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는이라는 셀카를 찍는다

나는 카페에 속하고 서울에 속하고
지구 북반부에 속하고
콩알만 한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고
태양계는 은하에 속하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이천억 개
고로, 나는 먼지에 속한다

먼지가 되니 비로소 나의 인력에서 멀어진다
지금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나는 곧장 날아간다
카페에서 은하 중심까지 2만5천 광년

아, 나는 은하의 변방이다
은하에 있지만 나를 관측할 수 없다
은하의 물가에 종적도 없다
나는 도무지 나를 주장할 수 없다
이 우주에 나는 도래하지 않은 위치다

먼지 같은 하늘과 땅에서
먼지의 먼지의 먼먼 후대로 나타나
먼지와 백년가약을 맺고
먼지를 낳고 기르고 먼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
먼지를 붙들고 울고 웃는 일
먼지의 가르침조차 모두 먼지일 뿐

우주를 건넜다
돌아오니, 나에게 안착할 수 없다
나에게 도착할 수 없다
먼지의 나에게 발 올릴 수 없다

나는 카페에서 나는이라는 셀카를 찍는다

나는 찍히지 않는다
나는 발견되지 않는다

*

내가 사는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지금’

봄날에 골목을 걷는 즐거움은 대부분 목련 꽃잎에 있다. 담벼락에서 골목으로 넘어온 꽃잎은 봄 햇살에 젖빛 몸을 드러낸다. 학창시절에 우연히 훔쳐본 목욕하는 옆집 누나의 어깨선을 닮은 꽃. 꽃잎 외곽을 따라가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하늘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봄날에는 쓰던 시를 내려놓고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흰 목련 꽃잎을주우러 다닌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은 금세 녹이 슨다. 두보는 탄식했다. 꽃잎 한 장이 지면 봄빛이 줄어든다고 .

얼마 전 영국 연구팀에서 허블망원경으로 132억 년 전에 만들어진 은하를 발견했다. 이 은하에 A2744_YD4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은하보다 1억 년 앞서 생성된 이 은하는 초기 우주의 별들을 활발하게 생산했을 것이다. 별은 아름답다. 인류는 우주의 시원을 찾기 위해 눈의 기능을 확장해 왔다. 먼 곳에 있는 사물을 눈앞에 가져오기 위해 애썼다. ‘더 멀리, 더 선명하게’를 외치며 우주로 눈을 돌리는 동안, 우리는 정작 우리 내면에 있는 우주를 살피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가. 거울에 비친 당신에게 물어 보라. “지금도 당신
의 눈 속에 내가 별로 빛나고 있는가?” 거울 속에 눈은 퀭하고 늘 부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운 우주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이다. 내팽개친 것이다. 먹고사는 일에 지쳤거니와 짓밟히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당신은 당신의 별을 자신도 모르게 우주 멀리 추방한 것이다.

나에게서 멀어져 간 나를 되찾아야 한다. 먼저, 마음의 창에 망원경을 마련하자. 나의 별은 어디에 있는가. 설명할 수 없이 빠져든 외사랑의 창가에 떠 있는가. 달의 표면을 지나 봄철 길잡이 별자리인 처녀자리 스피카를 배회하고 있는가. 우리는 고성능 렌즈를 통해 시간을 건너고 건너 육신이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별들은 모두 과거의 빛이다. 그 시공간에 모여 있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린 ‘지금 이 순간’들의 잔해이다. 과거를 자주 돌아보는 사람은 지금을 낭비한 안타까운 특징을 띤다. 또한 과거를 감탄하는 것은 사실 고독한 일이다. ‘지금’을 놓치는 순간, 우리 존재는 먼지의 세계로 추락하곤 했다.

내가 사는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지금’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머리에서 꼬리까지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용의주도하게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느리고 촘촘하게 우리가 속한 지금을 살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길 바란다. 한갓 목련나무조차도 ‘지금’을 충실히 사랑해, 살아와서 별을 피우건만, 우리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 마음에 망원경을 대고 잃어버린 나의 위치를 찾자. 그러고 나 자신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자. 닿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여도 괜찮다. 그렇게 다가서려고 애쓰는 상태일 때,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꿈틀거리며 빛난다. 삶의 주어를 다시금 나로 바로잡아야 한다. 봄빛이 줄고 있다. ‘먼지냐, 별이냐.’ 이 선택이야말로 가장 실존적인 삶의 문제이다.

박지웅 시인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