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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상념] 할머니의 밥솥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
"물말아 신김치랑 먹게 밥 좀 줘봐요"
"저녁 먹었잖아요, 밥 없는데.... 잠깐 기다려요 금방 밥 해 줄게"
"당신은 참~ 왜 집에 밥이 떨어지나?" (이후 생략)

내가 어렸을 적 엄마, 아빠의 단골 부부싸움 레파토리다. 그때 그때 갓 지은 고슬고슬하고 따끈한 밥을 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과 조금 출출한 듯할 때 진 밥이든 찬밥이든 반찬이 없어도 좋으니 밥 한 공기만 바로 먹었으면 하는 아빠의 마음이 어긋난 결과다. 

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시냐고? 원인(?)은 우리 할머니의 밥솥에 있다. 1년 365일 우리 할머니의 밥솥엔 밥이 비어있을 때가 없었다. 새벽이든 야밤이든 뚜껑을 열면 그 낡은 ‘코끼리전기밥솥’엔 늘 밥이 한가득 있었다. 물론, 오늘 지은 밥과 어제 지은 밥이 같이 들어있는 때가 많긴 했지만(후후). 그래서 아빠는 밥 한 숟갈만 먹고플 때든 한 고봉을 배불리 먹고 싶을 때든 원하는 때엔 언제나 할머니의 밥솥만 열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배곯아본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던 할머니는 가족들을 한순간이라도 배고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그러셨을 게다. 

요새는 배곯아 본 경험이 귀할 만큼 먹고살기가 풍족해져서 밥솥에 밥이 가득 차 있다고 맘이 든든하거나 푸근해질 일은 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먹고살기는 풍족해진 지금,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거나 푸근하게 해줄까? 

근래에 내가 사람들과 인사차 가장 자주 주고받는 말은 "바쁘시죠?"였던 것 같다. 언제인가부터 가장 무난하게 말문을 트는 말이자 일종의 불의타(?) 같은 대답을 들을 위험이 적은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소위 현대인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누구나 다 바쁘게 살아간다. 일이 바쁘고, 집안 대소사 챙기느라 바쁘고, 노느라 바쁘고 심지어 쉬느라 바쁘다. 시간이 너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을 내기"는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은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야구를 보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가 이런 답을 들었다고 한다. "삼촌,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학교 갔다 오면 태권도에 학원에 과제에 동생까지 봐야 된다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선뜻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기가 어려워졌고, ‘시간 좀 내줄래?’라는 말을 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마치 출출한데 밥이 있나 싶어 뚜껑을 열었다가 텅 빈 밥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니면 지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열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준 시간은 그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소중하고 귀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바빠서 안부인사조차 거르기 일쑤인 분주한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어줄시간과 마음의 밥을 지어 두둑하게 쟁여놓음으로써 나의 시간을 더 귀하게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거창한 요리가 필요한 것도 아닌, 그저 밥 한 공기 먹으면 그걸로 충분하듯 누군가가 별스러운 어떤 계획도 없이 “시간 좀 있어?”라고 물어볼 때 선뜻 "그럼~ 있지~"라고 말 할 수 있는 시간 부자가 되고 싶다. 우리 할머니의 밥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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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변호사
사법시험 제48회(연수원 3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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