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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상념] 실물 부존재 확인
얼마 전 구치소에 피고인 접견을 갔을 때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탁자 위에 신문이 있기에 읽어 보았다. 그런데 기사를 읽기 시작한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평소 자주 읽던 일간지의 글씨체가 완벽하게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읽는 종이 신문은 법률신문밖에 없었다. 나는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만 기사를 읽어 왔는데, 브라우저에서는 종이 신문의 글씨체와 완전히 다른 ‘맑은 고딕’체로 보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종이 신문은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실물이 부존재하고 그에 상응하는 디지털 정보만이 존재하는 시대가 가까이 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동전 없는 사회’에 관한 기사를 역시 스마트폰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한국은행이 2020년까지 대한민국을 동전 없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현금 없는 사회’로 갈 것임이 자명하다. 실제로 나는 요새 대부분의 지출을 신용카드로만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실물인 돈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때가 2009년이었으니 이제 현금이 완전히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요새 입증자료는 의뢰인으로부터 스캔 파일로 받는 경우가 많고, 서면은 컴퓨터로 작성하여 전자소송 사이트에 제출한 후 태블릿 PC에 넣어 법정에 가져가다 보니, 기록이 어느 한 순간도 종이 형태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또 다른 분야인 음악계도 마찬가지인데, 이제 매우 유명한 가수가 아닌 이상 CD를 제작하지 않고 디지털 음원으로만 앨범을 낸다. 어느새 ‘음반발매’라는 말보다 ‘음원출시’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졌는데, 인디 음악인들에게는 예산문제 때문에라도 매우 당연한 방식이 되었다. 이제 노래라는 것은 CD 형태로 어딘가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MP3 파일 등 디지털 정보로 각자의 하드디스크에만 존재하는 것이 된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쳐왔고, 요새도 빅 쉬프트(BIQ SHIFT)라는 인디 밴드를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정규 앨범 “ONE LIFE”를 발매하였다. 지구의 탄생부터 인간의 일생, 사후세계 및 윤회를 시간 순으로 다룬 콘셉트 앨범인데, 인디 밴드답게 전 세계에 디지털 음원으로만 출시하였다. 믹싱과 마스터링도 외장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이른바 ‘ITB(In The Box)’라는 방식으로 컴퓨터상에서 디지털 방식으로만 작업하였다.

책꽂이로 눈을 돌려 지금까지 모아 온 CD를 훑어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CD를 사지 않고 디지털 음원만 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최애 밴드 메가데스(MEGADETH)는 멤버들이 50대임에도 아직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있는데, 올해 나온 최신 앨범 “Dystopia”는 나의 책꽂이가 아닌 SSD에 2진수로만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까지 실물 부존재 확인이 가능하게 될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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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만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제3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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