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리: 주영글 본보 편집위원

현재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재직 중이신데 주로 어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지요?
필요적 변호사건과 빈곤을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 신청을 한 사건들을 배당받습니다. 잔인하거나 사회적 비난을 받는 사건, 경제적 빈곤으로 변호인이 선정된 사건, 피고인이 70세 이상이거나 농아자 또는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사건이 주로 옵니다.
작년에 형사 합의부 사건을 주로 할 때에는, 뉴스를 보다가 경기도에 살인사건이 나면 관할을 살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살인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이후 미제사건을 재수사하면서 15년 만에 2인조 강도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2인조 강도 중 한 명은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자 자살했다는 내용이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건이 저에게 올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실제로 그 사건이 제게 배당되었습니다. 형사 합의부 사건은 잔인하거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충격적인 사건이 많습니다. 실제 사건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해서, 점점 TV에서 하는 드라마가 재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봅니다.

국선전담변호사의 구체적인 업무내용에 대해 알려 주세요.
각자 맡고 있는 재판부에 따라 구체적인 업무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저의 경우 작년에는 형사 합의부, 항소심, 일반 단독 재판부 2개, 정식재판 청구 전담 재판부 사건을 담당했었고, 올해는 형사 합의부가 빠지는 대신 정식재판 청구 재판부 사건이 늘었습니다. 국선전담변호사들도 형사재판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은 다 합니다. 불구속 피고인에게 재판 중 영장이 발부될 때 영장실질심사에도 참여하고, 피고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보석청구도 합니다. 거기에 더해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 피고인들을 위해 국민참여재판 변론을 하기도 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을 접할 기회가 사선변호사님들보다는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작년에 국민참여재판 4건, 올해는 2건을 했고 현재도 국민참여재판이 2건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국민참여재판 사건은 기록이 방대해서 이틀 연속으로 재판한 적도 있었는데, 이 사건은 판결도 새벽에 선고되었습니다. 간혹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기도 합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국선전담변호사의 도움을 받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처지가 어려운 분들을 만납니다. 구속피고인 중에서도 주로 어려운 분들을 만납니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법무법인에서 일했기 때문에 주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되는 분들을 의뢰인으로 만나 왔습니다.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어려운 분들의 변호를 해 드린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막상 만나본 피고인들은 제가 상상하기 어려운 삶을 사시는 분들이 태반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경우도 많고, 정신병원 폐쇄병동 안에 들어가 피고인 면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피고인의 사망도 종종 경험합니다. 재판 시간이 다 되도록 피고인이 오지 않아서 직원에게 확인을 부탁했는데, 재판이 예정된 시간 무렵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방금 사망했다고 한 다음 공소기각을 구하고 밖에 나와 기록을 다시 보았습니다. 가난했지만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하고 떠돌던 그 사람에게 국가가 해 준 것으로 기록상 나타나는 것은 국선변호인인 저를 선정해 준 것밖에 없었습니다. 판결을 받지 못하고 떠난 피고인의 사망증명서를 받아서, 공소기각을 구하는 한 장짜리 서면을 제출할 때는 피고인이 살아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진행했던 사건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피고인이 있나요?
7년간 강도상해죄로 수사 및 재판을 받던 조선족 피고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피고인의 공범으로 기소된 사람이 징역 13년을 선고받아 확정까지 되었고, 공범이 법정에 나와 피고인과 함께 범행했다고 증언했었습니다. 저는 사건 발생지에 간 사실이 없다는 피고인의 말을 믿고, 사건 당시 피고인이 사건 발생 장소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피고인이 사건 발생일 현금을 인출한 현금인출기 위치를 사실조회하고 피고인의 금융거래내역에서 도시가스요금과 케이블TV 요금을 출금한 가스공급업체와 케이블TV 업체의 서비스권역을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이 진범이 아님이 밝혀졌고,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피고인을 억울한 옥살이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는 생각에 보람이 느껴졌었습니다.

