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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산책
산책

김소형 시인 

찾고 있었지
겹겹이 쌓인 눈부신 꽃을
사라진 도시에서 안개 속에서 피고 지는
찾아다녔지
그가 본 것은
빛의 사원
주두에 기대앉아 쉬는
천사들
황금이 담긴 붉은
도자기
천국과 지옥의 문
순장된
예언자들
그가 찾는 건 이런 게 아니었어
그는 신비를 찾는 게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소리 내며
따라오는
눈송이
숨죽이던 늙은 개
창에 꿰인 채
흔들리는 아이
벌레의 울음소리로
엮은
양탄자
심해까지 울리던
종소리
그러나 그가 정말 원하는 건
그저 꽃을 보고 너에게
돌아가는 일이었지


이번 여름은 언제 끝날까. 내가 말하면 너는 싱겁게, 곧 끝나겠지,라고 말하겠지. 나는 눈을 잃은 심해어가 되어 우연히 여름의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야. 그곳에서 끝을 찾아 헤매는 거지. 끝에는 죽음보다는 폭염이 남고, 모든 것이 비틀어질 때까지 뙤약볕은 충직하게 자신의 일을 할 것만 같아. 작년 여름도 더웠지. 그런데 매년 여름을 맞이하면서, 나는 작년을 잊어 버려. 더 뜨겁고, 더 끔찍한 지금의 여름만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미련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이 할 줄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열렬히 사람을 태우려는 건 아닌지. 이것이 잘못된 사랑의 대가라 생각하면 조금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잠시나마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을 여름은 알았을지도. 몰랐다면 그날 서울의 기온이 절정을 찍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면 너는 말하겠지. “그건 현상일 뿐이야.”

그래. 그 현상 속에서 우리는 긴 산책을 했어. 이유를 대자면, 한여름이었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속초에서 포켓몬 GO가 플레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숙소를 급히 예약했기 때문이었지. 비록 다음 날, 나는 개인 낭독회를 해야 했고, 그것은 유료 낭독회이며, 전석이 매진된 상황이었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돌아오면 되는 일이잖아. 내게 이 여행은 가벼운 산보처럼 느껴졌거든. 

물안개, 쏟아지는 비, 미끄러운 도로를 과속하는 차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새벽 3시였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지. 비를 맞으며 밤 산책은 시작됐어. 게임 방법은 간단했지. 

“잡았어? 나도. 놓쳤다.” 

이 세 마디가 대화의 전부였지만 그래도 좋았어. 도로를 지나, 숲으로, 숲을 지나, 바다로, 수많은 풍경이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 본 것은 곳곳에 숨어 있는 앙증맞은 몬스터들. 우리는 몬스터의 태초마을을 찾아 원정을 떠났고, 바다의 짠 냄새를 맡으며 꿈결같이 걸었어. 잠도 줄여가며,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고, 땡볕 아래에서, 여름 안에서. 

누군가는 “산책은 숨을 가다듬기 위한, 시간을 길들이고 인간적인 높이에서 지각되는 어떤 세계를 기억하기 위한, 휴식, 말, 혹은 목적 없는 거닐음에로의 고요한 초대”라고 말했지. 내게는 게임을 하며 걷는 계절이 이 세계에서 벗어나 세계를 기억하기 위한 거닐음에로의 초대처럼 느껴졌어. 

다시 떠나야만 했지.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오후 8시에는 그저 돌아왔다고 말할 시간이었어. “저는 지금 속초에서 오는 길인데요.” 운을 띄우고, 시 15편을 낭독했지. 중간 중간 3곡의 음악을 듣고,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덩그러니 서울에 놓여 있었어.

평소라면 올해의 여름을 금세 잊었을 거야. 그런데 이제는 잡힌 포켓몬들이 그때의 여름을, 그날의 산책을 기억할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녹음 사이로 짙게 흩어진 빛, 우거진 잎사귀를 스치던 물결, 같이 떠올리겠지. 만약 네가 작년 여름 기억나? 물으면, 나는 바로, 응, 기억나.라고 말할 거야. 그건 이 여름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산책이었어,라고 실없게 덧붙일지도 모르고.

수정됨_사진.jpg


김소형 시인
201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ㅅㅜㅍ』, 현재 동인 ‘작란(作亂)’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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