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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올재단 김형성 이사장을 만나다고 김흥수 화백을 통해 남북협력과 통일을 꿈꾸다

●인터뷰/정리 : 김종규 변호사(법무법인 인본)

 

고 김흥수 화백은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등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이다. 김흥수 화백은 구상화와 기하학적 도형의 추상화를 대비시켜 “하모니즘”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여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더 명성을 얻은 작가였다. 1993년에는 생존작가로서는 두 번째(첫 번째는 러시아의 거장 샤갈이었다)로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그의 사망 이후 그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가을 상속인들이 작품들을 재단법인 한올에 기증을 하면서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재단법인 한올은 2017. 5. 31. 기증행사와 함께 고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개관하였다. 김흥수 화백이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부분도 회원들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 정보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흥수 화백의 작품과 유품을 기증 받아 화제가 된 재단 법인 한올의 김형성 이사장을 만나 기증받은 사연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특히, 김형성 이사장은 미술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는 법학 로서, 초대 입법조사처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기에 기증받은 사연이 더 궁금하였다.
김형성 이사장과는 김흥수 화백의 작품이 임시로 전시되어있는 일산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을 위하여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 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과 지면으로라도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한올재단이 어떤 재단인지 궁금합니다.
한올재단은 1978년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강인덕 님에 의해 설립된 재단입니다. 처음에는 극동문제연구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당시에는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등의 지원을 받아 북한을 연구하는 단체였습니다. 영문과 국문의 저널을 정기적으로 간행하였으니 활동이 왕성하였지요. 그런데 그 후 활동이 미미해졌고 오히려 지금은 같은 이름의 경남대학교 극동문
제연구소가 더 유명하지요.

저는 2015년 남북협력사업의 필요성과 통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극동문제연구소를 인수하여 이사장이 되었고 이후 재단의 명칭을 한올로 바꿨습니다.
2016년부터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북교류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려 활동이 미흡한 상태입니다.

그런 한올재단이 어떤 경위로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기증받고, 전시관까지 개관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현 단계에서 남북협력사업은 어렵다고 판단해 활동방향이나 재단의 목적을 바꾸신 것인지요?
(웃음) 그런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기증받은 것이 남북협력활동과 통일을 준비하는 재단의 목적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차차 얘기하고 우선 기증받게 된 사연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년 남북협력관계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린 상황에서 재단의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교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김흥수 화백의 유족들은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기증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선친의 뜻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미술관을 설립하고 또 선친의 고향이었던 북한과도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교류를 하여 북한 전시 등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재단을 찾고 있었습니다.
한올재단과 김흥수 화백의 유족들의 뜻이 잘 맞은 것이죠. 우연히 만났지만 서로 뜻이 잘 통하였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기증계약을 체결하고 공증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유족들의 뜻과 한올재단의 목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가로 몇 백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에게 기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유족들로서는 작품의 기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고, 기왕 누군가에게 기증을 하려면 선친의 뜻을 잘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곳이 한올재단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 김흥수 화백의 유족들은 모두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흥수 화백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국으로 오니 선친의 작품만 남아 있는데 그 작품에 대해서 엄청난 상속세가 나왔습니다. 그대로 캐나다로 돌아가버리면 작품은 모두 공매처리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익재단에 기증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 유족들은 미술관에 관심이 컸습니다. 그리고 많은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에서 김흥수 화백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함흥 출신인 김흥수 화백과 그 유족들은 고향인 북한에 대한 향수가 많았고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염려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흥수 화백의 작품이 단순히 문화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남북교류협력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업계획 등에 깊은 동감을 한 것 같습니다.

정말 보통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사천리로 기증이 이뤄졌습니다.

김흥수 화백은 어떤 분이신지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흥수 화백 하면 “하모니즘”이란 말이 함께 거론되는데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저 역시 법학교수라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기증받고 매일 작품을 보면서 배워 가고 있습니다. 김흥수 화백은 20세기 한국근대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화백도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지만 그분들은 한국사람들만 잘 아는 화가입니다. 세계미술계에서도 인정하는 화가는 고 김흥수 화백이 유일합니다.

김흥수 화백은 프랑스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1977년 미국에서 세계화단에 “하모니즘”을 선언하였고, 공식적으로 “하모니즘”의 창시로 공인받은 분입니다. 철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대단한 족적을 남긴 것입니다.

“하모니즘”은 구상과 비구상의 조화,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실현시킨 것입니다. 동양의 음양조화사상을 서양의 캔버스 위에 옮겨놓은 것이죠.

저는 앞으로 한올재단이 김흥수 화백의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제대로 평가받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사장님께 향후 계획 등을 묻고 싶었는데 좀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우선 재단이 기본적으로 김흥수 화백의 작품과 그의 작품세계인 “하모니즘”을 홍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사업이 될 것입니다. 실제 김흥수 화백의 그림은 국보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할 일을 재단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올해가 김흥수 화백께서 1977년 미국에서 “하모니즘”을 선포한 이래 40주년 되는 해입니다. 이에 맞춰 40주년 기념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06년 김흥수 화백은 생전에 그의 작품 20점을 제주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고 그것이 현재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상설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40주년 기념전시회는 제주현대미술관과 함께 주관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2019년은 김흥수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념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흥수 화백의 작품을 기증받은 것과 관련해서 남북교류협력 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와 관련된 계획도 있으신지요?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으나, 내년경에는 북한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 관계에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남북화해무드에 도움이 되는 순수문화교류로 고 김흥수 화백의 전시회가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평양이나 김흥수 화백의 고향이었던 함흥에서 전시회를 열면 좋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가족이 함흥에서 피난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구슬을 엮어서 남북협력과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사장님은 초대 입법조사처장을 지내시고 학교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신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법학자인 제가 미술전시관을 연 것을 많이 궁금해 하셨지요.(웃음) 저는 법학은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이란 사회는 항시 평화공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존재합니다. 남북분단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남북분단을 극복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헌법학자인 저에게 헌법연구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올재단 이사장으로서 하는 일은 남북문제의 현실 참여로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현실화시켜서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헌법학자인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민족의 반이 북한에 있고 그들의 인권과 삶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기준은 현대 민주 법치국가에서 ‘법치의 실현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법치주의의 실현은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게 합니다.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변호사들이라 생각합니다. 올바른 리걸 마인드를 갖고 활동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을 봤습니다. 저는 촛불혁명은 리걸 마인드가 작용함으로써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리걸 마인드는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향상된 점도 크지만, 법치주의를 펼쳐나가는 변호사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들은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를 펼쳐가는 중요한 일에 소명감을 갖고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맺음말 
인터뷰가 있던 날 전시관이 휴관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이사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김흥수 화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호사도 누렸다. 김형성 이사장님의 향후 계획이실현되어 남북교류협력에 김흥수 화백의 작품과 김형성 이사장님의 활동이 디딤돌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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