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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인터뷰

 

이번 10월호 인물 탐방에서는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씨인데도 너무나 유명한 분을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베스트셀링 서적들의 작가이기도 하고, 장발장은행 은행장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정리 : 성승환 본보 편집위원

 

 

장발장은행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장발장은행은 2015년 2월 25일에 처음 세워졌어요. 그러니까 2년 6개월, 즉 30개월 정도 지났네요.

 

장발장은행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벌금형을 받은 분들 중에 벌금을 못 내 강제노역장에 끌려가 자유를 빼앗기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연대’에서 ‘평화인문학’이라고 교도소에 수감된 분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았음에도 벌금을 못 내 수감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9년 벌금을 못 내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들이 43,199명이었습니다. 징역형은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벌인데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빠져 나오기도 하지만, 벌금형에는 집행유예가 없어서 벌금을 못 내면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합니다. 이는 명백한 모순이고 오래 전에 법제도가 바뀌었어야 마땅했습니다. 인권연대가 중심이 되어 ‘43,199 제도개선’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시민사회에서라도 이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다만 일부라도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벌금을 빌려줘서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장발장은행을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발장은행은 요컨대, 벌금을 못 내서 교도소에 가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목적과 국회에 법제도를 개선하라는 일종의 시위의 성격을 품고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은행이 세워지고 언론에도 소개 되니까 국회가 움직였습니다.
2016년 1월에 우리가 요구했던 4개 사항 중 2개의 법이 바뀌었죠. 하나는 벌금형에 집행유예를 집어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벌금의 분납, 연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 시행령이 나올 때까지 2년이 유예되었죠. 우리는 이 법이 시행되는 2018년 1월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이라고 하면, ‘장발장’이라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됩니다. 『레미제라블』 등 많은 고전들을 남긴 작가 빅토르 위고는 현실 정치에도 관여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로도 그렇지만 지식인들, 문학인들이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 온 전통이 있는데, 빅토르 위고는 그러한 전통 속 인물에 해당됩니다. 폭군의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1,000명, 100명, 10명, 1명으로 줄어들 때 내가 거기에 남는 마지막 한 명이 될 것이라는 말을 시로 표현할 만큼, 빅토르 위고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실제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19년 동안 추방되어 망명해야만 했어요. 그렇지만, 빅토르 위고가 타계했을 때에는 국장이 치러졌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그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장발장은행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계신가요?
인권운동을 해 온 분들, 인문학 전공자들, 형법학계에 계신 분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변호사님들도 계십니다.


 

장발장은행의 그간 성과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저희는 2017년 8월 말 현재 30개월의 기간 동안 38차례 심사 결정을 거쳐 513명의 시민들에게 총 967,037,000원을 대출하였습니다. 재원은 4,760명의 개인, 단체, 교회, 성당으로부터 받은 총 753,103,018원의 성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대출금이 재원보다 많은 것은 대출금을 완납하신 73명을 비롯해 상환을 해 주신 분들이 있어서, 그것이 다시 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장발장은행의 혜택을 받는 분들은 노역장에 유치되는 전체 인원에 비하면 아주 적은 비율이에요.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노역장유치자가 47,855명인데, 거기에 비하면 2년 반 동안 513명이니 1% 남짓에 불과해요. 이 은행이 더욱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의 운영방식이 궁금합니다.
대출금은 300만 원을 한도로 하고 있습니다. 이자도 없고 담보도 없는 대출입니다. 대출상환은 6개월 거치 12개월 분할상환으로 일단 정했습니다. 하지만 대출자의 상황에 따라 운영상 기간을 늘리는 등 융통성은 있습니다.

대출실행 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은 대출신청자의 상황인데, 강제노역에 가게 될 때 집안에 돌봐야 할 어르신이 계시거나 키울 어린 아이가 있는 경우에 우선적으로 대출해 드리고 있습니다.

대출신청자가 어떤 잘못이 저질렀는지는 벌금액 등을 통해 국가에 의해 이미 판단된 것이므로 그 점은 우리에게 2차적 고려 사항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 주거환경이고 나이도 봅니다. 가령 19, 20세밖에 안 된 젊은이가 사회생활 초기에 자유를 빼앗기는 경험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음주운전 등의 경우는 대출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법조인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법조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님 두 분이 대출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결국 시민 성금으로 재원이 조달되니 십시일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법제도가 제대로 바뀔 수 있도록, 그래서 장발장은행이 빨리 문을 닫을 수 있도록 법조인들께서 다방면에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바람입니다.

 

현행 벌금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형사정책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떠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앞서 설명한 벌금형의 집행유예와 연납·분납은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현행 총액벌금형제도가 아니라 일수벌금형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처지에 상관없이 같은 법정형에 따라 벌금형에 처하는 것이 현행 총액벌금형제도인 데 비해, 벌금의 일수를 부과하고 소득수준에 따라 벌금액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 일수벌금형제도입니다. 이 부분은 개선되지 못하였습니다. 제도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 수형자의 재산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지만, 건강보험료 등은 이미 재산상황을 파악해서 부과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독 이것만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합니다.

