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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아우성

겨울 추위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2017년 2월 중순. 한 통의 전화로 그들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회의실에 들어선 사람들. 눈동자의 색도, 머리칼의 색도 다르지 않은 그들이었지만 분명 우리(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지칭, 이하 동일)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들은 한국수화언어 법에 따라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인 수어를 사용하는 농아인들이었다. 

우리를 찾은 그들은 뉴스 하나를 보여주었다. 농아인들이 ‘행복팀’이라는 투자사기 조직을 결성 하여 같은 농아인들 수백 명을 상대로 약 280여억 원을 편취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범죄가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피고인들에게 있었다. 피고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농아인들의 특성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그것은 바로 농아인들의 결집력이 매우 강하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농아인들은 수어를 사용한다. 청인(聽人,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과는 다른 언어-비록 그것이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다 하더라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그들끼리의 결집이 여타의 집단에 비해 매우 강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인인 부모보다 자신과 같은 농아인을 더 신뢰할 정도이니 그들끼리의 결집력과 상호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음성’의 부재는 농아인들에게 크나큰 사회적 제약을 만들었다. 선천적인 농아인들은 처음부터 들을 수 없으니 이들이 지식을 익히기 위해서는 청인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이를 보완해 줄 공적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보니 농아인들의 사회적 지능은 선천적 지능과는 별개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이런 농아인들의 특성을 악용해 농아인들을 현혹했다. 농아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려고 하는데 이에 투자하면 몇 배의 수익과 고급 자동차, 아파트 등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행동강령 등을 정해놓고 체계화된 조직을 운영하였으며, 사이비 종교에 가까운 세뇌 등을 통해 배신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에 속은 수많은 농아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전 재산뿐만 아니라, 그 의미 조차 제대로 모른채 제1금융권은 물론 제2·3 금융권 더 나아가 불법 대부업체 등에서까지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이마저 고스란히 ‘행복팀’에 바쳤다. 

그렇지만 농아인들을 위한 세상이라는 구호는 처음부터 새빨간 거짓이었다. 그들은 그 돈으로 그들만이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수억 원의 돈뭉치,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십 수 대의 고급 자동차, 고급 주택, 보석, 시계 등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피고인들이 그들만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던 그 때, 피해자들은 그들만이 오롯이 불행을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전방위로 가해지던 대출 원리금 상환 압박은 그야말로 피해자들의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우리로서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고 수백 억의 피해가 있었음에도 5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없었기에-없도록 했기에-피고인들은 단순 사기죄로 의율되었다. 피고인들 역시 농아인들이었기에 형법 제11조에 따라 필요적 감경을 하게 되면, 경합범 가중이 된다 하더라도 처단형의 상한은 7년 6월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적지 않은 형량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피해자들은 전혀 납득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주범으로 지목된 피고인은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피해 변제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에 피해자들의 가슴은 더욱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위한 민사절차에서 보전할 수 있었던 피고인들의 책임재산 역시 피해액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상황은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피고인들은 고소 취하를 한 사람들 에게만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거나, 피해자들의 대출금 중 이자 일부만을 대납해 주고도 마치 변제를 한 것처럼 합의서를 받아내는 파렴치를 이어갔다. 

그렇지만 상황만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법원과 검찰에 피고인들을 단순사기가 아닌 상습사기의 포괄일죄로 보아 특정경제범죄가 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피고인들이 제출한 변제 내역의 문제점 역시 지적하였다.

한국농아인협회를 주축으로 결성된 행복팀피해 자대책위원회 및 이 사건에서 어쩌면 우리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농아인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금융감독원에 피해자들의 대출 과정 및 추심 과정 에서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일부 피해자들의 대출 원금 및 이자 일부를 탕감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피해자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일마다 집회를 열어 그들의 억울함을 알렸다. 기일이 열리면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와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이런 노력과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다행히 선고기일까지 잡혔던 이 사건은 우리가 바랐던 대로 공소장 변경이 되었고, 결국 합의부로 이송되어 얼마 뒤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아마 이 글이 회보에 실리게 된다면 발간되었을 때는 이미 1심선고가 이루어진 시점일 것이다. 

결과는 선고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법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법을 뜻하는 독일어 ‘Recht’와 정의를 뜻하는 ‘Gerechtigkeit’가 그 뿌리를 같이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피해자들의 애끓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허공의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판결로써 진실과 정의의 울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지웅 변호사
●법무법인 피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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