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

우리는 정말이지 거지 같습니다.
배고프고 더럽습니다.
더럽게 배고파서 부끄럽습니다.
우리에겐 세계적인 부끄러움이 있어요.
껌도 세계적으로 씹습니다.
침도 세계에서 제일로 잘 뱉습니다.

어쩌면 십대들이 해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은 이런 말들이 들려옵니다.
니들이 십대냐? 모여서 담배 피우게?
십대라는 말, 잘 들으면 욕설 같아요.
우리는 정말이지 휴지조각 같습니다.

-제논의 역설과 이 세계의 완벽한 불완전성에 대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꾸준하고도 완벽하게 이행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나이를 먹는 것이었다. 꾸준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나이를 먹는 일만은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숱한 그르침들이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완수되었다. 사실 이건 농담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썰렁한 진실이지만,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시간은 공히 상대적이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죽게 되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다. 이러한 상대적인 시간 개념을 제논보다 더 잘 이해했던 철학자는 없었던 듯하다. 제논에 의하면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고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그렇다. 어떻게 그러냐고? 우리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유예이다. 욕망의 실현이나 포기가 아니라, 욕망 자체를 유예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체제 유지 방법이다. 졸업을 해도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하더라도 아직 정규직이 아니며,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새로운 경쟁 체제에 진입해야 한다. 사실 경쟁이야 항상적인 조건이며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취업에 목을 매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수를 마무리하고도 졸업을 유예하는 일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발생하고 있다. 취직되지 않은 졸업생보다는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수도 있겠지만, 자발적 퇴행이라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유명한 카피도 있지만, 사람이란 그 생각의 깊이와 완전성과 무관하게 존엄한 존재이겠지만, (우선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부터 젊은이들의 존중보다는 노인에 대한 재인식에 바쳐진 것이다) 종종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에나, 그보다 먼저 소고기 수입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었을 때 광장에서 야무진 소리를 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생각이 흐려지는 고령자에게도 허락되는 선거권이 만 18세가 되기 전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 하필 책임 있는 어른의 목소리가 가장 결여된 집단이 스스로 내건 이름이 ‘어버이연합’인지 속이 답답하다. 나는 사회적인 것이라면 어떤 문제이든 스스로 해결 가능하고,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참여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실제로 선거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연한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춰진다면 아마도 학창시절에 학급이나 교내에서 벌어지는 선거를 훨씬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도 보다 자기결정적인 사유를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몫이 없는 자들’에게 사회란 그렇다. 따뜻하기는 한데 불편한 옷이거나, 예쁘기는 한데 추위를 막아 주지 못하는 옷과 같다. 그래서 그 불충분한 시공간에서 우리의 십대들은 여러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든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천국을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바로 그 아이들 덕분에 이 지옥이 잠시 천국으로 바뀌고는 한다. 그리고 그 천사들이 다시 이 험악한 사회로 재진입할 때 침을 뱉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온갖 불량한 흉내를 다 내는 것은 아닌가? 그래야만 사회인이 될 것 같아서.

이현승 시인 ● 1996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