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앙트레프레너십’. 우리에게 낯선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박광회 회장은 십수년간 한국의 벤처/스타트업의 발전사를 지켜봐왔다. 1998년 스타트업/창업가를 위한 비즈니스센터 사업을 국내 최초로 시작했다.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보육하고, 이제 한국 내의 글로벌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근 변호사업계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블루오션으로 주목하고 있다. 마침 박광회 회장은 여러 변호사와의 협업으로 변호사업계에도 관심이 많다. 박광회 회장으로부터 스타트업 생태계와 창업 그리고 변호사, 특히 청년변호사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들어보았다.
1. 스타트업의 역사를 지켜봐온 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현재 서울글로벌창업센터(Seoul GSC) 센터장, (사)한국소호협회 협회장, 소셜벤처파트너스서울 이사장을 맡고 계시지요?
네, 반갑습니다. 비즈니스센터인 ㈜르호봇비즈니스인큐베이터를 창업한 지 벌써 18년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스타트업의 흥망성쇠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네요. (사)한국소호협회나 소셜벤처파트너스서울은 벤처/스타트업/소창업가와 함께 해오면서 구축한 네트워크구요. 지금은 서울시가 만든 서울글로벌창업센터(이하 ‘Seoul GSC’) 센터장으로 또 많은 젊은이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2. 변호사회보니까요, 변호사가 흥미로울 만한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들에게 변호사와의 협업이 많이 필요한 상황인가요?
물론입니다. 사실 스타트업의 법률 수요는 폭발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본이나 차입금만으로 창업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부터 안정화 단계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외부 투자를 받습니다. 예전에 비해 기업의 규모도 급격히 커졌지요. 기업이 커지면 종업원이 생기고 매출이 늘어나고 어떤 형태든 계약서도 써야 되는 등 여러 가지 니즈(needs)가 생깁니다. 법률적 수요도 비례하여 많아집니다.
그리고 많은 사업이 프랜차이즈화를 추구하는데, 프랜차이즈 분야만 해도 어마어마한 법적 분쟁들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르호봇조차도 법적 문제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법률검토 없이 사업을 시작했던 스타트업들은 허구한 날 법적 분쟁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투자자들의 감시, 보호를 받는 만큼 법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법적인 조언을 충분히 못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3. 법률 수요가 늘어나고, 변호사 수도 늘어나는데, 충분한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먼저 수요자와 변호사 간에 인식이 아직 괴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스타트업은 변호사와의 접점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비용에 민감한 반면 필요한 법적 검토도 비교적 간단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런 검토를 받으려고 로펌의 문을 두드렸다가 터무니없는 비용에 깜작 놀랍니다. 반면 변호사들은 “짧은 조언이라면 큰 법률비용이 필요하지 않은데 찾아오는 회사가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이지요. 아직은 그 마켓(시장)이 구조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변호사끼리 짜내서는 안 되고, 변호사와 스타트업 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의 방법으로 변호사가 스타트업을 직접 운영해 보는 걸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몇몇 변호사들이 한 1년 정도 전념해서 스타트업을 해본다면 큰 깨달음과 방향성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4. 스타트업이 변호사에게 바라는 방향을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직은 스타트업에 맞춰진 커스터마이징 법률서비스가 미비한 것 같습니다. 작은 회사, 특정 분야의 회사가 원하는 법률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려는 변호사가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타트업이 생존에 바빠 법률문제를 등한시하지만, 조금만 정착되면 CEO에게 법률적 조언이 반드시 필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퇴직 직원의 경업금지 문제나 주주, 투자자 간 분쟁은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으로부터 신뢰받는 동시에 적정한 비용을 제시하는 변호사는 부족합니다.
5. 혹시 스타트업과 변호사 간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신 것이 있는지요?
그거야 각 업계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겠지요(웃음). 다만 여러 스타트업들을 묶어서 하나의 풀(pool)로 만들고, 변호사가 그 풀 안에서 스타트업이 실제로 사용한 시간만큼만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변호사는 고정된 풀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좋고, 스타트업은 큰 비용 없이 이용시간에 비례한 자문료를 감당하면 되니까요. 변호사가 ‘푼돈받고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롱테일(Long-tail) 전략이 필요하다고 반론하고 싶습니다.
