 강남지역의 주민들이, 유권자들께서 지지해 주신 성원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자 공약준수를 숙제 하듯이 할 것이고,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 이번 선거결과는 지역이나 계급에 따른 예견된 묻지 마 당선이 아니었고, 이제 유권자들은 어떤 분이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지, 누가 훌륭한 인물이고 좋은 정책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정치선진화를 향한 변화의 물꼬를 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역주민들과 최대한 소통하고 헌신하면서 이러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강남이라는 지역은 기존 여당의 아성이 공고한 지역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신 것인지요?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스스로도 감지하실 수 있었습니까?

제가 치과의사로 사법시험을 합격한 최초의 변호사가 된 것이 96년도의 일입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쓸데없는 도전을 벌인다, 10년을 해도 어려울 수 있고 잘못하면 폐인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당시 저는 갓난아기가 있는 30대 초반의 워킹 맘이었고, 그 당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남편이 있었기에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 꿈이었던 변호사가 꼭 되고 싶었고, 치과의사를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남는 시간에만 고시를 준비하면 안 될 것 같아 배수진을 치고 다 던지고 도전을 하였습니다. 꼭 합격한다는 생각은 못 했지만,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고, 하다 보니 2년 반 만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이번 도전도 당시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당선된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후회 없이 정말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도 11월 경 출마선언을 하고 동네 행사 등에 참여하면서 유권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강남의 동네행사는 대부분 관변단체 중심으로 열립니다. 이러한 행사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므로 선거운동에는 굉장히 중요한 곳입니다. 행사장에는 수십, 수백 명이 있지만 분위기는 여권텃밭강남의 분위기상 철저히 여당 중심이고 야당 출신은 얼씬도 할 수 없는 배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낸 저이지만 행사 주최 측에서 냉대를 하면서 저를 소개도 안 시켜주고 쫓겨나기 일쑤라 저를 알릴 방법은 제가 개인적으로 한 명씩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을 만나면서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저를 알리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여러 행사에서 불청객으로 취급당하고 쫓겨나면 저도 사람인지라 정말 다시는 안 가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유권자 분들께 정성을 다하며 계속 인사를 드렸습니다. 서러움에 뒤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꾸준하게 지역행사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교 앞, 조기 축구회, 스포츠센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인사도 하고 동네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면서 몇 달을 지내다보니 차츰차츰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명함을 10장을 받았다고 하실 정도로 자주 인사드리고 보니 저를 아는 사람들이 차츰 많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주민들께서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게 다음 행사는 어디 있다면서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늘어났습니다. 강남 주민들께 정성과 진심을 다해 유권자들께서 저를 좋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니 차츰 제가 너무 열심히 잘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당선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보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도록 겸손하게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좋게 보아주신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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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강남주민들께 의원님이 가지고 계신 개인적 역량이나 매력도 크게 어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의 매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치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동네 학부형 여러분들께서 자녀들을 데리고 저를 만나러 방문하신 적이 계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멘토로서 좋은 이야기를 부탁하러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아파트 이웃 주민 한 분은 제 차에 포스트 잇을 붙여 저 같은 멋진 이웃을 두어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메시지를 남기신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잘나거나 매력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제가 생각하는 제 장점은 반전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치과의사, 변호사라는 커리어를 보면 차갑고 도도하거나 깍쟁이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많은데, 실제 만나 보면 정반대로 겸손하고 편안하고 따뜻하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제 좌우명이 변하지 말자는 것인데 쉽지 않지만 순수함을 지키고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등원하신 후 19대를 쉬시고 20대에 다시 등원하신 것인데, 쉬시는 동안 혹시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은 없으셨나요?

제가 16대와 17대 국회에서 당시 여권을 비롯해 여야 모두에게 영입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고 변호사로서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영입 제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가 국회에 등원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당시 야당에 비례대표신청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정치입문의 의미는 단순히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9대 선거에서도 제가 강남에서 정동영 의원과 경선에서 탈락한 후 이후 당에서 구제를 위해 다른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경선 탈락 후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역주민과의 약속에 어긋난다는 생각으로 불출마를 했습니다. 단지 국회의원이 하고 싶고 그러한 자리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전략공천을 고맙게 수용했겠지만, 저는 제가 지키고자 하는 정치의 원칙과 유권자와 국민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불출마 이후 4년 동안 불안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쉽게 당선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정치문화 변화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강남에 도전한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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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의원님의 강남 당선으로 정치변화의 바람의 단초가 되셨고,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었는데요, 사람들이 의원님은 경상도 출신이고, 직업이나 거주지가 강남이라는 조건 등으로 쉽게 현재 야당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데 왜 야당을 택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는지요?

제가 정치입문을 결심하면서 정당을 선택해야 했는데, 어느 당에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보고 경상도 사람이 왜 호남당으로 가냐는 의문도 가졌지만, 저는 그러한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제가 정치를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시작한 이상 정치를 제 스스로 명예를 높이는 수단이나 권력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모순된 세상을 바꾸거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다 덜 가지고 어려운 사람에게 제 능력을 나누고 국민에게 행복을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당인 민주당을 선택했습니다. 

국회에 상당히 많은 법조인 출신이 진출해 계신데,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변호사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현재 변호사들 중에 선출직인 국회의원으로 입법부에 진출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젊은 변호사들 상당한 수가 의원 보좌진으로서 활동하고 있고,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변호사들로서는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므로 입법정책 단계에서 변호사로서의 전문성을 가지고 정책과 법을 만드는 보좌진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좌진의 역할이라는 것은 변호사로서 법률전문성뿐만 아니라 팔방미인으로서 여러 기능을 수행하여야 하며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화되어 과거 법조인으로서 명망을 인정받아 정치에 발탁되던 시대는 지났고, 국민들과 가까운 지방자치나 생활정치를 하면서 정치권으로 입문하는 시대로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변호사회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여러 다양한 정치참여 방식과 관련된 변호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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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전관예우 문제로 법조불신이 심각한 상황인데, 전관 출신이 아닌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전관예우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할 당시 전관예우가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당연히 이길 것 같았던 사건들 중에서 다른 고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가끔 겪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해 보고, 법을 적용하는 현장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전관예우는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존중을 위해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병폐입니다. 법조계 스스로의 자정노력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저를 응원해 주신 선배동료후배 변호사님들께 실망드리지 않고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늘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현희 국회의원 주요 약력
- 1964년 경남 통영 출생/ 서울대 치과대학, 고려대 법무대학원 졸업 
-(현) 제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남을) 
-(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현) 더불어민주당 전국직능대표자회의 총괄본부장 
-(전)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 비례대표) 
-(전) 인천아시안게임 저탄소친환경위원장 
-(전) 치과의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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