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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대중음악] 음유시인의 역습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문학소녀, 문학청년의 뜨거운 가슴은 시적인 감상으로 푹 젖는다. 떨어지는 낙엽마저도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리는 음유시인의 감성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우리는 노래가사를 통하여 문학적 감성을 발휘하는 음악인들에게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음유시인은 중세 유럽에서 봉건제후의 궁정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지은 시를 낭송하던 시인을 뜻한다. 하프 등 악기에도 능한 음유시인들은 시구절을 읊거나 노래를 부르며 심지어 연극도 공연하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전전하였다. 활자나 책이 발명되기 이전 시대에 그들은 우리들에게 즐거운 뉴스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였다. 금세기에 들어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책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음유시인도 하나둘씩 사라져 갔지만, 음유시인의 독특한 낭만과 메시지는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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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음유시인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보인다. 그 이유는 파격을 선택한 노벨상 때문이다. 비문학인, 대중음악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음유시인의 문학계 습격사건이다.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문에 그의 가사가 인용될 정도로 평소 문학감성,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현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계뿐 아니라 대중음악계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였다. 세계전쟁으로 온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던 1941년의 어느 날 미네소타의 시골에서 로버트 알렌 짐머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밥 딜런은 유년시절부터 시인 딜런 토마스의 열렬한 추종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활동명을 밥 딜런으로 하여 미국 포크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1961년에 미네소타 대학교를 중퇴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우상인 미국 포크계의 아버지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뉴욕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에서 활동하다가 앨런 긴즈버그 등의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가 돋보인 기념비적인 1963년작 포크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으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당시 베트남 전쟁 등으로 상처난 미국사회의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비틀즈의 등장에 영향을 받아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많은 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오히려, 포크 록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면서 “Blowin' In the Wind” 등의 반전 평화가요로서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잡아 간다. 그의 끊임없는 음악적 여정은 포크의 울타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훗날 우리나라 유신의 암울한 시절, 대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Highway 61 Revisited”, “Blonde On Blonde” 등의 앨범을 거쳐, 1967년경부터 컨트리 본고장인 내슈빌에서 작업했던 “Nashville Skyline” 앨범들을 통하여 컨트리 록을 또 하나의 신세계로 탄생시킨다. 밥 딜런이 수많은 히트곡들에서 던지는 사회적인 영향력 덕분에 그는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고, 1999년 타임지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공동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70년대 초반 “The Band”와의 협업, 1985년, 마이클 잭슨 등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들과 함께 기아 구호 프로젝트 ‘USA for Africa’에 참가하였으며, 1988년에는 조지 해리슨, 로이 오비슨, 제프 린, 톰 페티와 결성한 ‘트래블링 윌버리스’의 밴드 활동을 통하여 음악적인 지평선을 더욱 넓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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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시인도 아니고, 정통 소설가도 아니었지만, 시적인 감성이 풍부한 그의 대중음악을 통하여 대중들의 공감을 한껏 이끌어냈고, 2004년 그의 자서전 “Chronicles: Volume One”(바람만이 아는 대답 : 밥 딜런 자서전)은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 데뷔 48년 만에 2010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던 그는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a Rolling Stone”과 같이 우리 젊은이들의 별밤을 빛냈던 애청곡들을 부르며 국내 골수팬의 인기를 재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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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밥 딜런이 등장할까? 1970년대를 전후하여,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 양병집, 송창식 등 통기타 청바지 세대들의 저항가요들이 초창기 밥 딜런이라면, 그 이후 정태춘, 김광석, 안치환 등은 문학적 감성과 비판정신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행이다”의 이적,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등이 출간한 문학작품들도 밥 딜런의 발자취는 아닐까? 타블로, BY 등 힙합 래퍼들의 가사에는 젊은이의 아픔,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한 편의 시처럼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누구보다 가사를 중시하는 윤종신은 “오르막길”, “이별의 온도” 등에서 영원한 문학소년 감성을 공감한다. 이렇듯이 한국의 밥 딜런은 그저 어쿠스틱 기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우주의 기운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이러려고 음유시인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없다. 우리나라 음유시인들에게도 동인문학상이 그리 머지않았다.

이재경 변호사
사법시험 제35회(연수원 25기)
건국대 글로벌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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