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사모펀드 활성화 조치 덕분이기도 하려니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저금리·저성장 추세가 확연해지면서 주식, 채권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려워진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모펀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는 여전히 선진국들의 전유물과도 같은 낯선 존재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 엘리엇 등 일부 외국 사모펀드가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보인 투기적 행위를 경험한 탓에 사모펀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블룸버그에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자는 이에 대해 ‘사모펀드 업계는 그저 존재할 뿐,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고 말한다. 다만 자산 규모가 크며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한 커다란 책임이 따를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급성장한 사모펀드는 자본시장과 금융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및 실물경제 역동성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모펀드의 최종 목표는 업무집행사원인 사모펀드 운용사가 투자대상을 발굴해 유한책임사원인 연기금·대학재단·국부펀드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 채권 매입 등 레버리지를 통해 기업을 인수합병한 후 이익배당, IPO, 기업 재매각을 통해 투자 원금과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꺼져가는 기업의 생명을 되살리고, 직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영의 미학이 함께한다. 사모펀드에게 있어 기업이란 1차적으로 사모펀드에 투자한 유한책임사원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훌륭한 투자대상에 불과하지만, 일단 기업을 인수한 이상 해당 기업을 회생, 성장의 반열에 올려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것이 업무집행사원인 사모펀드 운용사의 본질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즉 사모펀드 운용사가 자신의 본분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동안 사모펀드는 탐욕스러운 투기꾼이 되기도, 폐쇄한 공장의 문을 열게 하는 백기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금융 관련 전문서적일지 모른다는 편견을 불식시킬 만큼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사실상의 사모펀드 입문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동안 법령과 판례에 매몰되어 잠시 놓치고 있던 세계 경제의 흐름이 잡히고, 뭔가 새로운 세상에 눈이 띄이는 느낌이 든다. 같은 변호사로서 세계적인 사모펀드 회사인 칼라일의 창업주가 되어 미국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한껏 부러운 생각이 들다가, 2012년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 출신으로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에 올랐던 미트 롬니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미국 정계와 금융계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관계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또한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반감을 갖다가도, 그들이 점차 노조 등 이해관계자 중심의 기업 경영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내용을 읽고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으로는 번역서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친절한 설명과 매끄러운 문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내부수익률(IRR), 레버리지(Leverage), 투하자본배수(MOIC)와 같은 재무학적 개념이 옮긴이 특유의 친근하고 간결한 문장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이는 옮긴이인 정인국 변호사가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 공인회계사(USCPA) 자격을 취득하였고, 연기금에서 펀드 매니저로 근무하며 직접 투자업무까지 수행해 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시장의 꽃이자 실물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촉매제인 사모펀드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독할 만한 책으로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조태진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