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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서면과 싸우는 수줍은 변호사 생.존.기

불안,

몇 개월 이런 저런 선거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려니 서면이 불안하고 낯설다. 밀린 준비서면이 좀비처럼 꿈속까지 따라오고, 법정에서 변론하려니 새내기 때처럼 약간의 떨림마저 있다.

세대별로 ‘꼭 해야 할 일 몇 가지’라는 종류의 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 중에 선거운동원이 되어 보라는 것이 있다. 반쯤 헛소리다. 더 어리다면 추천해 보겠으나 40대에 전념하여 할 일은 아니지 싶다. 평범한 한 표 이상의 신념을 표출해 보는 것은 물론 보람있고 좋은 경험이었으나, 본업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면 일상의 손실과 회복이 쉽지 않다.

변호사 업무로 돌아오는 마음이 쉽지 않아, 두서없이 거칠게 지난 10년여 생활을 한 번 되돌아본다.

오래 누워계셨던 아버지, 가난하고 사연 많은 가정, 왜소하고 작은 키, 낯가림 심한 성격에 갖은 알바, 오랜 고시공부 중 천운으로 순박한 아내를 얻어 결혼도 하고, 겨우겨우 변호사 자격증도 받아 마이너스 통장 한도 턱밑에 걸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좋은 일 해보자던,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인권변호사님 밑에서, 좋은 일 매우 많~이 하였으나, 인권 없는 고용변의 업무량에 폭발하여 1년 만기 15일을 남겨두고 예상퇴직금과 함께 기록을 (관용구가 아닌 물리적 표현으로) 집어 던진 후 첫 직장생활을 마감. 내성적인 사람은 자주 표현을 못 하니 꽁하고 담아 두었다가 폭발을 하는 수가 있다. 심신이 피폐해진지라.

어렵사리 소형로펌으로 이직해 보니 그런대로 다닐 만하나... 사건 사무장님 입김이 좀 있으시다. 대법관 할아버지가 오셔도 안 될 사건이 승소 유력한 사건으로 배당되는 일이 잦아진다. 양심, 자존심 뭐 이런 생존에 도움 안 되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좀 있으면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는데... 에라 모르겠다. 개업.

바리바리 쫓아다닌다. 불러주는 곳이 없어도, 돈 안 돼도, 골프 못 쳐도, 술 석 잔 마시면 치사량인 몸으로... 새벽부터 새벽까지 쫓아 다녀도, 허울 좋은 임명장 수십장 받아도, 바쁘기만 억수로 바쁘고 수임에 아~무 도움 안 된다.

흙수저 특유의 인맥인지라, 사돈의 팔촌을 뒤져도 변호사 선임할 일이나 재력은 없으되 오만가지 서민형 무료 상담 건들 충만하건만, 모기 같은 목소리로 후회를 감당 못 할 저렴한 수임료를 부르며, 기적같이 잘~ 생존해 계시다.

영업력 없는 내성적인 변호사가 살아남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본다. (자랑처럼 말하고 나면 꼭 지던데...) 아무튼 패소 사건이 얼마 없네. 손꼽아 기억나고 미안하고 되뇌이기도 괴롭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영업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영업하더라는 것.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면, 힘들지만 그래도 길이 열리더라는, 존경받는 선배변호사님들의 교과서 같은 조언이 내게도 나름 진리이더라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로펌에서 좀비처럼 일하거나, 더 으리으리한 회사에서 근로자로 일하거나, 개업하여 비용 충당하기에 바쁘거나, 사건 사무장에게 휘둘리거나, 본의 아니게 공익활동에 열심이거나, 기획하든 광고하든 재주 좋아 호사를 누리고 있거나... 주변 변호사님들 공통점을 꼽으라면 미래가, 아니 현재가 불안하다는 것, 할 수만 있다면 그만하고 싶다는 것.

무어가 이리 불안한 것일까? 천수답처럼 하늘만 바라보며 사건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타인의 삶을 서류 다발로 묶어 다니며 끝없이 이어지는 좀비 같은 서면과 싸워야 한다는 것? 패소한다는 것?

이런 저런 이유들이 다 뒤엉켜 있겠다만, 누군들 어느 직업인들 사는 게 불안하지 않겠나. 살아 움직이기에 흔들리고 불안한 것을... 생면부지의 어느 한 사람 나를 믿고 동행하자 하니 감사한 직업인 것을...

천성이 수줍은 자니 속으로만 한 번 외치고 마음 다잡아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

“덤벼라 좀비서면들아, 너희는 죽은 문자와 종이, 나는 불안할지언정 살아 있고, 살아 있다. 의
뢰인을 위해, 변호사로 살아 있다.”


뱀발 : 변론종결 후에는 그만 좀 덤비라고!!

 

이병군 변호사
법률사무소 청지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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