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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 저
아름드리미디어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가장 무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1994년이었다. 나치와 홀로코스트. 당시 나의 머릿속에 이 주제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이 불굴의 의지와 생존본능으로 살아남아 가족과 재회하는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다.
그러한 고정관념과 만화로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끌려 읽게 되었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나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만화임에도 감동과 카타르시스가 아닌 답답하고 불편한 기분이 당시 중학교 2학년 어린 학생의 예민한 감수성을 깊이 파고들었다. 왜 그런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고, 다시 읽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올해 초 서점에 들렀다 합본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된 『쥐』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과거의 강렬한 느낌 때문에 다시 구매하는 데 큰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로부터 20년이 넘게 흘렀기에 독자로서의 나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였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변호사로 일을 하며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변화하였다. 감수성도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무뎌졌다. 그러나 1994년에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그대로였고, 이번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 깊은 두려움과 먹먹한 슬픔의 감정들이 더해져 그때마다 책을 덮었다 다시 읽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었다.
『쥐』는 비극을 차갑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생존 서사시가 아니라 광기 어린 피의 역사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상처를 남기는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일종의 사초(史草)이다. 블라덱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하였지만 그 와중에 어린 아들인 리슈를 잃었고 그의 아내 아냐는 살아남았지만 여생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블라덱 그 자신도 지독한 구두쇠에 강박적 성격의 사람이 되어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울고 들어온 어린 아티(아트의 애칭)에게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 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블라덱에게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깊은 상흔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불편함은 홀로코스트 생존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쥐』의 첫 타이틀은 ‘아버지에게 맺혀 있는 피의 역사’이다. 피의 역사는 흘러간 것이 아니라 블라덱과 그 가족들에게 여전히 맺혀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한 종족인 건 맞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광기에 의해 사랑스러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픈 심정이 가슴을 둔탁하게 때릴 때 책을 잠시 덮었고, 아냐의 자살에 대해 블라덱과 아티가 격정적 회한을 느끼며 오열할 때 ‘만일 그들의 비극이 나의 현실이 되었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니 두려운 감정이 느껴지면서 다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비극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같은 비극은 다시 벌어지고 있기에. 시리아 등지에서는 IS의 잔학행위로 어린 아이들을 비롯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고조되는 위기 속에 평화에 대한 갈구가 무엇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전쟁과 광기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떠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일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김승현 변호사
●법무법인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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