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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와 변호사

 

요즘 2~30대 젊은 층에서는 ‘발리에서 한 달 살기’,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처럼 해외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일정기간 거주하는 일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해외에 나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광을 넘어서 비교적 장기간 한 곳에 머무르며 현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다. 디지털 노마드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장소에 상관하지 않고 여기저기 이동하며 업무를 보는 이들을 일컫는데,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장점을 이용해 해외에 장기간 머물면서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IT 기술발달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등장했고, 최근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주로 IT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프리랜서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대다수를 차지했다면 최근에는 채용부터 업무의 전 과정을 사무실 없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회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원격 근무가 대중화 되면서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 불리는 발리나 치앙마이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레지던스나 공유 오피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전세계 각 도시의 물가, 교통정보, 공유 오피스 위치 같은 거주 환경을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부터,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일자리, 부동산 단기 렌트 공유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처럼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로이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먼 얘기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 또는 업무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일을 할 수 있고, 일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보면서 과연 우리 변호사들은 그런 자유로운 삶이 불가능한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변호사들의 삶은 디지털 노마드의 삶과는 너무도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증인신문기일처럼 특별한 기일이 아닌 이상 통상 재판은 10여 분 남짓 진행되지만 그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 길다. 특히 저 멀리 지방 재판인 경우에는 그 10여 분을 위해 하루 반나절을 소모해야 할 때도 많다.

가끔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몇 시간이 걸려 재판에 출석했지만 그 재판이 이동 시간의 반의 반도 걸리지 않고 끝나버릴 때, 밀려오는 허무함 속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전국에 있는 각 지방법원에 화상재판을 위한 법정을 설치하고, 증인신문기일처럼 특수한 기일은 제외한 기일에는 가까운 법원에 출석해 변호사 신분확인을 하고 화상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무의미한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변호사도(적어도 국내에서는)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는 막연한 상상일 뿐 갖가지 반론과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다만 변화는, 혁신은 모든 제반 사정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전자소송 시스템이 도입될 때만 해도 법조계에서 반신반의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자소송을 도입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탈도 많고 오류도 많지만 송달이 빠르고,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있으면 기록을 읽을 수 있는 등 그 편리함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일상이 된 시점에서 우리 변호사들도 불편함을 꿋꿋이 감내하기보단 비록 허황될지라도 엉뚱한 상상으로 변화를 꿈꿔 본다면 우리 삶에도 또 다른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까?

 

박주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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