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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제자백가(諸子百家)인가?

세브란스(severance), 철도, 전기... 

구한말 우리 조상들의 서양(西洋)에 대한 기억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첨단 의학·과학기술이었을 것입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서양 국가에게 패배하였고, 신학문(서양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가 앞다퉈 설립되면서 기존의 학문-유학-은 잊혀져 갔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칼럼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고사(故事)가 자주 인용되고,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춘추전국시대의 고전-제자백가(諸子百家)-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위 두 가지 현상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상념을 갖게됩니다.

 

“왜 고사를 인용할 때면 하필 항상 춘추전국시대인 것인지”
춘추전국시대는 역사상 가장 긴 혼란시기임과 동시에 치열한 사상논쟁을 통해 위대한 사상이 탄생한 시기였고, 한무제(漢武帝)의 독존유술(獨存儒術) 선포 이후 중국의 사상은 성리학(性理學)에만 매몰되어 교조적(敎條的)으로 변하면서 오히려 춘추전국시대보다 퇴보하지 않았나 합니다. 간혹 자주성 운운하면서 중국 사상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해지는 당시의 기록이 없는 형편인 우리와 비교할 때 위대한 기록을 남긴 중국문명의 역할과 의미는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2천 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이 현재에도 유의미한 것인지”
후흑학(厚黑學)의 저자 이종오(李宗吾)는 ‘노자(老子)는 제자백가의 줄기이고, 나머지 학파는 노자에서 파생된 가지라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만큼 노자는 물리학에 가까운 원리를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예컨대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노자의 말의 본질은 ‘물처럼 겸손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
른다’는 현상 자체의 통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쓰임새에 따라 ‘겸손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명제가 되거나 병법에서 ‘천시와 지리의 이점을 취해야 한다[一曰道 二曰天 三曰地 四曰將 五曰法, 손자(孫子) 시계(始計)]’, ‘시기가 큰 것이고 계책은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大者時也 小者計也, 관자(管子) 경언(經言)칠법(七法)]’는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병가(兵家)의 저술 중 무기체계에 구애받는 전술이 아닌 병도(兵道)·전략을 제시한 병법 –특히 노자의 영향을 받아 부전굴인(不戰屈人), 집이시동(戢而時動), 천시(天時)·지리(地利), 용간(用間)을 통한 지피지기(知彼知己) 등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손자병법(孫子兵法) - 은 현재에도 여전히 의미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무경십서(武經十書) 중 하나인 삼십육계(三十六計)의 경우에는 전술만을 논하고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심리·인식력, 역학관계 및 형세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제자백가가 위대하다면 중국은 왜 서양열강에게 그토록 무기력하게 당했던 것인지”
제자백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서양 열강에게 패배했던 이유는, 중국은 한무제의 독존유술 선포 이래 위대했던 고대사상이 2천 년간 봉인되었던 반면, 서양은 로마의 카톨릭 국교선포로 봉인된 고대 그리스 철학이 르네상스에 이르러 봉인해제되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명·청(明·淸)시대에 제자백가서가 번역되어 서양에 전해졌고, 이러한 제자백가가 르네상스에 영향
을 끼친 것도 주목할 점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이 G2로 올라 선 것은 서양의 문물을 답습했기 때문이지 제자백가 때문이 아니지 않나”
제자백가 중 상가(商家)의 효시인 관자(管子)는 상업의 중흥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방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정치·경제 형태는 서구식 자본주의와 차이가 있고, 현재 중국 수뇌부는 관자(管子), 상군서(商君書), 한비자(韓非子), 귀곡자(鬼谷子) 등을 탐독하며 중국 고유의 정치·경제원리를 재발견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자·손자·귀곡자 등은 실존인물이 아니고 저작물도 후대인의 작품 아닌가”
제자백가의 고전(古典)이 위대한 이유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집대성한 점에 있기 때문에 노자 등이 실존인물인지 여부 및 실제 저작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오랜 세월에 걸쳐 가다듬어져 왔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자백가와 변호사는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가”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직업이고, 법은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손자병법[특히 천시(天時)·지리(地利), 지피지기(知彼知己)] 및 삼십육계[특히 만천과해(瞞天過海), 성동격서(聲東擊西), 암도진창(暗渡陳倉), 위위구조(圍魏救趙), 부저추신(釜底抽薪), 이대도강(李代桃僵), 이일대로(以佚待勞) 등]의 전략·전술은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실용적이며, 노자(老子), 귀곡자(鬼谷子), 전국책(戰國策)의 가르침은 조정과 협상에 쓰일 수 있는 통찰과 원리, 사례를 각기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국 위대한 발견과 통찰은 이미 2천 년 전에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그동안 봉인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도 2천 년 전의 위대한 보물이 담긴 보고(寶庫)의 문을 열고 들어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해 보심이 어떠할지... 아울러 ‘요·순(堯·舜) 시절의 제도정치(帝道政治)는 인구는 적고 재화는 여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시대가 변한 전국시대에 이를
고집하는 것은 수주대토(守株待兎)에 해당한다’고 했던 한비자(韓非子)의 말은 격변기를 맡고 있는 변호사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근규 변호사
●법률사무소 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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