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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C'era una

기록적인 폭염을 선사한 2016년 기나긴 여름 어느 잠 못 들던 주말 새벽녘에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EBS 명화극장이 시작되려고 하였다. 그 날 이렇게 전혀 뜻하지 않게 본 영화는 내 평생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사실 서부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유독 이번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종래 내가 알던 일반 서부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서부아메리카>는 <황야의 무법자>로 우리에게 유명한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영화이다. 복수심으로 가득 찬 총잡이가 냉혹한 악당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걸작으로 <황야의 7인>의 악역 찰스 브론슨이 냉정한 무명의 총잡이로, 냉혹한 악당은 <황야의 결투> <전쟁과 평화>에서 선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헨리 폰다가 출연해 명연기를 펼친다. 푸른 눈의 선량한 이미지의 헨리 폰다가 정반대의 이미지인 악당을 연기하는 것이나, 고독한 무명의 총잡이 찰스 브론슨의 과묵한 매력은 엄청난 흡인력을 지니며 영화의 매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거기에 여주인공 질(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매혹적이고도 우수 어린 눈빛 연기 또한 압권이다. 이렇게 완벽한 캐스팅과 거장의 연출력 외에도 이 작품을 걸작에 반열에 오르게 한 가장 큰 역할은 매혹적인 영화음악에 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서부의 풍경과 우리에게 영화 <미션>의 배경음악을 제작하여 유명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인상적인 영화음악은 네 명의 주요 인물에게 테마음악을 입혀 캐릭터와 폭력 미학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영화음악은 유튜브 동영상에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으므로 이 글을 본 독자라면 바로 감상해 보기를 정말 적극 추천한다. 

요즘 영화라고 해도 손색없는 세련된 영상미에 엔니오 모리꼬네가 선사한 그 마약과 같은 배경음악이 압권인 이 영화는 영화 초중반까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보여주는 친절함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이 이 영화 이야기의 큰 매력이다. 특히 마지막 후반부 회상 씬은 보는 이들의 오감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 롱테이크(느린 전개)로 지루함을 줄 수는 있지만, 영화 몰입도가 너무 높아 언제 시간이 간 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금세 가버렸다. 주연 배우 찰스 브론슨의 냉정하면서도 애잔하기 그지없는 눈빛 연기와 일반 서부영화와 다른 멜로적 요소가 약간 가미된 여주인공 질과의 애매모호한 관계 연기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정말 한없이 빠져드는 멋진 서사시적 영화음악,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중후한 마초느낌을 주는 정말 명불허전의 영화이다. 위 영화가 제작된 시점은 1968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가까이 된 영화가 선사하는 감동이 이 정도인지는 영화를 반드시 보아야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스턴영화”, 한때는 헐리웃 제작 영화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헐리웃 스튜디오 시대와 흥망성쇠를 같이 한 대표적인 장르이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헐리웃은 대중의 생활패턴의 변화, 텔레비전의 보급 등의 요인들에 의해서 과거의 영예를 잃게 된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가 제작된 1968년은 서부영화로서는 매우 늦은 시기이기도 하다. 서부영화의 전통적인 서사구조-무법의 서부에 말없는 영웅이 홀로 나타나서,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 내고는, 자신은 다시 유유히 황야로 사라진다-는 이 영화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부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감과 실제 영화의 전개 내용 간 차이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긴장감이다. 일단, 배우와 배역이 이전의 전형화된 서부영화의 극 중 모델에서 벗어나 있다. 기존에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 왔던 헨리 폰다는 악역 중 악역으로 나오며, 악당 역으로 주로 나왔던 찰스 브론슨은 고독한 영웅의 역할을 맡는다. 또한 선과 악의 구분이, 영화의 끝부분으로 가면서는 확연해지긴 하지만, 영화의 진행 과정 속에서는 매우 불분명하다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종래 서부영화의 기본이었던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의 명확한 구분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선/악의 명확한 구분의 어려움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이 동일시하고 영웅시하는 주인공이 악당을 처치하기를 고대하며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무명의 총잡이(찰스 브론슨 분)가 기차역에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악당 프랭크(헨리 폰다 분)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세 명의 총잡이 부하를 보내는데, 모두 그 ‘무명 총잡이 남자’의 총에 맥없이 쓰러진다. 한편 프랭크와 그의 부하들은 미국 서부 철도개발을 위해 ‘모뉴먼트 밸리’의 한 마을인 플래그스톤에서 철도 건설에 비협조적인 아일랜드 출신인 맥베인과 그 가족 일가를 모두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 날은 맥베인의 새 아내 질(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이 마을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플래그스톤에 도착한 질을 기다리는 것은 살해된 맥베인과 아이들의 시체. 질은 그 집에 혼자 남게 되고, 맥베인 일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탈옥한 총잡이 샤이엔(제이슨 로바즈)은 질이 묵고 있는 맥베인의 집으로 발길을 잡는다. 사실 프랭크가 맥베인 일가를 참혹하게 죽인 것은, 맥베인이 소유하고 있는 지역이 지하수 덕분에 증기 기관차 사업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맥베인의 유산상속을 하게 된 질을 유혹해 타협하려 하지만, 프랭크에게 복수심을 품고 마을에 나타난 무명의 총잡이 찰스 브론슨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점점 꼬이게 된다. 

장르로서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가 서부영화의 몰락을 알리는 영화인 것은, 영화의 결말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 마지막에 홀로 남겨진 여주인공 질이 담담하게 철도노동자들을 위해 물을 떠다 주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모습은, 복수, 무법자, 권력의 분산의 시대가 실용주의 시대에 자리를 내 주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철도 가설을 위해 땀 흘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 젊은 여인의 지시를 경청하고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저 철도를 따라서 머지않아 기차가 아메리카대륙 캘리포니아 서부의 끝 해안까지 닿을 것임을 짐작한다. 서부의 끝까지 철도가 놓이고, 그곳에까지 동부의 문명이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면, 서부극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외로운 영웅의 전제조건은 무질서와 혼돈이기 때문이다. 애잔하게 흘러나오는 영화음악은 이러한 한 시대의 몰락이라는 비장감을 더해 주며 내 머릿속 깊이 맴돈다. 우리 인생 역시 시작이 있고, 흥함이 있으면 쇠잔함과 끝이 있지 않겠는가? 오늘 주어진 삶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찬찬히 비움을 연습해 나가는 삶도 필요할 때 이 영화를 한 번 보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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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탁 변호사
사법시험 제44회(연수원 34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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