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인문학두드림
댓츠 더 재즈 That’s the Jazz, '전아' '격상',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

서예(서법)에서는 오래도록 안체顔體라고 불리는 서체가 전범典範으로 추앙되고 있는데, 성당盛唐기 지조 높은 선비 안진경의 우람하고 탄탄한 조성미에서 비롯한 탓이다. 서체에 담긴 서권기·문자향에 있어서는 안진경과 유공권의 해서楷書가 으뜸이고 이는 훗날 "안근유골(안체에는 힘줄이 있고 유체에는 뼈가 담겨 있다)"이라는 고사가 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글씨인 안중근 장군의 유묵이 안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아도 이 해서체의 장구한 필력을 이해할 수 있다. 안근유골의 서체들은 기상이 굳건하고 기품이 도도하다. 그런데, 쟁쟁한 서가書家에서 다른 지평을 열어 준 사람으로 서성(書聖) 왕희지를 든다. 예서, 해서를 묵묵히 이어가면서도 행초(행서, 초서)의 대가를 이루었고 글씨를 예술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왕희지의 대표작들('난정서', '십칠첩')을 보면, 예서에서 출발한 그가 다양한 서체를 창조했고 규범과 격식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나 자유롭고 다채롭게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왕희지가 만들어낸 글씨는 '서예書藝(글씨예술)'라고도 높여졌고 때론 '전아(典雅)'와 '격상(格上)'이라고 불렸다. 이처럼 '바르고 우아하다', '수준을 힘껏 끌어올렸다'는 평가는 미증유 최고의 찬사였다.

 

한편, 미국에는 전쟁 전후로 향락의 음악이 퍼졌다. 부산스럽게도 보이는 재즈는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히 재즈는 전성기를 맞아 풍요의 음악이라고 불렸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보컬 등 여러 분야에서 쟁쟁한 뮤지션들이 나온 가운데, 아프리카 리듬감과 미국 영가의 선율은 번잡스러울 수 있는(?) 재즈를 한껏 수준 높은 음악예술로 올려놓고 있었다. 빅밴드, 스윙에 이어 비밥을 거치는 동안 색소포니스트들도 찰리 파커(버드), 캐넌볼 애들리,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등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계보를 이어갔다. 이런 뮤지션들이 얼마나 많은 명곡을 만들어 내고 재해석했는지는 제현 독자께서 이들의 유려한 재즈 선율을 감상하시는 기회로 미룬다.
그런데 재즈가 단순히 음악(그것도 고급음악)을 지향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무언가를 품고 있다면 그것 또한 재즈다. 어쩌면 어그러진 인생이 한껏 뿜어내는 우아함과 품격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의 이야기다.
어느 날, 작가 하루키가 "소설(the Novel)은 피츠제럴드이고 재즈(the Jazz)는 게츠다"라고 했던 것은 스탄 게츠의 음악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일 게다. 하루키는 재즈를 좋아하고 여러 연주자를 흠모했지만, 이런 평가는 참 색다르다. 이것은 음악적 수준과는 다른 차원인 것이었다. 어쩌면 어느 서예가에게 걸맞는 '전아'와 '격상'이 맞아떨어질 정도의 소리(the Sound)를 만들어 내는 음악가였다. 특유의 '붐', '부움', '부우우우'라고 부드럽게 깔리는(silky) 텅잉 음색은 뭐라 형언하기 어렵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살포시 열어젖히는 세련된 위압감이 있다. 선율은 말끔하지 않아도 매혹적이고 리듬은 분방해도 흘러넘치지 않는다. 게츠는 명곡의 멜로디를 사랑했고 평생동안 클래식한(?) 연주들을 이어갔다. 그런데 빅히트는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기타리스트와 라틴계 피아니스트와 조우하여 만들게 된 '보사노바'는 누구나에게 재즈의 신세계를 열어주게 된다. 수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Jazz Samba(1962년)>라는 앨범과 <Getz/Gilberto(1963년)>라는 앨범이 주효했다. "Desafinado"와 "The Girl from Ipanema"는 50년이 흐른 지금도 시간을 잊은 듯 싱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당대에 칭찬에 인색한 언론들도 이 음악들을 가리켜 "Getz’s playing is superb 게츠 연주가 최고다"라고 품평할 정도였다.

물론 게츠는 최고가 아니다. 다양함에 있어서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따라갈 수 없고 스케일과 테크닉으로는 존 콜트레인이 우뚝 서 있다. 그럼에도 게츠의 재즈는 독보적이도록 아름답다. 사실 그는 부정한 남편이었고 폭력적인 아버지였다. 망가진 인생과 버려진 인간성을 볼 수 있는 일화도 많다. 하지만 게츠가 음악을 대할 때는 참으로 진솔하고 수수하다. 그가 만든 예술적 지평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런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모순이 미학적인 ‘바로크(Baroque)’라거나 '무목적적 합목적성'이라고 고매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스탄 게츠! 그의 일생에 걸쳐 표출된 모순된 자아와 예술적 도취는 훗날 어느 글쟁이에게서 "the Jazz"라고 불렸다. 만약 수천년 전 어느 서법가의 예술에서 '우아함'과 '수준 높음'이라는 평가만을 오롯이 빼 올 수 있다면, 재즈의 세계에서 그것은 단연 스탄 게츠다!

 

 

 

 

 

유재원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