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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11년 동안 20번 패소한 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누구를 위하여 침묵하는가!
쟁점은 간단하였다. 
G는 1997년경 D건설과의 사이에 그 소유의 약 1,000평의 토지와 건물(이하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총 매매대금 약 20억 원 중 절반인 10억 원을 지급받았다. 그런데 1998년경 D건설은 IMF사태로 부도가 났고 G에게 잔금을 지불하지 못하였다. G는 2004. 8.경 노환으로 사망하였고 이 사건 부동산 중 토지는 G의 장남인 g(피고, 의뢰인)에게 상속되었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올랐다. 

2005. 11. 대기업 H건설(원고)은 g(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H건설과 G 명의로 된 1999. 11. 24.자 부동산매매계약서(이하 ‘이 사건 계약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 계약서에는 G의 막도장이 날인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등 G가 작성하였다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G는 H건설로부터 매매대금을 받은 적도 없었다. 결국 쟁점은 H건설이 제출한 이 사건 계약서가 사망한 G의 의사에 의하여 작성되었는지(사문서의 진정성립) 여부였다. H건설의 입장은 G가 이 사건 계약서가 작성하였으므로 잔금을 공탁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것이고, g의 입장은 이 사건 계약서는 사망한 G와는 무관한 것이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문서는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증명하여야 한다(민사소송법 제357조). 따라서 H건설은 이 사건 계약서가 사망한 G의 의사에 따라 작성되었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통상 문서가 진정하게 성립된 것인지 어떤지는 필적 또는 인영(印影)을 대조하는 방법으로 증명한다(민사소송법 제359조). 그런데 이 사건 계약서에 기재된 G의 인적사항과 계좌번호는 다른 사람의 필적이고, 인영(印影)은 막도장이다. 즉 필적과 인영에 의하여서는 G의 의사에 의하여 작성되었음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증인 A, B의 첫 번째 진술
이에 H건설은 2명의 증인 A(H건설 용역업체 Y건설 직원)와 B(H건설의 직원)의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진술서에서 A는 “1999. 11. 24.경 H건설을 대리한 현지 주민 X와 함께 G의 집을 찾아가서 계약을 체결하였다”라고 하였고, B는 “1999. 11. 24.경에 Y건설에게 용역대금을 지급하면서 이 사건 계약서를 교부받았다”라고 하였다. H건설의 주장을 정리하면, ‘1999.경 H건설은 Y건설에게 이 사건 계약체결에 대한 용역을 주었고, Y건설은 다시 현지 주민 X를 앞세워 1999. 11. 24. G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계약체결장소에는 A도 입회하였다. 그 후 H건설은 Y건설에게 용역대금 36억 원을 지급하면서 이 사건 계약서도 함께 교부받았다’는 것이었다. 한편, X는 2001. 6.경에 사망하였고, G도 2004. 8.경에 사망하여, A가 유일하게 계약체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나(g의 소송대리인)는 이에 대응하여, Y건설이 2000. 7. 28.자로 G에게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하였던 통고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 통고서에는 “G가 너무 높은 토지가격을 고집하면서 계약승계에 불응하여 법적 절차에 따라 토지수용을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즉 적어도 G는 2000. 7. 28.까지 H건설과의 승계 매매계약을 완고하게 거절하였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1999. 11. 24.경에 주민 X를 앞세워 G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즈음 Y건설이 이를 H건설에게 교부하였다”는 취지의 A와 B의 첫 번째 진술은 거짓임이 명백하여 졌다. 

증인 A, B의 두 번째 진술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인 2006. 7. 28. H건설은 A와 B를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증인으로 출석한 A는 “H건설을 대리한 현지 주민 X가 G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1999. 11. 24.이 아닌 2000. 9~10.경이다. 당시 G는 통장을 보고 계좌번호를 불러주었고, X는 현장에서 이를 직접 계약서에 기재한 다음, G가 건네주는 막도장을 날인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라고 하면서 종전 진술을 번복하였다. H건설 직원 B도 증인으로 출석하여 “생각해 보니, Y건설로부터 이 사건 계약서를 교부받은 것은 1999. 11. 24.경이 아닌 2000년 가을경이었다.”라고 하면서 종전 진술을 번복하였다. 

