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판

수업 중 판서를 하다가 갑자기 뭔가 물컹하더니 손이 칠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몸의 절반이 들어갔을 때 “선생님! 새가 유리에 부딪쳐 떨어졌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고 싶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물에 빠지듯 흑판에 빨려 들어갔다. 칠판 속으로 들어가니 건너편 교실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짝과 떠들다가 생물 선생님에게 걸려서 철 필통으로 뺨을 맞았다. 맞을 때마다 샤프가 흔들려 덜그럭거렸다. 아이들이 웃었다. 뺨보다 그 쇳소리가 더 아파왔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교문 밖의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종속과목강문계!”를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칠판을 건너오자 교실에 아이들은 없고 유리창 여기저기 검붉은 핏자국만 가득하다.

그 시절의 교실에서는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들에게 매를 맞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별 문제 없이 체벌이 이루어진 시기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날들도 있다. 나는 1987년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남자 중학교여서 학교 분위기가 거칠었고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심지어 어떤 아이에게 “교복 뒷주머니에 있던 동전이 휘어졌더라!”라는 믿기 힘든 말을 듣기도 했다. 아이들도 매에 익숙해져서 체벌이 잘못되었다고 아예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하루. 중학교 2학년 영어 시간이었다. 그 남자 선생님은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모두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교실 중간에 앉아 있던 친구의 지우개가 굴러 떨어졌다. 그 아이는 떨어진 지우개를 주웠다.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심한 욕설과 함께 “이 새끼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라며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도 마구 때리다가 그 아이가 쓰러지자 나중에는 아예 발로 차고 짓밟았다.

나는 지금 한 남자 중학교의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 선생님에게 제자가 아닌, 한 사람의 교사로서 묻고 싶다. “그렇게 때리면서까지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 무엇이었나요?”

그는 학교에서 능력 있는 젊은 교사였다. 그가 영어 수업을 맡은 반들은 항상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아이들에게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게 했다. 그때의 영어 교과서는 Listen & Repeat, Dialogue, 본문 Part1, Part2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내가 아직도 그때의 영어 교과서 구성을 기억하는 이유는 한 과(科)가 끝날 때마다 그 과를 통째로 외웠기 때문이다. 10과 정도 나갔을 때였던가. 수업이 시작되면 무작위로 “너는 2과 다이얼로그”, “너는 5과 리슨 앤 리피트”, “너는 7과 본문 파트 원”, “너는 9과 본문 파트 투”, “너는 10과 다이얼로그” 지적을 받은 아이들은 일어나서 외운 그 부분을 말해야 한다. 공포심에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가락이 마구 꼬이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짝이어서 손을 주물러 주었던 기억이 있다. 못 외운 아이들은 교실 뒤로 나가있다가 순서대로 빙빙 돌면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허벅지나 엉덩이를 계속 맞았다. 우리는 이렇게 맞으면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영어 교과서 통째로 외우기’가 가능함을 몸소 증명했다.

물론 교사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는 한 반에 5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교는 한 반에 보통 25명 정도다.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교사라면 ‘영어 교과서 통째로 외우기’ 같은 일은 할 수 없다. 나라 전체가 군대식 문화에 젖어 있던 1980년대에 체벌은 거의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흔한 교육방식이기도 했다. 그 선생님도 항상 무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웃으며 살갑게도 대하고 수업을 정말 잘 하시는 분이었다. 사실 영어는 문장으로 암기하고 있는 것이 더 능률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 그분은 그저 화풀이처럼 느껴지는 감정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그날 내 친구가 지우개를 주우려다 맞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감정적인 화풀이였다. 그 친구가 그저 허리를 굽혀 움직인 것이 그토록 심하게 맞아도 되는 죄가 될 수는 없다.

이 시는 중학교 3학년 때의 체험을 일부 인용했다. 나도 많은 매를 맞으며 컸지만 정말 기분 나쁜 매, 상처로 남는 매가 있다. 뺨이 아픈 것이 아니라 덜그럭거리는 그 쇳소리가 내 심장을 아프게 했다. 어떤 경우라도 어깨 위는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무엇보다 현재 내가 학교 체벌을 반대하는 이유는, 매를 맞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쉽게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대물림. 그것을 나이를 먹고 뒤늦게 깨달았다. 나 역시도 교사 초기시절,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다. 매를 자주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난 아이들에게 매를 한 번 댈 때는 어설프게 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학창시절, 군대시절 매를 맞아본 적이 있기에 나 역시 쉽게 매를 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기 전에 그런 체벌이 용인되는 분위기에서 나도 학생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미안하다, 그때의 제자들아! 너희가 나한테 맞은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구나! 내 제자들에게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도 미안합니다.” 이 글은 한시절의 나쁜 기억이자 나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정재학 시인 ●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2004),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지구』(2008), 『모음들이 쏟아진다』(2014) 박인환문학상(2004),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15)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