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뮤니티 회원기고
염려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禍不單行(화불단행)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염려거리는 한꺼번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염려거리에 골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다가 해결되어 한숨을 돌리면 며칠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염려거리가 달려든다. 그런데 뒤의 염려거리의 단초를 찬찬히 생각해 보면 앞의 염려거리가 거의 해결되어 갈 무렵 이미 싹이 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앞의 염려거리에 골몰하다 보니 뒷 염려의 태동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거나, 잠시 알아차렸다가도 코가 석 자라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뒷 염려를 깜빡 잊어먹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의 운행 양태와 흡사하다. 하기야 인간사도 크게 보면 자연 속에 포괄된다고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자마자 봄 바람이 거세지고 황사와 미세먼지가 혹독했던 겨울을 되돌아보게 할 정도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매화를 비롯하여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 철쭉 등이 황사를 뒤집어쓰고 피어난다. 사람들이 꽃놀이를 좀 즐기는가 하면 벌써 이마가 촉촉해지기 시작하면서 여름으로 접어 든다. 지긋지긋한 장마가 한 달 이상 계속되면서 四圍(사위)가 온통 눅눅해지고 사지가 찌뿌드드해질 무렵 장마는 그치고, 이번에는 땡볕이 사람들을 번철 위에 얹어 놓고 지지고 볶고 뒤집어 녹초를 만든다. 메마른 연못 가의 백일홍이 숨 쉴 기력조차 없는지 죽은 듯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여름은 물러간다.

이제 살았다 싶은 가을은 살아 있음의 행복감과 감사함을 가장 느끼게 하는 계절이지만, 더위에 지친 몸을 가누면서 어영부영 보내다가 가을을 좀 즐겨 보려고 폼을 잡을라치면 가을은 이미 빛을 바래고 벌써 옷깃 사이로 선뜩거리는 바람을 느낀다. 어느새 국화는 다 져 버리고 무서리가 내리며, 아직 잎새들이 물도 채 다 들기 전에 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갈수록 봄가을이 더 짧아져 가는 느낌이다. 폼도 제대로 잡기 전에 지긋지긋한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이러하다면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이러한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항상 염려거리는 한두 가지쯤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그러면 여기서 우리의 처세술은 그것을 전제로 하고 짜야 한다. 염려거리를 어떻게 생기지 않게 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염려거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느냐 하는 데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으므로 염려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대비함에 있어 완전할 수는 도저히 없다. 인간사에는 우연적 요인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 등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예상되는 불상사가 막을 수 없이 일어났을 때나,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염려거리에 대하여 미리 예상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일이 종결되었다고 하여 마음을 턱 놓을 일이 아니다. 곧 또 다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가볍게 워밍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결된 것에 대하여 즐기지 않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적절하게 즐기면서 다음을 대비하는 것이다. 마치 파도타기와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큰 파도를 타고 나면 끝인가? 그렇지 않다. 뒤에 오는 파도가 비록 작은 것일지언정 파도는 파도이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물을 흠뻑 덮어 쓰거나, 심지어 파도에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파도에 휩쓸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전장에서 한 차례의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여 보초도 두지 않고 병사들 모두가 사지를 쭉 뻗고 뻐드러져 자면 어떻게 되겠는가? 비유하자면 인생은 전쟁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로 점철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예상되거나 되지 않거나 각양의 기습과 전투가 벌어질 것이므로, 언제 어떠한 양상의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당황할 필요도 없고 당황하여서는 안 된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평소 훈련한 방식대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전쟁에서도 어떤 염려거리가 곧 발생할 것이 확실하거나 발생하였을 때 먼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불상사에 대하여 예상 밖의 일이라며 놀라고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벌써 전투 초기부터 한 방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 하고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몇 배 더 낫다.

그 다음에, 최악의 경우를 달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양하는 것이다. 응용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일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일단 일어나 버린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일은 불행을 이겨내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중국의 세계적 석학 임어당은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하는 데서 얻어지며, 이는 심리학적으로 에너지의 해방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걱정을 다스리는 법』이라는 책에서는 평균율의 법칙을 제시한다.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게티즈버그 전쟁에서의 위험은 평화 시 50세부터 55세까지 살아가는 동안의 위험과 비슷하다.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겠는가를 분석해 보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지레 걱정하고 있는 것이 태반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염려는 내일의 슬픔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없애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열 손가락을 다 놓고 앉은 자리에서 당하고만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대비책은 최선을 다하여 하되, 걱정해 봤자 막을 수 없거나 풀 수 없는 문제는 걱정이 부질없다는 것이다.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걱정하는 것의 4%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잘 판단하여 나머지 96%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그저 음악이나 들으면서 술이나 한 잔 하고 잊는 것이 더 낫다. 그래도 이따금 염려가 되살아나면, 최악의 경우에는 집을 날리거나, 심지어 죽기까지밖에 더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마음을 의외로 편안하게 해 준다. 염려는 끝없이 계속되는 만큼 그것들에 언제까지나 얽매어 산다면 염려를 갖고 무덤까지 가게 될 것이다.

 

오종권 변호사
●법무법인 새한양

오종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