6. 오늘 인터뷰 장소가 참 좋은데요, 이 곳 Seoul GSC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Seoul GSC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으로서 스타트업 중 외국인 멤버를 포함한 업체를 타깃으로 하는 인큐베이팅 센터입니다. 서울시가 공개입찰 방식으로 제안한 것을 르호봇이 맡게 되었습니다. 르호봇은 원래 글로벌 네트워킹을 추구해왔으므로 르호봇에 아주 적합한 사업이었습니다. 3년간 매년 40개 팀을 발굴하여 인큐베이팅, 펀딩(투자), 해외진출 등을 수행, 지원하고 있습니다. 센터 내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영어로 하고 있고, 사업 내용도 글로벌한 아이템이나 외국과 연계된 사업을 주로 지원합니다(법률수요도 외국어로 된 한국법, 비자 등 외국인 관련 부분이 많다고 한다).
Seoul GSC는 기존 인큐베이팅 센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목적을 가집니다. 솔직히 국내 스타트업 환경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다소 못 미친다고 보는데, 주로 정부 지원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규제가 강하고 관리 위주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프리하고 빠르고 오픈된 환경과 사고가 아주 중요합니다. 본 센터는 서울시의 믿음 아래 가능한 한 오픈되고 혁신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7. 국내 스타트업 환경의 제약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현재 한국의 스타트업은 사업모델을 발굴하고 멋진 피칭(사업발표)을 통해 투자자로부터 거액을 투자를 받는 것을 성공으로 칩니다. 물론 그 또한 성공 중 하나고, 실리콘밸리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강하지요.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외부 투자를 받는 사업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사업, 한국 청년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사업이라면 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최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업들이 있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풍성해지겠지요. 저는 스타트업이 수익, 규모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 방식, 내용의 사업을 일구어나가기를 바랍니다. Seoul GSC는 그런 목표를 담은 멋진 공간입니다.
8. 르호봇은 ‘공간’ 전문기업인데. 공간 문제는 변호사에게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공간에 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주실 수 있을지요.
변호사들은 대부분 개인 사무실이나 별산제에 가까운 형태로 법무법인의 공간과 인력을 이용한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같이 모여 비용을 줄이는 것이죠. 사실 10년쯤 전에 변호사 공간 사업을 구상하고, 도면과 사업계획서까지 만든 적도 있습니다. 당시 역량을 다른 곳에 쏟느라 접었지요(참고로 르호봇 센터 중 고급화된 ‘프라임센터’는 몇몇 변호사들이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신뢰’와 ‘권위’를 얻어야 하므로 공간도 고급스러워야 할 겁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건 ‘커뮤니티’일 겁니다. 누군가는 수임을 더 잘하고, 다른 누군가는 소송, 자문, 외환, 대관(對官) 등 실무를 더 잘할 겁니다. 만약 변호사들이 모여 사건마다 태스크포스팀(TFT)를 구성할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요? 물론 단순히 모여있다는 것만으로 그런 신뢰와 시스템이 구축되지는 않겠지요. 공간을 만든 사람이 구성원의 신뢰를 모아 ‘커뮤니티’를 창출한다면, 기존 별산제 법무법인과 차원이 다른 ‘공간’이 마련되리라 생각합니다.
9. 변호사는 ‘1인 사업가’와 참 닮은 점이 많은데요, 치열해져가는 업계에서 변호사가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전문가로서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변호사는 사회의 고급 자원입니다. 그런데 법조인이 되어 높은 사회적, 경제적 대우를 누리려고 고생하여 지위를 얻었는데 시장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시대가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기존처럼 소송 수요만 두고 다투는 건 올드패션이지요. 안정적인 위치를 원한다면 더 어려워집니다. 스타트업처럼 마켓을 창출하거나 기존 마켓을 재해석하여 도전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변호사 중에 어떤 분은 동남아 시장에, 다른 분은 바이오 분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아직 수입이 많지 않지만 그 분야의 네트워크는 짱짱합니다. 그 분야의 전문지식 없는 다른 변호사는 접근하기 어렵고, 그 분야 의뢰인과 공명(共鳴)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겁니다. 스타트업과 마찬가집니다.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정신)으로 세상을 보면 이런 니치마켓(niche-market)은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10. 마지막으로 우리 회 변호사들에게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정신)을 담아 응원의 한 마디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업계획서 잘 쓰고 피칭(발표) 잘 해서 수천만, 수억 원씩 투자받는 팀을 걱정합니다. 진짜 앙트레프레너십은 ‘잔근육’입니다. 어려움을 거치면서 몰입하고 숨겨진 재능도 일깨우면서 자라난 잔근육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매순간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민감하게 용기있게 도전하시라는 뜻입니다.
‘앙트레프레너십’은 창업만 뜻하지 않습니다. 진짜 ‘앙트레프레너십’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낫게 만들며 공동체 전체에 ‘베네핏(이익)’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변호사의 공공성과 일맥상통하지요. 또 ‘앙트레프레너십’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와 자신을 함께 발전시키려는 모든 분들의 것입니다. 변호사 여러분들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정리 : 남중구 본보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