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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여권 소동

 

 

축구 마니아인 나는 매일 아침 축구 관련 기사들을 제일 먼저 살펴보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작년 이맘때에도 아침잠을 깨며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한국 프로축구팀 소속의 외국인 선수 A가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관심 있게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공익법무관으로 재직할 당시 각종 위조여권 사용 사례들을 다뤄보았던 터라, 만약 내가 변호한다면 어떻게 변호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날 바로 A가 에이전트와 함께 우리 법무법인 사무실을 찾아왔다. 우리 법무법인이 국적 및 외국인의 출입국·체류와 관련된 사건들을 많이 대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상담을 해 보니, A 본인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A는 브라질 국적으로, 2012년까지 브라질 프로축구팀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하다가, 2012년경 중동의 한 프로축구팀으로 이적을 했다. 그런데 브라질에 비해 연봉이 높은 중동의 프로축구팀을 경험한 이후, A는 중동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선수활동을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AFC(아시아축구연맹, The Asian Football Confederation) 소속 국가 선수들이 AFC 소속 국가 프로축구팀에서 활동할 경우 우대를 받는 ‘아시아 쿼터제’1)라는 제도 때문에, A는 AFC 소속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2013년경 휴식기에 고향인 브라질로 돌아가 만난 다른 브라질 국적 축구선수 B가 AFC 소속 국가인 동티모르 국적을 취득하여 이중국적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귀가 솔깃했던 A는 B에게 어떻게 동티모르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고, B는 본인을 도와 동티모르 국적을 취득하게 해 준 C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A에게 소개해 주었다. C는 A에게 본인을 태국에 체류하고 있는 변호사라고 소개하였고, A가 AFC 소속 국가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하였으며, 이를 위해 A의 가족들 중 그들 국가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A에게 가족들의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A가 가족들의 인적사항을 C에게 보내자, 얼마 후 C는 A의 조부가 시리아에서 출생하였으므로 A도 시리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면서 아랍어로 작성된 A 조부의 시리아 출생증명서를 보냈다. 그러나 A는 아랍어를 읽을 수 없었고 아랍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도 브라질에서는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서류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B의 동티모르 국적을 성공적으로 취득시켜 준 사실만 보고 C를 믿은 채 시리아 국적을 취득하는 절차를 밟기로 결정하고 2014년경 C에게 1만 헤알(한화 약 360만 원)을 송금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C로부터 시리아 국적 취득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A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시리아 여권도 우편으로 받았다. 이후 A는 2015년까지는 계속해서 브라질 선수로 활동을 하였고, 2016년경 비로소 시리아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시리아 국적으로 아시아 쿼터제를 이용하여 선수 활동을 하다가, 2016년 10월 중순경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게 되었다.


A가 상담과정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FIFA(국제축구연맹,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의 TMS(선수 이적 대조 시스템, Transfer Matching System) 부서에서 구단 측으로 보낸 공문에, ‘A의 시리아 여권이 위조여권으로 보이며, 유효한 것이 아니다(the Syrian passport 
may have been forged and/or falsified and is not a valid document)’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공문에는 왜 위조여권으로 보이는지, 왜 유효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기 때문에, A가 계속해서 억울하다고 주장한다면 변호인으로서는 먼저 위조여권이 아니라 적법하게 발급된 여권임을 주장해 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공신력 있는 국제스포츠단체인 FIFA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그와 같은 공문을 보낼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시리아의 경우 2011년부터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정부기관의 기능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고, 그 때문에 FIFA가 A의 시리아 여권의 위조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을 받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위조여권으로 보인다’라는 추정적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A의 여권이 ‘시리아 정부가 정식으로 발급한 여권이 맞다’는 시리아 정부의 공식 의견만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무혐의·무죄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C를 통해 동티모르 여권을 취득한 B의 경우, 동티모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국가대항전 경기에 출전하기도 하였으므로, A의 여권도 시리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급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전 중인 시리아 정부가 얼마나 빨리 협조적으로 공식 의견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형사재판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A에게 설명하자 A는 난색을 표하였다. A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브라질에 있는 부모를 모두 본인의 급료로 부양하고 있었는데,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어 경기 출전과 급료 수령이 제한적으로만 가능했고, 이 때문에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A는 죄를 모두 인정하고 올해 초 유죄판결을 받은 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명령을 받고 입국금지 5년의 규제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얼마 전 A에 대해 영구적 선수등록금지의 징계처분을 하여, A는 이제 영영 한국에서 프로축구선수로는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A가 기소된 이후 수사기록을 열람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리아 정부가 여권용지를 대량으로 도난당했고 이 같은 사실이 국제경찰 등을 통해 한국 수사기관에도 알려져서, 한국 수사기관은 FIFA의 공문이 도달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도난된 여권용지 번호에 해당되는 여권을 사용하고 있던 A에 대해서 내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A에게 브로커 C를 추천해 준 동료 축구선수 B를 포함한 총 12명의 브라질 축구선수들도 동티모르 위조여권 취득사실이 발각되어, AFC는 그들의 동티모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였고, 동티모르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치른 AFC 주관 국제경기들 중 부정선수 출전이 확인된 29경기는 모두 무효처리하였으며, 동티모르의 2023년 아시안컵 출전자격도 박탈하였다.


‘아시아 쿼터제’라는 제도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낳은 한바탕의 소동이었다.

 

1) 2009년부터 AFC가 AFC 회원국들에 대해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그 회원국의 프로축구팀들에게 부여된 외국 국적 선수 등록 한도에 추가로 AFC 소속 국가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 선수를 1명 더 선수로 등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 있는 한 프로축구팀이 총 3명까지인 외국인 선수 등록 한도를 브라질 선수 3명으로 모두 채운 후, AFC 소속인 일본 또는 호주 국적의 선수를 1명 더 영입하여 실제로는 외국인 선수를 4명까지 보유·등록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이다.

강성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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