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40번 버스기사가 어린 아이만을 내리게 한 뒤, 아이의 엄마는 내리지 못하게 하고 승객들의 하차 요구에도 버스를 달렸다는 인터넷 게시글이 각종 포털 메인을 달구었다. 해당 기사에는 댓글이 수천 개가 달렸고, 댓글의 태반이 버스기사가 사이코패스라는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버스기사의 딸들과 다른 언론사의 팩트 체크를 통한 기사,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네티즌들은 그때서야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자, 이런 상황에서 버스기사가 받은 정신적 손해는 회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위자를 하여야 하는 건가?

탤런트 김영애 씨는 황토팩 사업으로 수천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로 성공하였다. 그런데 한 소비자 고발프로그램에서 중금속이 발견되었다고 방송을 하였다. 당연한 결과로 그녀의 사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동안 탤런트로 쌓아온 이미지에도 흠집을 입었으며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식약청은 황토팩의 안전성 논란에 적합 판정을 내렸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중금속이라고 말한 성분은 황토 고유의 자성체였음이 밝혀졌다.

김영애 씨는 해당 프로그램을 상대로 20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였다. 1심에서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고의성이 없고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또한 형사고소에서 대해서는 언론의 공익성을 이유로 하여 무죄의 선고가 내려졌다.

설령 항소심에서 김영애 씨의 청구대로 200억 원 전부승소 판결을 내려 주었다면 그녀의 인생 전부가 망가진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되는 것이었을까? 형사사건에서 명예훼손이 유죄의 판결이 내려졌다면 기껏 기백만 원의 벌금형이 그녀의 울분을 풀어주는 데 충분한 것이었을까?

요즘 이와 같이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하고 있다. 형사고소와 민사 손해배상청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의뢰인은 당시 고위공직자였다. 언론사는 최근의 어수선한 시국의 분위기에 자극적인 몇 가지 단어들로 이루어진 헤드라인, 몇 가지 사소한 사실과 그보다 더 많은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버무려 의뢰인의 지위에 있는 자라면 하였을 법한 스토리를 지어 내어 기사를 쏟아 내었다.

당연히 그 기사는 허위의 사실이었다. 타 언론사들은 해당 기사를 베껴 내어 더 자극적이고 몇 가지의 살을 붙여 또 다른 스토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었다. 댓글들 역시 기사에 동조하여 의뢰인을 악마로 몰아갔다. 결국 그는 해당 기관 내에서 자체 감사를 받게 되었다. 감사 결과, 기사의 내용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음에도 해당 언론은 그 감사조차 제 식구 감싸기의 허술한 감사였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었다. 결국 그는 대기발령 후 퇴직을 하였다.

고소와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하기 전에 언론중재위에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중재신청을 하였다. 중재 기일에 해당 기사의 책임자라는 사람이 나왔다. 중재 패널들은 해당 기사의 책임자에게 기사인지 논평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추측성 기사들을 쏟아 낸 것에 대하여 질타를 하였다. 그는 자신들도 타사의 기사의 내용을 일부 베껴 쓴 것이고, 해당 사건의 경우 취재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제대로 된 확인 취재 없이 기사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그를 당당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법의 제도가 자신들의 편인 것을. 기사는 삭제할 수 없고, 고소나 정식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법원의 판결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배짱을 부렸다. 나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의뢰인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밥만은 편히 먹고 싶은 작은 원칙이랄까? 그런데 이 사건을 수임하고 한동안은 그 의뢰인과 매주 술을 마셨다. 그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이 혹시나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고, 그에게 계속되는 약속을 만들어 삶의 작은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도 징역형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많아야 몇백만 원, 적게는 수십만 원의 벌금형이 전부인 것을 의뢰인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였고,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손해배상청구를 한 금액도 기껏 몇천만 원에 불과하다. 그 금액에 전부 인용될 수 있을까? 전부 인용되면 내 의뢰인이 수십 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쌓아온 명예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위자가 되는 것일까? 그런데 현행법과 판례의 태도로는 입증책임의 문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허위의 없는 사실을, 허구의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입증한단 말인가. 입증책임의 부담이 전환되거나 완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고 판례도 몇 존재하지 않더라. 언론이 언론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언론이 그 역할을 충실히 다할 때여야지 요즘처럼 타블로이드지 수준에 불과한 언론에 대하여 과연 이처럼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내가 법을 좋아하게 되고 사법시험을 치르게 된 것은 정반합이 맞아떨어지는 법구조와 논리가 즐거워서였다. 그런데 여기, 피해를 받은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이를 복구시킬 사람과 제도는 없다. 마녀사냥에 대한 책임은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김계리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