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리 : 김종규 본보 편집위원

이전에 고등법원 법대에서 원장님을 만난 기억이 있지만 직접 만나서 차담을 하는 것이 인터뷰어인 내게도 부담이 되었다. 원장님께 처음 문자를 보내니, 바로 답이 왔다. “목요일은 재판이 있는 날이니 목요일만 빼고 언제든 내 방으로 오면 됩니다.” 원장님의 문자를 받고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소액재판부 집무실로 찾아뵈니 몇 년 전 법대에서 뵌 온화한 모습 그대로이시면서도 직접 차를 준비해 주시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성기문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원로법관제가 도입되면서 춘천지방법원장을 마친 이후에 다시 서
울중앙지방법원의 민사소액재판부에서 1심 재판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미 언론을 통하여 소식을 접한 회원들도 많겠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편집위원회에서는 선배님을 직접 찾아 뵙고 선배법조인으로부터 여러 조언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김종규(이하 김) 바쁜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원장님께서 이번에 임용된 ‘원로법관제’가 어떤 제도인지요?

성기문(이하 성) 법원장 근무를 마쳤거나 정년을 2~3년 정도 남긴 법관이 1심으로 복귀하여 재판업무를 담당하면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제도예요. 미국의 senior judge1)제도에 착안하여 도입된 제도인데, 항간에 있는 전관예우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법관의 사기를 진작시킬 뿐 아니라 법관이 변호사 개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정년까지 영예롭게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김 법원장이 초임판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실제 1심 단독판사의 자리로 돌아가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성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재미도 있고요. 소액 판사들은 단독판사가 처음인 젊은 판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에게 법원생활과 재판에 대한 조언도 하고, 재판이 아닌 육아나 자녀교육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해요. 젊은 판사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와 접하게 되니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불편할 것 같아 원로법관들끼리 따로 식사하려고 했으나, 젊은 판사들과 밥조를 편성해서 같이 식사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법원장님의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훨씬 젊어지고 활기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현재 담당하는 업무는 어떤 것인지요?
성3,000만 원 이하의 소액사건 중 분쟁형 사건을 일반 소액재판부로부터 재배당받아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변호사가 없는 서민들의 생활밀착형 사건들인데, 복잡한 법리적 다툼보다는 당사자들 사이에 감정이 대립되어 법정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법률적 지식보다 삶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한 사건들인데요, 원로법관이 조정 등을 통해서 분노와 갈등에 대한 상담과 치유 기능까지 할 수 있어 바람직한 제도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삶의 경험을 활용하여 말을 잘 들어주고 권고를 하면 조정화해가 잘 되어 보람도 있습니다.

김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당사자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처럼 고위법관으로 재직하신 이후에는 변호사로 개업을 하면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이 될 수 있을 텐데 변호사개업이 아닌 평생법관으로의 삶을 선택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지요?
성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열문화가 남아 있는 현 법조계에서 법원장 출신이 1심 단독판사로 내려간다는 것에 대한 주위의 시선도 많이 부담이 되었지요. 그러나 원로법관제는 사법부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여서 누군가 첫발을 내디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춘천법원장 시절 제가 만든 구호 “국민 속으로 더 낮게, 국민과 함께 더 높이”를 실천하는 계기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의 믿음인 그리스도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해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영호, 조용구 원장님과 상의를 하였지요. 법원장까지 하면서 국민과 사법부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원로법관으로서 1심으로 내려가 소액재판 을 하면서 사법부의 신뢰증진과 평생법관제의 정착에 기여하자고 의기투합하였습니다. 혼자서는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3명이 함께 하니 결정이 한결 쉬웠지요.

김 저는 아내의 반대 등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할 때가 있 습니다. 가족들이 원로법관 신청을 반대하시지는 않았는지요?
성 아내가 오히려 적극 찬성하였어요. “당신은 변호사 체질이 아니다. 변호사 하면 경제적 여유는 생기겠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웃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마음 편하게 소신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좋다고 원로법관의 길을 권유해 주었지요. 훨씬 마음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어요.

김1985년 첫 판사임관 이후 한길을 걸어오셨는데 기억에 나는 재판이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 서울고등법원 민사부에 있을때 처리한 담배소송이 기억이 납니다. 흡연으로 인해 폐암에 걸렸다고 하면서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인데요, 비록 원고들에게 패소판결을 내렸지만 이유 부분에서 최초로 흡연과 폐암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흡연으로 인한 암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흡연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또 서울고등법원 부패전담부 시절, 당시 이명박 대통령 처사촌이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알선수재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을 엄하게 훈계하였는데, 당시 피고인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발언에 대해 “물의가 아니라 범죄다”라고 제가 한 질책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 원장님께서 생각하는 법조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요? 
성 법관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법관은 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신성한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성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법관은 위와 같은 소명의식이 필요하고,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고귀한 가치로 생각해온 선비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요즘 법조시장이 변화를 넘어 변혁의 시대를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과거나 현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법조 전반이어도 좋고 법원에 국한되어도 좋습니다.
성 법조인은 법을 통한 정의의 실현과 억울한 사람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공익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법조시장이 변호사의 대량배출과 대외개방이라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어도 사익 추구에만 매몰되어 공익적 사명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기득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경제하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모든 분야에서 법치주의가 생활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돌아보면 아직도 법조인의 조력이 필요하나 소외된 분야가 많습니다.

김 오랜 법조경험을 통하여 후배법조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성 한마디로 선공후사(先公後私)지요. 특히 법관은 개인적 이익과 편의보다는 직업적 소명을 중시하여야 합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법관 스스로가 자신을 법률기술자나 좋은 직업인 정도로 폄하하는 것이에요. 법관은 늘 직무능력과 함께 고결한 인품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책임을 명심하여 늘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최근 변호사업계를 보면 갈등과 반목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조절하는 것이 법조인의 역할입니다. 현재는 나라 전체가 대립과 갈등이 심하여 갈등조절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때인데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작은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법조인들은 그래도 이 사회에서 존경받고 선택받은 집단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고 선배는 후배인 청년변호사들이 변호사를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후배들은 선배들에 대한 존경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 그 밖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인터뷰에 넣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지요?
성 우선 원로법관으로서 원로법관제도에 대한 개선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현재 원로법관제는 정년이 65세여서 외국과 달리 너무 빨리 퇴직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65세는 아직 건강하고 은퇴를 하기에는 이른 나이라 생각돼요. 그렇게 되면 정년 이후에도 변호사로서 활동을 계획하지 않을 수 없고 평생법관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습니다. 원로법관의 정년을 연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원로법관들은 외국과 같이 법관 전체 정원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법관의 사건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원장님 오늘 이렇게 후배들을 위해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 여담을 나누었다. 성기문 원로법관님은 『봄내, 아름다운 호반의 추억』이라는 춘천지방법원장 재직 당시 직접 쓴 시와 에세이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채운 책 한 권을 필자에게 직접 서명을 하여 선물하여 주셨다. 그리고 젊은 법조인들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길 추천해 주셨다. 취미활동인 자전거라이딩을 하면서 자연을 즐기고 좋은 경관을 사진찍고 그 감동을 글(시)로 쓰다 보니 책까지 내셨다고 한다.
성기문 원로법관님을 뵈면서 원로법관제도를 통해서 다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법부 또는 법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