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한 남자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질 때
온 사람의 손목이 선뜻하다

안개에 철조망이 삭아가는 비탈길에서
등 뒤로 묶인 때묻은 손톱들이 움찔거릴 때

휘파람을 날리며 보고타의 외곽골목을 빠져나가는
보드 위의 소년
헐렁한 그 손목이 선뜻하다

마감 전 월街의 자판 위를 나는 흰 셔츠
금융맨의 손목에도
금속성의 바람자락 슬쩍 걸린다

누군가 한 사람
뺨을 맞고 걷어차여 담 밑으로 주저앉을 때

먼 도시의 야시장 익숙하게 흥정하며
갈고리로 치켜드는 은빛 생선 한 마리
장사하던 누군가의

눈앞 문득 아찔하다 아득하다, 이유도 없이

중국 한나라 때 미앙궁에는 커다란 종이 있었는데 그 종은 서촉의 진령이라고 하는 곳의 동산(銅山)에서 캐낸 구리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종이 저절로 울리기에 황제가 기이하게 여겨 옆에 있던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으니 “서촉에 있는 구리산이 붕괴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얼마 후 정말 그 산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종이 울리던 바로 그 시각쯤에 산이 무너진 것이었다. 혈육 간에 누군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거나 좋지 않은 꿈을 꾸기도 하는 일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 신기한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어떤 끈 같은 것이 서로를 연결시키고 암암리에 서로 통하고 있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조금 다른 문제 같기도 하지만 미국의 과학자 라이언 왓슨이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명명한 원숭이들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 미야자키현 고지마라고 하는 무인도에서 있었던 일로 그 섬에 살고 있던 스무 마리쯤 되는 원숭이들이 고구마에 묻은 흙을 앞발로 털어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원숭이 한 마리가 흐르는 물에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하자 다른 원숭이들도 모두 따라서 씻어먹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섬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까지도 마치 보기라도 한 듯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량을 지나면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접촉한 적이 없는 집단 간에도 그런 행동이 전파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나 조류 곤충류에서까지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미 수많은 실험관찰을 통해 학자들에 의해 학설로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지구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어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동기감응이라는 말까지 빌리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먼 곳의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어딘가 불편하고 찜찜한 느낌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

시집 『눈부신 꽝』에 실린 이 시는 그런 생각에서 쓰여졌다. 범죄에 연루되었든, 무고한 사람이든 한 사람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철컥 채워질 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주 먼 거리의, 낯선 나라의 골목길에서 보드를 타고 휘파람을 날리며 달려가는 어린 소년의 손목에도 그 선뜻함이 느껴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당할 때 그 상해가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킹에 전달되어 부지불식간에라도 어딘가 살짝 실금이 그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급박한 상황과 가슴 졸임이 그와는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이를테면 뉴욕 월 스트리트의 냉철한 화이트컬러의 바쁜 시간 속에도 스며들어 어딘가 흔적을 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나먼 항구 야시장의 불빛 아래 생선을 파는 이가 불쑥 치켜드는 죽어버린 은빛 생선, 그 차가운 갈고리의 번뜩임 속에도 그 선뜻함은 통할지도 모른다고.

한창 내 코가 석자이던 젊은 때에는 성당에서 미사시간에 드리는 신자들의 기도에 왜 세계평화와 인류를 위한 기도가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딘가 위선적이고 공허하게만 느
껴졌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 들어가며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또 그 자식까지 얻고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국경과 사상을 초월한 인류 전체 아니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그 생태환경을 위해서도, 내가 죽은 후의 세상을 위해서도 평화와 안정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또 이미 시집에 넣어 펴내고 나서도 한참 자문했었다. 흔히 말하는 착한 시, 착한 척하는 시를 쓴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이 시에 담긴 내용은 시로 쓰기에 다소 크고 어려
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살아갈수록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또 이렇게 크고 어려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꼭 시로써 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쓰다 보니 우연히 이 시에는 백색이미지, 목화토금수 오행 중의 금(金)의 이미지가 여러 번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자신이 쓰고 난 시에서 이렇게 가끔 재미있는 점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시를 쓰는 재미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는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 존재와 존재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희고도 반짝이는 단단한 것이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에는 서늘한 느낌이 전달되는 이런 경우와는 반대로 이유 없이 푸근한 느낌과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도 꼭 시를 써보고 싶다. 백한 번째의 한 사람이 꽃향기를 맡으며 즐거워할 때 먼 곳으로 퍼져 나가는 미소와 같은. 그러나 이미 다른 시인이 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김연숙 시인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눈부신 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