국선전담변호사가 관리기관인 법원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법원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시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고인들이 워낙 강성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한 달에 약 30건의 사건을 배당받습니다. 서른 명의 피고인을 매달 새로 만나는 것입니다. 조현병이 있는 피고인이 제게, 정신이 맑고 깨끗한 자신에 대해서 심신미약 감경 얘기를 꺼냈다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적도 있고, 실제로 같이 근무하는 다른 변호사님은 심신미약 주장을 하셨다가 명예훼손죄로 고소와 진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허위 내용으로 진정하시는 분들도 있고, 위협적인 분들, 막무가내로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을 때리려 하고 판사, 검사에게 욕설을 하며 고성을 지르는 피고인도 있었는데, 결국 보복목적 협박으로 구속까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과 한 배를 타고 사건을 이끌어 나가려면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정말 쉽지 않습니다. 재판부에서 다소 황당하다고 느낄 정도의 주장이나 증거신청도 불사합니다. 피고인들이 오해와 실망으로 변호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리어 피고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저를 변호사로 부르지 않고 ‘아지매’라고 부르는 치매 피고인 할아버지, ‘이은미 양’, ‘이 양’, ‘이 양반’이라고 지칭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피고인은 제가 전화를 받으면 ‘이은미 양이야?’라고 하는데, 그런 때는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은 직원으로부터 ‘이씨 아줌마’를 찾는 전화가 왔다고 전달받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한다는 등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편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충분히 그런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점만 말하거나 무죄를 장담하지 않고,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 모두에 대해서 설명드리거나 양형기준, 소송비용 부담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면 오히려 피고인은 자백을 유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들 때문에 생긴 편견이 아닌가 합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무죄를 받은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작년 한 해 고정사건, 단독사건에서도 여러 건 무죄를 받았고 형사 합의부에서도 6건의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 중 3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무죄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무죄를 받는 사건 수가 사선변호인으로 활동할 때보다는 많지만, 배당받는 사건을 감안하면, 사선변호사님들의 무죄율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제가 가장 결과에 신경 쓰는 사건은 약식명령에 대한 정식재판청구 사건(고정사건)입니다. 노령연금 20만 원으로 겨우 식사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독거노인에게 30만 원의 벌금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됩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빠듯하게 한 달 한 달을 살아가는 극빈층에게 벌금 1~ 2백만 원은 일어서려는 의지를 주저앉히거나 가정이 와해되는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고정사건은 형사 상고사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항소율도 높습니다. 고정사건의 경우 민생과 직결된 생활밀착형 사건이 많고, 어려운 처지의 피고인들에게는 벌금 액수를 줄이거나 면하는 결과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작은 사건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국민참여재판으로 무죄를 받았던 사건 중 가스방출죄와 방화죄 사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가스방출죄는 가스레인지 연결호스 밸브를 열고, 가스레인지 점화 손잡이를 돌려(점화는 시키지 않은 상태로)놓아 가스를 방출시켰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었었습니다. 모두들 가스가 당연히 샐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가정용 가스레인지가 그 정도 안정성도 갖추지 않고 보편화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가스레인지 제조회사에 사실조회를 한 결과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연결호스와 가스레인지 점화 손잡이를 모두 열어 두어도 점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스가 새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방화죄의 경우 피고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기름이 떨어져 오토바이가 멈추자, 밤에 치킨집 앞에 세워져 있는 배달용 오토바이에서 기름을 훔치려고 했습니다. 피고인은 페트병으로 오토바이 기름통에서 기름을 받고 있었는데, 페트병 입구가 좁아서 빨리 기름을 받을 수가 없자 입구를 불로 녹여 넓히려고 라이터로 페트병 입구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페트병에 묻은 기름으로 인해 불이 났던 사건이었습니다. 도둑의 마음으로 사건을 재연해 보면 방화의 고의가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일리가 있었습니다. 기름을 훔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조급합니다. 누가 볼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훔치고 자리를 떠야 하니까요. 또, 불이 나면 기름도 훔칠 수 없고요. 이 사건도 피고인에게 실화책임을 묻는 것은 몰라도, 방화의 고의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변론했었는데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사선변호인으로 활동할 때에 비하여, 업무의 난이도, 강도, 보람은 어떠한가요?
업무의 난이도, 강도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업무 스타일, 습관, 성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사건을 선택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건을 통해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새롭게 깨닫기도 합니다. 그런 때에 특별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요즘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국선전담변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 대해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공감능력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 외적으로 순수한 관심을 가지는 다른 분야, 일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관심을 두는 다른 분야가 있으면, 결국 일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은미 변호사 약력]
제4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5기
前 법무법인 한별
前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계약심의위원
現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서울시 공익변호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