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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오래된 격언은 정직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치부나 잘못을 숨겨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습성은 본성에 가까워서 정직은 생각보다 가지기 어려운 미덕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소위 ‘잘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판사는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잘난’ 사람들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경쟁을 펼쳐 우수한 성적을 얻은 소수의 사람이 판사가 되는 구조이니 판사들이 자부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건강한 믿음인 자부심은 권장해야겠지만, 자부심의 왜곡된 형태인 자만심은 경계해야 한다. 고집과 독선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문유식은 솔직한 판사이다. “그저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서” 판사가 되었노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막말 판사였음을 고백한다. 상습사기로 인생의 상당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낸 후 출소 당일 다시 사기 범행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 피고인. 저자는 계속 거짓말을 해대는 피고인을 보자 그만 참지 못하고,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라는 막말을 한다.


그러면 안 되지만 판사도 사람인 터라 감정을 절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대하는 태도이다. 대체로는 아무 일이 없었던 듯 그냥 넘기기 마련인데, 저자는 다음 공판기일에 잘못을 인정하고 피고인에게 사과한다. 솔직함과 정직함의 미덕이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솔직함이 필요한 이유는 부족함을 알아야 노력이 가능하고, 그 노력이 보다 나은 결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바대로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하는 법관이다. 업무의 성격상 감정보다는 이성이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피 흘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마주하고도 의사가 냉철하게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인생이 파탄에 이르는 판결을 하면서도 판사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판사는 법정의 높은 법대에 자리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냉엄한 심판자로 인식된다.


온정주의에 이끌려 법체계를 벗어난 판결을 내리는 건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 기계적인 법 논리만을 숭상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결국 법은 법 자체를 위한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질서 체계라는 걸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파산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파산한 기업은 청산되어 소멸하지만, 파산한 인간은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도전하다가 쓰러진 인간에게는 무덤 대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활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제가 배운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름에도 양자는 곧잘 혼용되고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된다. 법원도 마찬가지이다. 법원에서 직접 근무한 경험은 없지만 동료들이 전해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재판정 너머에 있는 법원의 풍경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식사를 할 때 지켜야 할 각종의 예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밥을 먹다 보니 곧잘 체한다는 이야기,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도 소속 재판부 부장님의 취향에 따라 각종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아직 법원에 권위주의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장판사와 좌우배석판사가 삼각편대를 이뤄서 걸어가는 모습, 엘리베이터 율법에 따라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 회식 자리에 먼저 도착했지만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서서 윗분을 기다리는 모습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에 공감이 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법원이 판사들의 단순 총합은 아니지만, 결국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판사들 개개인의 행동 혹은 판사들이 내린 판결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좋은 판사가 많고 그들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제고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판사가 좋은 판사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은 판사 혹은 좋은 법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판사로 재직 중인 사람 혹은 판사가 되려는 사람에겐 큰 시사점을 줄 것이라 믿는다.  

 

 

 

 

 

김민철 변호사

● 엘지유플러스 법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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