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릴케(Rilke)는 “시는 체험이다”라고 하였고, 셀리(Shelley)는 “시는 영원한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이다”라고 답했다. 결국 시는 작가가 체험하거나 추구하는 삶의 진실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유향의 글들은 이러한 시의 개념에 더없이 잘 부합한다.
저자 김유향(김광재 변호사, 연수원 34기)은 어린 시절 작가를 꿈꾸었으나, 문학은 배고플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로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베스트셀러인 『기본강의 헌법』 등 다수의 헌법책을 저술하고, 강단에서 법조인?사무관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헌법강의를 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으며, 시를 읽을 때나 시를 쓸 때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해한다. 그의 문학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설레임, 그리움, 청춘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집을 출간시켰다.
이 시집에 실린 90편의 글 중 20편은 김유향의 글들이고 70편은 국내외 대표적 명시와 경구들이다. 이 시집의 테마는 ‘설레임’, ‘그리움’, ‘청춘 그리고 인생’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 시집은 90편의 글들이 위 세 가지 테마로 잘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각 테마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시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김유향의 글을 몇 편 감상해 보자.
그대와 마신 한 잔의 커피 때문인지 이 밤 좀처럼 잠들지 못하네/ 이토록 가슴 뛰고 잠 못드는 이유가 진정 한 잔의 커피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내 가슴에 들어와 버린 그대 때문인가. - 〈설레임〉
즐거운 일을 앞두거나 마음이 가는 사람 앞에서 설레므로 설레임(설렘의 시적 표현)은 분명 좋은 느낌이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앞두고 얼마나 설레었던가. 사춘기 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또 얼마나 설레었던가. 누군가를 만나고 생각할 때 설렌다고 다 사랑이랴마는 설레임은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시인은 위 시에서 사랑의 시작으로 느껴지는 설레임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봄이 그대를 닮았나보다/ 아직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는데/ 미처 보낼 준비도 못했는데/ 벌써 가려하니. - 〈봄날은 간다〉
봄은 짧다. 사랑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봄과 가버린 사랑은 항상 아쉽고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시인은 위 시에서 독자들에게 “봄과 사랑은 머지않아 떠날 수 있으니 아직 봄과 사랑이 곁에 있다면 떠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소중히 누리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아침에 창밖을 보니/ 마음속에 담아두고픈/ 눈꽃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여름 소나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쉽사리 그 속에 뛰어들기는 힘들다// 그러나/ 눈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기도 하고/ 일부러 그 속에 뛰어들게도 만든다// 그래서 난 비보다 눈이 더 좋다// 어떤 이의 곁에 머무를 수는 있어도/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게 하는 소나기보다/ 그이를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어느새 그이를 적셔주는 그런 눈 같은 존재이고 싶다. - 〈눈의 찬미〉
위 시를 읽고 나면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람을 시원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한 여름 소나기 같은 존재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얻어 곁에 오게 하는 포근한 눈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원하게 해 주지도 못하는 존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런 후 자연스레 나도 위 시처럼 포근한 눈 같은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다.
우리 가족은 정원사이다/ 웃음꽃 정원사/ 사시사철 예쁜 웃음꽃을 만들고 키운다// 언제나 다정다감한 엄마/ 누구에게나 친근한 아빠/ 우리집 귀염둥이인 나/ 모든 것을 다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가 모이면 최고의 웃음꽃을 피운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되는/ 소중한 우리 가족은 웃음꽃 정원사 - 〈웃음꽃 정원사〉 김도경
위 시는 김유향이 시를 쓰는 모습을 본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쓴 것인데, 대견하기도 하고 작품성도 있어 보여서 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읽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좋은 시이다.
김유향이 프롤로그에서 말한 것처럼 시는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서도 정신을 맑고 순수하게 해 주며 긴 여운을 남기는 매력이 있다. 공자는 『시경』 삼백 편의 시에 대해 한마디로 ‘사무사(?無邪)’로 정의하였는데, 이 책에 실린 90편의 글 역시 ‘사무사’, 즉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진정성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책의 글들을 읽으면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지나치게 들뜨지 않을 것이고, 가슴아픔과 애절함을 느끼겠지만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쓸쓸한 계절, 짙어지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독서로 달래야 하는 계절, 가을. 『설레임, 그리움, 청춘 그리고 인생』은 이 가을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고 일상에 지친 당신의 감성을 다시 채워 줄 시집이다.
윤경 변호사
사법시험 제27회(연수원 17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