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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불가능한 숲

 불가능한 숲

박지혜

그는 흐린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이상한 빛이 감돌았다. 빛이 가득한 실내는 어쩐지 이상했다. 아무것도 예감할 수 없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불안해도 괜찮았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그를 보고 있었다. 신비와 우아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뭔가 신비하고 우아해보였다. 조금 이상하지만 무언가 선명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들이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 이상한 빛이 흐르는 실내. 이건 꿈일지도 몰라. 그래 이건 아마 꿈일 거야. 그곳에서 그는 편안해보였다. 그의 책 읽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의 주위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졌다. 서늘하고 따듯한. 공포를 누르는 우아함이었다. 불가능한 숲 불가능한 숲. 그곳에는 기억 저편의 기억들이 흐르겠지. 푸른 집이 타오르고 검은 새가 날아다니고 마편초 향이 가득하기도 하겠지. 불가능한 숲에서는 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끝없이 예감이 흘렀다. 여름밤에 꾸는 여름의 꿈처럼. 여름밤에 걸어가는 여름의 언어처럼. 늘 다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가능한 숲에서는 비로소 말을 잃고 다른 말들이 각자의 춤을 추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있는 그의 주위로 이상한 빛이 감돌았다. 그건 그냥 빛이겠지만 단지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상한 빛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한참 그를 보고 있었다.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문득 아이들은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불가능한 숲이 되고 있었다.


제라늄에 물을 주었다. 이제 밖은 어둡다. 모모라 마신다. 모모라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이름이다. 나는 커피를 무척 좋아하고 이 문장을 좋아한다. 모모라 마신다. 예가체프 마신다. 시다모 마신다. 게이샤 마신다. 이 문장은 아무리 써도 좋다. 읽을 때도 좋다. 내가 정확하고 단순한 문장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단문을 좋아하는 건 틀림없다. 나는 온종일 문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이런저런 매일 하는 일에 대한 생각도 하지만, 주로 문장이나 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생각할지, 왜 그런 건지, 생각하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행위로 나는 모종의 훈련을 하는 것이다. 

율마에 물을 주었다. 점점 모든 설명의 덧없음을 느낀다. 설명 없이 설명하고 있는 문장을 생각한다. 설명의 불가능성을 향한 문장을 생각한다. 침묵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환기시키는 문장을 생각한다. 나는 어떤 형식을 찾고 있다. 모든 것에 얼마나 형식이 중요한지 예전엔 잘 몰랐었다. 나는 악기를 전공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악기를 다루는 훈련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을 조금 무시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형식은 꽤 중요하고, 간혹 내용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형식보다 앞서는 무엇, 그 무엇에 한없이 끌린다. 끝끝내 도달하지 못할 그 무엇이겠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감각과도 비슷한 것이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멜라니고무나무에 물을 주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내내 말하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향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과 내일과 내일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누군가는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가끔은 너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름답고 기이한 노랫소리에 홀려 따라간 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다. 그것과, 그곳을, 불가능한 숲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곳엔 입구가 없다. 그곳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고 한다. 마치 일요일 오후의 빛처럼.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처럼. 결정적인 것들. 비록 그것이 한낱 꿈이라고 해도. 아무리 허망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가 아름다움을 잊는다면, 이 세계에 미래는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합의는 불가능하다. 무엇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잡을 수 없는 것을 향해 다가가면 갈수록, 지워지고 사라지는 존재들. 모든 것을 잊고 아름다움에 무리하는 사람들. 그들은 때로는 들뜬 모습으로, 때로는 쓸쓸한 차분함으로, 때로는 평범한 일상으로 등장한다. 불가능한 숲. 그곳엔 입구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숲이 되었다가, 아득한 언덕이 되었다가, 홀로 앉아있는 책상이었다가, 지표를 잃고 나선을 그리다가, 당신과 손잡고 걸어가는 길이었다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식탁이었다가, 마주 대하여 나누는 이야기가 된다. 묵묵히 걸어가다 맴돌다가 반복하며, 없는 길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미선나무에 물을 주었다. 식물에 물을 줄 때 생기는 일정한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선명한 몸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무엇인가. 특별한 실체. 알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그것의 통로에서, 흐르는, 어떤 실체. 그것은 사실 흐릿하지 않다. 나는 그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쓴다. 문장과 같이 걸어가 본다. 걸어가다 멈춘다. 그곳에서 다시 생각한다. 자주 울적하고 자주 신나게.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한 채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아무리 바보 같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움직일 것이다. 분명한 화초. 분명한 커피 잔. 분명한 이불. 분명한 책들. 분명한 손가락. 분명한 손짓. 분명한 눈길. 분명한 여름. 

마리노라벤더에 물을 주었다. 너는 내게 온실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이미 여러 온실을 그리고 있다. 온실에 들여놓을 식물들과 함께. 이런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다. 나는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가.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식물의 이름들과, 온실이 생긴다면 들여놓을 식물의 이름들로만 두 페이지를 쓰고 싶다. 그 글씨들은, 그 종이는,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기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고 있지 않다. 과감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더 자주 과감해져도 좋을 텐데. 설마 그런 글을 누가 좋아할까 걱정 때문인가. 아니면 섣부른 실험이라고 누가 오해할까 봐 싫은가. 무엇이 나의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하는가. 나는 쉽게 공감을 얻으려 하지 않고, 소통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아니 그 단어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단어들이 쓰이는 방식이 싫다. 그러나 나 역시 공감과 소통에 관심이 많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소리로 당신에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너와 나를, 끝없이 너와 나를 생각하는 일일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쉽게 공감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단지 정말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애쓰고 애써서 이상하게 보여 주고 싶다. 그리하여 너와 나와 우리가 사랑을 나누기를 꿈꾼다. 좀 더 착한 짐승의 눈빛이 되어. 각자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건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내일은 상상력이 아닌 자신의 전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지금 부엌으로 나오는 네가 안녕, 하고 말한다. 나는 안녕, 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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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혜 시인
2010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
시집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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