나는 이에 대응하여, 이 사건 계약서에 기재된 G의 농협 계좌번호는 1997년 8.경에 개설하여 D건설로부터 계약금 등을 수령한 후 1997. 9.경에 곧바로 예금계약을 해지한 계좌라는 증거를 제출하였다. 즉 A의 증언처럼 2000. 9~10.경에 G가 통장을 보고 X에게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면, 이미 1997. 9.경에 해지된 통장의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D건설과의 계약에 사용된 G의 계좌번호를 알아내어 이 사건 계약서를 위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였다. 이 사건 계약서에 기재된 계좌번호의 필체도 X의 것이 아닌 X의 부하 직원의 것임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이 사건 계약서와 동일한 필체로 작성되고, 동일한 모양의 막도장이 날인된 H건설과 S(G의 바로 이웃집 주민) 사이의 위조된 부동산매매계약서도 발견되었다. A는 이와 관련하여 위증죄로 처벌받았다. 

증인 C의 진술, 증인 A의 다른 진술 
천신만고 끝에 이 사건 계약서에 기재된 필체의 주인공 C를 찾아냈다. 그는 2000. 1.경에 X의 지시로 사무실에서 이 사건 계약서를 작성하였으며, 가지고 있던 G의 막도장을 날인하였다고 하였고, 동일한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 후 H건설은 C를 찾아가서 집요하게 추궁하며 진술번복을 요구하였다. C는 법정에 나와서 계좌번호의 필체는 자신의 것이 맞으나, G의 막도장을 누가 날인하였는지 기억에 없다고 번복하였고, 그동안의 진술과 그 자체로 모순·반대되는 여러 증언들을 하였다. C는 이와 관련하여 위증죄로 처벌받았다. 

A는 다른 법정에서 2000년 9~10.경 X와 함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고 나오면서 G에게, “곧 잔금 약 10억 원이 통장으로 들어갈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었고, 그 후 얼마 뒤 현장 사무실을 찾아온 G에게 “계약서를 본사에 보냈으니 곧 돈이 들어갈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2000. 10.경은 H건설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여 4차례나 자구안을 제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제1차 부도까지 난 시기였음이 밝혀지는 등 시기적으로 현금으로 잔금 약 10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A의 필체로 된 4건의 다른 위조된 부동산매매계약서도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의 최종 승리자는 H건설이었다. g를 대리한 나는 무려 11년 동안 20번의 민사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그 판결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증인 A는 2000. 9~10.경에 H건설을 대리한 X가 G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고, 증인 B는 그즈음에 Y건설로부터 이 사건 계약서를 교부받았다고 증언하였으므로, 이 사건 계약서는 G의 의사에 의하여 진정하게 작성되었음이 인정된다. A의 증언 중 “G가 불러주는 계좌번호를 X가 현장에서 기재하였다”는 진술이 위증죄의 유죄로 확정되었더라도, “G가 건네주는 도장을 X가 날인하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까지 위증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계약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또한 증인 C의 증언 중 상당부분이 위증죄의 유죄로 확정되었더라도, “G의 막도장을 누가 날인하였는지 기억에 없다”는 부분까지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계약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사법불신은 법조인들의 침묵을 먹으면서 자라난다! 
인간이 하는 일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법관도 인간이다. 그들이 하는 재판 역시 실수가 있고 부정이 있을 수 있다.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헌법이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재판독립을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개 법관의 실수와 오판은 피할 수 없지만, 법이 정하는 사법절차 시스템을 거치면서 이러한 실수와 오판을 시정되고 개선되어 결국 정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만일 사법부가 스스로의 권위에 몰입하여 명백한 오판을 숨기고 덮으면서 시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법독립의 헌법정신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나는 지난 11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뛰어다니면서 분명한 진실을 보았고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성실하게 변론하였다.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은 무려 20번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 언저리에서 브로커, 친구, 동료로부터 스폰을 받고, 청탁을 하고, 뇌물을 받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법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조인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에 이르기까지 왜 법률가들은, 법조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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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천식 변호사
사법시험 제44회(연수원 3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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