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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상념]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돌아보면 꿈 같다. 

100끼에 19만 원 정도 하는 식권을 사서 이용했던 신림동 고시식당들. 자하연, 38번가, 토마토, 여가숙수. 혼자 먹었던 동차합격 버터삼겹살. 명절에는 학원에서 헌법 부속법령이나 선택과목 또는 가족법 특강 따위를 들었고, 어떤 날은 독서실 휴게실에서 컴퓨터를 너무 오래해서 자책한 기억들. 2차 답안지를 쓸 때 손이 너무 아파 필기구 고민을 하다 큰 맘 먹고 만년필을 산 일. 시험 발표날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다 지하 비디오방에 들어가서 영화 한 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와 휴대폰의 부재중 통화 표시를 보고 전화를 걸었더니 위로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힘내라는 아버지의 메시지. 과천 법무부에서의 답안지 확인. 힘들었던 모의고사 심야반. 4일간 7과목 살인적인 2차 시험. 카페인 음료에 몸이 찌든 느낌. 드디어 합격해서 먼저 드는 생각은 이 고생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것. 

하지만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니 더한 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문제가 책 한 권이고 50센티 자로 A3용지에 칸을 나눠 빽빽하게 메모만 한 시간을 넘게 해도 끝이 안 나고 7시간 30분짜리 시험에도 시간이 모자라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참았다 다녀온 기억. 그래도 즐거웠다. 엠티 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래프팅도 하고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도 탔다.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가서 창문마다 모기장을 붙였고 결혼을 앞둔 새신랑 연수생은 냉장고를 옮기다 허리를 다쳤다. 나도 답을 모르겠던 열린마당 게시판 법률상담,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들었던 대강당 수업, 호수공원 야외수업, 체육대회, 스승의 날 행사, 제주도 수학여행, 씨앤비 복사집 아저씨가 내려주신 커피, 민사모의법정 전날 동글동글한 조명이 걸린 맥주집에서 재판부끼리 마신 술. 신림동에서 맥주집 와바를 운영하다가 웨스턴 돔으로 옮겨와서 와바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장님은 그 해 결혼기념일에 우리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하셨다. 스터디 회식장소였던 부페파크는 지금은 화재로 없어졌다고 한다. 정말 추웠던 일산의 겨울, 그 냄새가 아직 나는 듯하다. 

나는 연수원을 수료하고 법무법인의 소속변호사가 되었다. 첫 해는 정말 바빴다. 3일 연달아 지방재판을 다녀오면 사무실에는 작성해야 할 서면이 잔뜩 쌓여있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목요일에 퇴근한 적도 있다. 집에 다녀오면 2시간밖에 못 자니까 차라리 사무실에서 4시간을 자는 것이 건강이 덜 상하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에 퇴근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퇴근을 하는지를 먼저 물어봐달라고 대답했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첫 해는 너무 일이 몰렸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벌써 3년차를 꽉 채우고 내년이면 4년차 변호사가 된다. 처음 유죄 판결을 받고 괴로워하며 내가 변호사를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는데, 그 동안 많은 사건을 수행하며 무죄 판결도 몇 건 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판결도 몇 건 받았다. 좋은 결과는 물론 훌륭하신 파트너 변호사님들의 덕분이다.

이렇게 나는 변호사가 되어 살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세운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어떤 길이 좋은 길이고 어떤 길이 나쁜 길이라는 것은 없으니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나는 내가 가는 길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


수정됨_김추.jpg

김추 변호사 
사법시험 제52회(연수원 제43기)
법무법인(유한)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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