 

일수벌금형제도는 외국에서 어떻게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나요?
독일, 핀란드 등 유럽 나라들에서는 일수를 정한 다음, 여기에 그 사람의 소득과 재산을 곱하는 방식의 일수벌금형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소득과 부의 크기에 따라 5천 배의 차이도 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과태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핀란드의 노키아사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시속 60㎞ 속도제한을 넘어 80㎞대로 운전한 사안에서 부과된 과태료 금액이 11만 6,000유로였습니다. 이는 우리 돈으로 1억 5,000만 원에 상당하죠.

 

한국에서도 일수벌금형제도의 도입이 가능한가요?
결국 빈곤의 문제이고, 범죄도 거의 다 생계형이에요. 그분들에게 300만 원 내지 500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을 고려한 일수벌금형제도가 없는 반면에, 판사 재량으로 재벌에게 황제노역을 허용한 일로 국민의 분노를 산 적이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도 일수벌금제가 절실합니다.

 


이제 화제를 돌려 다른 주제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운행하면 택시운전사는 어떠한 일을 찾아야 할까요?
택시운전뿐만 아니라 변화를 겪게 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이 대체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요. 
이미 쏠림 현상은 심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보다는 정보화혁명의 연동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생산에서 인풋과 아웃풋 사이에 비대칭성이 엄청나게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느 IT 분야의 소비자는 전 지구적으로 4억 명이 넘는데,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60명이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엄청난 비대칭성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당대의 부호를 설명해 주고 그만큼 일자리의 소멸을 반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공유의 문제, 즉 몫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위주로 한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직역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체가 있을 것이라고 본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판·검사 등의 직역도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위협을 받을 수 있겠네요.
다른 한편으로 인간관계를 매개했던 분야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러한 관계성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고 재창출할 것이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정치권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안 국민투표를 하는 의제가 던져져 있습니다. 어떠한 헌법조항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부의 쏠림 현상, 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소멸, 일자리의 숫자가 줄어들 뿐 아니라 수준도 열악해지는 문제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인간의 존재 조건, 생존 조건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저로서는 기본소득 개헌을 강조하고 있어요.
이 문제는 ‘권리’의 차원보다는 ‘몫’의 차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세계 NGO 활동가가 가난한 한 노인에게 집을 가질 권리의 중요성을 설명하자, 그 노인은 “나에겐 집을 가질 권리가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더군요. 이는 시사점이 큽니다.
존엄하게 살 권리 등 좋은 말들을 하고 있지만 내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개별적으로 주고, 조건 없이 주는 ‘기본소득’이라는 현금지급이 21세기에는 틀림없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앞당길 것인가가 우리 시민사회에 주어진 과제가 되겠지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실업률 증가, 소득양극화, 인간소외 등 문제 해결을 위해 각계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요.
네. 그리고 저도 거기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4조 제1항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실질화, 구체화를 위해 기본소득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조항에 두는 것 등에 관하여 선생님께서 개헌운동을 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러한 개헌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헌법 제34조 제1항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말하고 있으나 텅 빈 기표와 다름없습니다. 구체성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몫이 있다는 인식 아래 사회구성원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넣어야 한다는 개헌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본소득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정헌법에 어떠한 조항을 넣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토론회에 참여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또 기본소득 개헌 입법운동에 회원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녹색당, 노동당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힘들이 더 폭넓게 모아져야 하겠죠.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회 전반에 기본소득이 알려져 있지는 못합니다. 불안정노동의 문제도 그렇고, 빈민의 문제도 그렇고, 이들에게 어떻게 기본적인 생존의 몫을 가지게 할 것이냐의 논의가 개헌 과정에서 전개되어야 합니다. 변호사 분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참여하셨으면 좋겠네요.

 

기본소득에 관하여 우려스러운 부분이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인데, 선생님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이것은 언제나 제기되는 질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총액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GDP의 10%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출발하자고 주장합니다. 한국 GDP가 1,600조 정도이니 160조의 재원조달이 가능합니다. 이를 5,000만 명에게 나누어 준다면, 월 25만 원, 1년 300만 원 정도입니다.
한국의 국민 부담률은 27% 이내로, 조세 부담률 20%, 사회보장 기여금 6.5% 정도입니다. 가령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의 경우 국민 부담률이 50%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 국민 부담률을 보여서,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비하면 8% 낮고, 최상위권과는 20%의 차이가 납니다. 저는 한국 GDP의 10%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결국 이는 정치의 문제이고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항상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도 전 국민이 벌어들이는 돈의 10%를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 이 정도도 못한다면, 그것은 의지의 부족, 철학의 결핍에 불과합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일단 GDP의 10%로 시작하고 그 다음에 공유 부분, 즉 토지, 금융, 지적재산, 전파, 정보, 빅 데이터 등 본디 국민 모두의 것인데 사유화된 것들을 국민 모두의 몫으로 늘려 나간다면, 저는 GDP의 20%까지도 기본소득 재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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