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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법조인의 조언] 이인복 전 대법관 인터뷰
이인복 전 대법관 인터뷰 - 사실관계와 법리에만 집중하면 사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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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나니 더 존재감이 또렷해지는 분이 있다. 법원행정처 근무경험 없이도 대법관에 올랐다. ‘서오남’(서울대 출신 오십대 남자 판사의 준말)이지만 ‘진보대법관’이라고도 한다. 국민에게는 우수법관으로 평가되고 법원 내에서는 ‘배려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또한 존엄사 판결을 하였고,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는 표현으로 당당히 소신을 밝혔다. 바로 이인복 전 대법관이다. 

▣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대법관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두어 달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반갑습니다. 지인과 함께 남부 프랑스로 부부동반 여행을 2주간 다녀왔습니다. 자동차를 빌려 자유여행을 하였는데, 정말 만끽하였습니다. 숙소를 예약하긴 했지만 불쑥 다른 곳에 가서 자기도 하고,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제약 없이 다녔습니다. 호주에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너무 홀가분하더군요. 사실 3월부터 비행기표를 예약해놓고 고대했습니다. 퇴임 직후의 번거로운 일상을 건너, 가슴뛰는 저만의 퇴임 기념행사였습니다. 

▣ 32년간 줄곧 재판업무를 수행하셨는데, 퇴임 후 지루하지는 않으신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이 즐겁고 건강도 꽤 좋아졌습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항상 잔병이 있었는데 퇴임 후에 싹 사라졌을 정도예요. 알게 모르게 ‘공직의 무게’를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공직자로서의 처신과 판단이 그만큼 어려웠습니다. 두어 달이 지났을 뿐인데 공직이나 공무에 관한 것이 전혀 생각이 안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 <변호사회보> 인터뷰인 만큼 변호사에 대한 질문을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간 재판을 하면서 어떤 변호사가 인상적이었는지요?

일률적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네요. 저는 후배 법관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 어떤 당사자,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매뉴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습니다. 사건이란 모두 저마다의 특성과 사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변호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도 있고요.

아주 추상적으로만 말씀드리면, 변호사와 당사자가 어떤 ‘일체감’이 형성된 경우에 주장에 설득력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변호사를 믿어주는 느낌, 그리고 변호사가 그 믿음을 지지대로 삼아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이지요. 반면에 변호사와 당사자가 따로 노는 인상을 주는 사건은 논리적, 법적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판결은 주장과 증거에 달린 것이라, ‘일체감’이 항상 좋은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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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사 판결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판결에서 ‘소신’으로 유명하고, 일각에서 ‘진보대법관’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스스로는 어떤 기준으로 재판을 해왔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이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소신’있다고 하는데, 이념적인 잣대로 사건을 평가하지도 않았고요. 흔히 말하는 ‘좌우’를 고민한 적도 없습니다. - 
저는 주장과 증거로 드러난 ‘사실관계’와 사람인 ‘당사자’를 주로 살폈습니다. 사실 그것만 보면 됩니다. 구체적인 내, 외부의 사정을 알고 양 당사자를 살펴보면 법률과 상식에 맞는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과 쌍방의 이해관계에 대한 판단기준 등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념에 편향되거나 외부적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하면 올바르고 ‘소신’있는 판결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가끔 판검사를 마친 변호사가 “밖에 나와 보니까 세상이 다르더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게 듣기 불편했습니다. 조금만 더 깊이 헤아려보면 알 수 있거나 알았어야 할 사정들인데도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내가 아는 대로 또는 조직의 룰에 기대서 사건을 처리해왔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것에 기대서는 좋은 판결을 하기 어렵습니다. 

