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변호사가 『중년에 떠나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부제가 ‘낭만 변호사가 추천하는 세계여행 베스트 10’이다. 낭만 변호사? 그렇다. 내가 아는 양 변호사는 낭만 변호사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스킨 스쿠버로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더니, 어느 날에는 하늘로 솟아 탠덤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초경량 항공기 조종에 도전하여 조종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리고 주말이면 산을 찾아다니더니, 해외로도 눈을 돌려 백두산 트래킹도 하고 히말라야 산속을 누비는가 하면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도 올랐다. 예술의 세계도 기웃거리면서 전시회나 음악회 다녀온 후 이를 글로 남겨 주위 지인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색소폰 연주도 한다. 요즈음은 사진에 취미를 붙여 주위 사람들한테 ‘사진전 한 번 해라! 사진집도 한 번 내봐라’ 하는 얘기를 듣기까지 한다. ‘낭만 변호사’라는 명칭도 주위 친구들이 농담 삼아 붙여준 명칭이 책 표지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러한 낭만 변호사의 여행은 어떠할까? 책을 펼치니 제일 먼저 나오는 구절은 책 서문의 제목 ‘한 번의 여행을 통해 세 번의 여행을 맛보다!’이다. 무슨 말인가? 그는 말한다. “첫 번째는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여행경로를 지도상에서 따라가 보는 사전 여행이고, 두 번째 여행은 실제로 여행지를 직접 가서 보는 여행이며, 세 번째 여행은 갔다 온 여행지를 글로 기록하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구글 어쓰 프로그램 등으로 여정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 번의 여행 중에는 발로 뛰고 눈으로 직접 보는 두 번째 여행보다는 손으로 걷는 3번째 여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소중하였다고 한다. 여행기를 씀으로써 실제 발로 뛴 여행에서 놓쳤던 것을 새롭게 많이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글로 쓰는 여행은 두 번째 여행에 더욱 살을 붙여 여행의 추억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영원히 붙잡아 둔 여행은 언제고 또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 변호사는 요즈음도 오래 전 여행을 글 속에서 꺼내어 다시 보다 보면 “맞아! 그 때 그랬었지.”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긴 그렇다. 전에도 낭만 변호사가 쓴 여행기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여행의 기록을 남길 수가 있을까?”하며 감탄하였다. 그게 다 충실한 세 번째 여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보자. 낭만 변호사는 이번 책에 10편의 여행기를 실었다. 몽블랑 트래킹, 이탈리아 북부 자동차 여행, 안도 다다오의 예술미를 좇는 일본 여행, 필리핀 스킨 스쿠버 여행 등등. 10편의 여행기가 나라별로 겹치지 않고, 또 나름 각각 특색이 있는 여행기가 실려 있다. 이탈리아 여행기를 보니, 구글 지도 앱이 우리말로 음성 안내를 하여 초행길도 어디든지 안심하고 갈 수 있었다. 베니스의 그 복잡한 골목에서도 구글 지도 앱이 도보 길 안내도 해주니, 두려움 없이 아무 골목이나 헤집고 다녔다. 호텔 부킹 앱을 이용하여 원하는 조건으로 호텔을 검색하고 예약까지 한 다음, 구글 지도 앱으로 그 호텔을 찾아가니 잠자리 걱정도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고향 곡부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에는 공자의 무덤 앞에서 인간의 광기에 대해 쓴 글이 눈길을 끈다. “공자묘 앞에 세워진 비석을 자세히 보니 여기 저기 조각난 것을 다시 꿰어 맞춘 것이 보인다. 굳이 죽은 사람 무덤까지 파헤칠 필요가 있었을까? 역사를 보다 보면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인간의 광기에 절망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즈음은 그런 광기가 이슬람에 부는 것 같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얼마 전에 파리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질을 해댔고, 고대 유물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팔미라 유적까지 파괴했다니, 인간의 광기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중동 여행에서는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앞에서 느낀 소감이 눈길을 끈다. “체크포인트 오른편의 장벽에는 팔레스타인들이 저항의 그림과 글자를 페인트로 그려놓았다. ‘To eXist is to Resist’라고 써놓은 문구가 내 가슴을 친다. 나는 불끈 쥔 주먹을 그려놓은 곳으로 다가가 나도 따라 주먹을 불끈 쥐고 포즈를 취해본다. 아까 통곡의 벽을 지나왔지만 여기야말로 오늘날의 통곡의 벽이 아닐까? 왜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의 대학살 등 그렇게 많은 박해를 받고도 2,000년 동안 이곳에 평화롭게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이곳으로 들어와서는 이렇게 박해자로 군림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이라는 뜻이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라는데 예루살렘이 이 본래의 뜻을 찾는 날은 언제일까?”
이러한 글들을 읽다 보니 낭만 변호사가 왜 책 제목을 『중년에 떠나는 인문학 여행』이라고 하였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중년은 표피적인 여행의 풍광에만 취하는 젊음의 여행보다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인문학적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나도 이제 인문학 여행을 떠나볼까?
윤경 변호사
사법시험 제27회(연수원 17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