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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기고2] 일본 변호사계의 파벌을 해부한다 1
 
 
사람이 셋 이상 모이면 파벌이 생긴다는 말이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과 파벌은 끊지 못하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일본 변호사들의 세계 또한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일본 변호사들은 파벌이라는 말 대신에 ‘회파’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회파는 소속 인원수가 많은 도쿄, 오사카, 아이치현 나고야 등에만 존재하고 있으며, 이 중 도쿄변호사회의 경우 4개나 존재하는 회파 중 3개에는 회파 내 회파까지 있다. 2015년 6월 24일자 토우요우케이자이(東洋經濟) 온라인판은 일본 변호사계의 파벌이 생성되어 온 연유와 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는데, 이번 기고에서는 우선 일본변호사연합회(이하 ‘일변련’)의 하부 단위회 조직 및 도쿄변호사회(이하 ‘동변’)와 제1도쿄변호사회(이하 ‘1변’)의 회파 등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일본의 경우도 변호사는 각 도도부현(都道府현)에 있는 변호사회에 입회하지 않으면, 변호사를 내걸고 업무를 할 수 없다. 각지의 변호사회를 ‘단위회’라고 부르고, 단위회의 총본산이 바로 ‘일변련’이다. 회파는 원래 단위회 간부인사의 선거와 관련해서 발생한 것으로, 단위회를 뛰어넘어 횡단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조직은 회파라고 부르지 않는다. 즉 어디까지나 단위회 내에서 조성되는 파벌이 회파이며, 단위회는 원칙적으로 1현에 1개이지만 예외가 홋카이도(면적이 광대해서 4개)와 도쿄도(역사적 연유로 3개)이다. 변호사는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의 도부현 단위회에 입회해야 하며, 홋카이도도 지역마다 입회할 수 있는 단위회가 정해져 있다(일본 변호사회별 회파 일람, 출처 : 東洋經濟 2015. 6.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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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쿄만은 사정이 달라서 ‘동변’, ‘1변’, 제2도쿄변호사회(이하 ‘2변’) 식으로 단위회가 3개나 있고, 도쿄도 내에 사무소가 있는 변호사는 이 3개의 회 중에서 자유롭게 소속회를 선택할 수 있다. 도쿄가 이런 상황으로 된 것은 지금부터 100년 이상 전에 일어난 ‘파벌항쟁’에 기인한다. 
 
변호사의 기원은 에도 시대의 公事師로, 표면적 방침상으로는 소송대리인의 선임을 금하고 있었던 에도막부 치하에서 탈법적으로 탄생한 代言人이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 신규참여가 격증하고 악질적인 代言人도 등장했기 때문에, 각지의 지방재판소 관할로 강제가입단체인 代言人조합을 발족시키고 代言人을 면허제로 했는데 이 代言人조합이 현재 단위회의 기원이다. 1880년에 탄생한 이 代言人조합 안에서 대졸 조직과 그 이외의 조합원 간에 파벌항쟁이 발발해 2개로 분열되었다. 1893년 변호사법의 시행으로 代言人은 변호사가 되었고, 도쿄에서는 2개로 분열되어 있었던 代言人조합을 무리하게 통합시켜 1893년에 도쿄변호사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대립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므로 1923년에 동변에서 대졸 조직이 분열되는 형태로 1변이 탄생했고, 동변과 1변의 사이가 매우 나빠서 그 중재역으로 2변이 1926년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동변 최대회파인 法友會는 종전 후 얼마 되지 않은 1946년에, 전쟁 전부터 존재했던 11개 회파가 결집해 만들어졌다. 회파 내 회파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다른 회파의 합류 또는 회파 내 회파끼리의 합병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法友會에 대항하는 형태로 4개의 회파가 결집해서 1947년에 결성된 것이 法曹親和會, 그리고 法友會와 法曹親和會라는 2대 회파의 선거 투쟁에 회의를 느낀 사법연수소 출신 젊은 변호사들에 의해 1959년에 결성된 회파가 期成會다. 이 시대는 메이지, 다이쇼 시대에 출생한 변호사가 여전히 다수파였고, 전후 발족한 사법연수소를 수료하고 변호사등록을 한 사람들은 새로운 양성제도에 의해 법조에 데뷔한 ‘신인류’로 취급되었던 것 같다. 水曜會는 도쿄대 전공투 사건의 담당변호사 등 공안사건이나 학생사건의 변호인단에 의해 1973년 결성되었다. 
 
동변의 회파는 水曜會 이외에 모두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고, 연혁부터 역대 집행부의 멤버, 활동상황 등 상세한 정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명부관리도 엄격하다. 신참변호사는 최초에 취직을 한 사무소의 대표변호사가 소속한 회파에 입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법수습 50기대 후반 정도의 변호사부터는 회파에 관심이 없는 층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신참을 고용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회파에 소속되지 않은 변호사의 수가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동변 4개 회파의 합계 인원수가 약 5천 명, 동변 전체의 변호사수가 약 7,400명이므로 대략적인 입회율은 67%라고 하는 계산이 된다. 
 
1변은 ‘동변’과는 달리 2차대전 전에는 기본적으로 회파가 존재하지 않아서, 선거전에서는 저명변호사가 인솔하는 유력사무소의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변의 회파 탄생의 계기는 유아 대상의 보육원을 둘러싼 사기사건이었는데(일명 축산원 사건), 고액의 보육료를 징수해 어린이를 맡아 두면서 우유도 충분히 주지 않아 많은 사망자를 낸 비극이었다. 실형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수감과 관련해 오타키 키요시 변호사가 편의를 도모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오타키 변호사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들이 제1클럽,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들 가운에 사립학교 출신자는 靑流會, 도쿄대학 등 관학 출신자는 新綠會를 결성했다. 이 시기가 대략 1950년 전후이며, 이 3개의 회파 탄생 후인 1951년에 사법연수소 출신의 젊은 변호사들이 결성한 것이 全期會다. 
 
1변은 동변과 달리 어느 회파도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역사는 물론 활동상황도 현 집행부의 멤버도 외형적으로는 알 수 없다. 또 1변의 회파는 엄격한 명부관리도 하지 않고 있어, 현 집행부에 따르면 현재 全期會의 소속 인원수가 300~400명이지만 실제로는 600명 이상 있을 것이라 한다(고참 소속변호사의 증언). 제1클럽은 수를 공표하지 않는 게 방침이며 新綠會는 약 250명이라 한다. 따라서 1변의 전체 변호사수가 약 4600명이므로 1변 전체의 입회율은 대략 3할 정도, 동변에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입회율이다. 4대 로펌 가운데 니시무라 아사히, 나가시마 오노 츠네마츠는 1변 소속자가 중심이지만,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회파 활동에 열심이지 않은 점이 입회율이 낮은 것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변호사회 및 파벌에 대한 취재 내용을 우리 변호사회와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매우 다르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우리의 경우도 선거 시즌에는 변호사들 간에 진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처럼 회파로 조직되어 오랫동안 유지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 또한 도쿄변호사회가 3개의 단위회로 나뉘어 있고 그 중 한 곳에의 가입이 자유로운 것은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매우 큰 차이점이다. 다음 회에서는 2변 등 나머지 주요 변호사회의 회파 및 그 역할 등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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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중혁 변호사
변호사시험 제1회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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