▣ 퇴임사에서 말씀하신 “인간미 흐르는 사법부”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국민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 결정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학교에서 ‘도덕’ 시간에 배웠던 보편적인 기준이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 없이 법과 제도를 내세우는 건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 말씀을 들어보니 ‘변호사’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도 존경받는 변호사가 되실 것 같은데,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금지 요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인사청문회 때도 어느 의원이 물어보더군요. “변호사가 돈만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은 잘못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고 변호사는 공익을 실현하는 중요한 직업인데, 전관예우로 돈이나 버는 것처럼 봐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법조인의 자격을 갖추고 이를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왜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위 ‘전관예우’ 같은 부정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하지만, 이는 부정을 저질렀을 때 제재를 가하면 충분합니다. 
덧붙여, 변호사회는 ‘바다’와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여러 성격의 변호사를 포용하여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변호사회의 위상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법관 아니라 그 이상의 누가 와도 여기서는 동등한 변호사다”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고위직 판검사를 변호사회에서 포용하지 않으면, 자칫 그들이 또 다른 공직이나 그 밖의 자리를 추구할 수도 있고, 공직의 관료화가 더 심해질 위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자칫 공직이 혼탁해질 수도 있습니다. 법원, 검찰에서 쌓은 고도의 경험과 능력이 사회적으로 쓰이지 않고 매장될까봐 안타깝기도 합니다. 


▣ 만약 변호사로 활동하신다면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으신지요?

‘어떤 변호사’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통상적인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객이 찾아오면 준비된 최고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지극히 평범한 변호사 말입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무료변론에 나서거나 하는 일은 피하고, 법정에 나서서 열심히 변론하여 좋은 판결을 이끌어내면 족하겠지요. 

변론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 생각나는데, 가끔 재판부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오면 불편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사실심에서 단독판사나 재판장으로 재판할 때 전직이 대법관인 변호사 몇 분이 오신 적이 있는데 전 아무렇지 않았고, 그 분들도 열심히 변론하고 가셨습니다. 재판장이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고, 외려 사실심 법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제가 준비를 잘 해가야겠지요.(웃음) 


 ‘법관평가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지요?

사법의 수요자인 당사자나 변호사의 법관에 대한 평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법정에서 법관을 직접 대하는 변호사가 그 법관에 대하여 바르게 평가하기가 쉽겠지요. 법관평가를 하고 우수법관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민의 사법 신뢰가 개선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제가 실제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저에 대한 좋은 평가가 일간지에 실린 다음 날 재판에 들어갔더니, 법정 분위기가 환했습니다. 제 기분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저 판사는 재판 잘한다더라’는 신뢰를 가지고 재판에 임하더군요. 평소에 괜히 불신하여 따져들던 당사자도 그 날 이후 잠잠해졌습니다. 

법관에 대한 칭찬도 법관평가에 빠질 수 없는 덕목입니다. 좋은 평가를 받은 법관이 당사자로부터 신뢰받고, 다른 법관들이 이를 본받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다만 법관에 대한 평가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현행의 법관평가제를 법관을 평가하는 유일한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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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청년변호사’들에게 덕담이나 응원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저도 자녀를 키우다 보니 체감하고 있습니다. ‘청년’ 문제에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지요. 다만 청년 개개인은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주 듣기 거북한 소리가 ‘상대적 박탈감’이란 표현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박탈감을 느낀다? 못 가진 것에 박탈감을 느끼기보단 가진 능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외국의 제도와 비교해보아도, 사실 대한민국의 법조인은 사법시험, 로스쿨 통과만으로 여전히 상당한 지위를 누립니다. 과거의 사법시험 합격자와 동일한 수준에서 비교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된 세상에 맞추어 새로운 변호사들이 더 열심히 더 참신하게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연수원 교수할 때, 제자들에게 말했던 게 생각납니다. “딱 3년만 열심히, 원칙에 맞게 변호사 생활을 하라.” 우선은 원칙과 실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단 뜻입니다. 일단 변호사가 되어 사회에 나오면 누구도 원칙과 실력 등 기본적인 것에 대하여 말해주기는 어렵고, 오히려 기발하고 편법적인 이야기들을 듣기가 더욱 쉽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실력을 키워야 그 위에 기발함도 소용이 있을 겁니다. 
법관으로서 사건을 접하면서 소송분야에서도 아직도 무궁무진한 새로운 영역이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의 젊음으로 도전하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변호사로서 성취와 보람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년변호사들에게 큰 응원을 보냅니다!



▣ 약력
사법연수원 11기 (제21회 사법시험 합격)
1984년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임
200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10. 9. ~2016. 9. 대법원 대법관
2013. 3. ~ 2016. 9. 제18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16. 11. ~ 현재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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