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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기고1] 추억 하나
거의 며칠을 어둡고 슬픈 표정을 하셨다. 형님도 그리고 어머님도...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입대를 앞둔 형님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그렇듯이 군복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 테고, 그런 큰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신 어머님도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님이 어릴 적 우리들에게 자주 들려주셨던 전설 같은 군복무 이야기들도 그 때는 사전교육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결국 입소하던 날 형님의 어설픈 거수경례에 형님과 어머님 모두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 후로 어머님은 며칠을 더 근심어린 얼굴을 하셨고, 다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훈련소에서 보내온 형님의 옷가지 소포를 보시고는 다시 한 번 크게 우셨다. 

그런데 그랬던 어머니가 둘째 아들인 내가 입대할 때는 편안한 얼굴을 하셨다. 나는 내심 서운한 마음에 슬프지 않으시냐고 여쭤보았지만, 어머님은 형님의 입대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마냥 슬프셨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름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이셨다. 어찌 보면 형님은 늘 내게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분이셨다. 어린 사춘기에 몹쓸 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던 나의 근심거리가 지극히 정상적인 몽정이라고 안심시켜준 이도, 최전방의 추위와 구타에 온몸이 멍들었어도 군 생활은 견딜 만하다고 다독여준 이도 모두 형님이셨다. 그렇게 나는 형님의 경험과 격려 덕분에 세상의 어려움과 두려움들을 보다 낮은 강도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 어머님께 내 입대 때 왜 울지 않으셨냐고 늦은 나이에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보면, 어머님은 늘 웃으시기만 하신다. 그럴 때면 옆에서 듣고 있던 형님이 동창 친구분의 이야기를 위안삼아 들려주신다. 그 친구 분은 3남 중 막내셨는데, 친구의 어머님이, 첫째 형님이 입대할 때는 슬피 우셨고, 둘째 형님이 입대할 때는 조금은 웃으셨는데, 막내인 친구분이 입대할 때는 그 날 입대하는지도 모르셨단다. 

그러고 보면 내 입대 날짜를 잊지 않으시고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건강히 다녀오라 손을 흔들어주신 우리 어머님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끝으로 아들의 입대를 앞둔 이 세상 모든 어머님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첫째 아들도, 둘째 아들도, 그리고 셋째 아들도 똑같이 눈물을 보여주세요. 그들은 국가와 당신에게 소중한 아들들이니까요.” 오늘따라 훈련소 퇴소식 연병장에서 검게 그을린 나를 뒤늦게 먼발치에서 발견하시곤 눈물지으셨던 작고하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수정됨_사진_신태섭.jpg

신태섭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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