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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주자청 作)

 

계절이 지나 풍경은 변해도, 고향의 산과 물은 변함없이 아련하다. 시간이 흘러 사람은 늙어도, 부모의 목소리와 모습은 변함없이 애틋하다. 우리가 보는 상(相)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상(想)은 이처럼 다르다. 앞으로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도 기억 속의 모든 것은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

때론 기대하지 않았던 무척 짧은 글 한 편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가는데, 그 묘한 애잔함이야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이 한 편의 글이 그렇다.

한 북경대 청년은 편부가정에서 조모와 함께 커 가 면서 외롭고 힘들게 자라났다. 그는 성장했고, 세상을 전전하며 추레하게 변해버린 아버지와 작별하는 순간을 지켜본다. 그가 담담하게 쓴 글이『뒷모습(背影, 베이잉)』이다.


한때 중공(中共)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글이었지만, 예전부터 당당하게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산문(散文)이다. 작가 주자청은 당시를 무척 건조하게 기술하면서도 그 모습들을 누렇게 바랜 필묵화처럼 아련하게 그려냈다. 훗날 그는 달빛이나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고아하고 세련된 묘사력으로 돋보였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은『뒷모습(背影)』에서 남긴 표현들을 가장 진솔하고 가치 있게 여기고 있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시피, 작가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2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그 해 겨울,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직장을 잃으셨다. 정말이지 불행이 겹쳐서 오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어느덧 똑똑하고 세련된 도시청년으로 성장한 작가는 오랜만에 접하는 아버지와의 며칠 동안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가 보기에 아버지는 ‘거칠고’ ‘촌스러우며’ ‘고지식하고’ ‘외고집의 불쌍한’ 존재였다. 작가는 아버지의 외투를 좌석에 깔아두었고, 아버지를 안타깝고 애처롭게 술회한다.
 

아버지는 결국 맘이 놓이지 않으셨는지, 심부름꾼이 꼼꼼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한참을 어찌해야 될지 고민하셨다. 사실 그때 내 나이가 벌써 스물이었고, 북경도 이미 두 세번을 왕래해봤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엔 그래도 당신이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몇 번이고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결국 “아니다. 나도 같이 가는 것이 낫겠다.” 하시며 나를 따라 나섰다... 짐이 많아서 짐꾼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짐꾼들과 흥정을 하셨다. 당시 자신을 아주 똑똑하다고 여겼던 내가 보기엔 미더워 보이지 않아 결국은 내가 참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흥정이 이루어졌고 짐을 기차간에 실어 올렸다. 아버지는 기차간에까지 따라 올라와 차문 쪽으로 자리를 잡아주셨다. 나는 그 위에다 아버지가 주신 자주색 외투를 깔았다. 아버지는 가는 동안 밤중에 짐을 잃어버리지 않게 신경 쓰고 감기 조심하라 당부하셨다. 그리곤 다시 동행하는 심부름꾼에게 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셨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의 그러한 행동을 비웃었다. 그들은 오로지 돈만 알 뿐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이미 스무 살인데 내 일 하나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까봐?


이윽고 기억할 만한 사건이 생긴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오지랖이 또 발동하면서 아버지는 다시금 무언가(?)를 챙기시기로 나선 것이었다. 그것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먹이려 배회하는 어미 갈매기처럼 작가를 계속 감싸려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겠다.


“귤이라도 좀 사 올 테니 넌 여기 앉아 있거라. 절대 어디가지 말고.”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건너편 플랫폼 너머 각종 물건을 파는 몇몇의 노점상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건너편의 플랫폼으로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하고 플랫폼의 벽을 오르내려야 했다. 뚱뚱한 아버지가 갔다 오기엔 쉬운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가려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굳이 당신께서 가겠다고 하셨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마고자에 남색무명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가 뒤뚱뒤뚱 철길 위를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플랫폼을 내려가는 모습은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건너편 플랫폼의 벽을 기어오르실 때의 모습은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플랫폼 벽 윗면의 바닥을 잡고서 두 다리를 위를 향해 올리시며 기어오르셨다. 아버지가 중심을 잃고 뚱뚱한 몸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지자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을 때,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의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흘러 내렸다. 


잠시 후, 좀처럼 대화라고는 없었던 부자는 귤을 주고받고 바로 작별을 한다. 서로 진한 부성애를 나눴겠지만, 그들은 서로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약조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헤어진다.

 


본래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아버진 젊었을 때 사회에 뛰어들어 집안을 일으키셨고, 자립하여 많은 일을 해내셨다. 그런데 나이 들어 생활이 이리 참담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말이다. 작가는 단지 아버지를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돌아다녀야 하는 그런 존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의 동행(同行)을 마치고 아버지의 애틋한 뒷모습을 본 이후에, 작가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에 담게 되었다. 그는 짧은 글을 흩뿌리면서(散文) 자신과 아버지 주위에 켜켜이 쌓였던 애증의 먼지를 걷어 내고 있다. 그는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깊이 간직한다.
작가의 마지막 글귀는 이렇다.


내가 북경에 온 뒤로, 아버지는 나에게 편지 한 통을 써 보내셨다. 편지에는 “난 몸 건강히 잘 지낸다. 다만 어깨 통증이 심해져 젓가락이나 붓을 들기가 편치 않구나. 아마도 갈 날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선, 쏟아져 내리는 눈물 속에서 예전 검은 마고자에 남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아아! 언제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있을지....
                                                                                                        1925년 북경에서

 

오늘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게다. 이 분주한 순간에도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계속 흐른다. 부모는 늙어 가실 수 있지만, 기억 속의 부모님은 그대로 계신다. 우리 기억 속의 뒷모습들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로 계속 간직될 것으로 생각한다.

 

 

 

 

유재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MAYDA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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