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햅번을 아십니까? 잘 아신다면 연배가 좀 있으신 법조인일 것 같습니다. 만약 젊은 법조인이시라면, 아마 『로마의 휴일』을 보셨겠지요.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벨기에 태생 / 영국 국적 / 미국 활동의 여배우를 수식하는 말들은 워낙 많지만, ‘세기의 연인’, ‘진정한 미의 상징’이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될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올해 1월 20일로 사망 25주기를 맞은 이 화려했던 여배우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은, 수상의 연속이었던 필모그래피보다도, 42세의 이른 나이에 배우를 은퇴하고 64세로 사망할 때까지 유니세프 대사로서, 자선사업가로서 펼쳤던 훌륭한 활동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오드리 햅번의 이러한 삶은, 그녀 자신이 좋아하여 자주 인용하였던 샘 레벤슨의 시구가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당신이 다른 손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라. 첫 번째 손은 당신을 돕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As you get older, remember you have another hand: The first is to help yourself, the 
second is to help others).” 여기 2012년부터 오드리 햅번처럼 두 번째 손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배우가 아닌 법조인들이라는 것과 유니세프 대사가 아닌 락밴드라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법조계 유일의 락밴드는 아니지만, 법조계 유일의 비쥬얼 락밴드임을 자부하고 있는, 소울 바이트(Soul Bite) 인사 드립니다. 간략히 소개드리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모여 2012년 여름에 결성한 7년차 락밴드로서, 그 동안 고양국제꽃박람회 축하공연, 한국여성변호사대회 축하공연 등 10여 회의 대외공연을 가진 바 있습니다. 현재 7명의 공연팀과 2명의 지원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자는 지원팀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밴드를 소개드릴 때마다 항상 받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바쁜 법조인들이 왜 밴드 활동을 하느냐?
예상대로이신가요?
 

소울 바이트라는 이름은 ‘따분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우리의 음악으로 깨물어 주자!’ 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연하게 만들어진 이름을 멋지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 우연한 작명의 경위는 서울지방변호사회보의 격조를 고려하여, 지면 이외의 방법으로 추후 기회가 닿을 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스스로는 준프로급 실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발라드부터 미국 헤비메탈까지, 가요부터 트로트까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Mark Ronson의 ‘Uptown Funk’까지,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음악을 밴드원들의 취향에 맞게 편곡하여 연주합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다시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락밴드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것인지 말이죠.
소울 바이트는 2012년부터 매년 12월에 정기자선공연을 개최하고,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 및 공연은 보러 오지 못하지만 취지에는 공감하시는 분들의 기부의사를 모아, 도움이 필요한 단체나 기관 등을 연계하여 기부금을 전달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정기자선공연은 재능을 기부하는 소울 바이트 외에도, 역시 재능을 기부하여 주시는 외부공연팀, 노력을 기부하여 주시는 노력기부자분들의 도움으로 개최됩니다. 지금까지 소울 바이트 외에 총 14팀의 재능기부자분들, 42명의 노력기부자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준비한 정기자선공연을 계기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기부하여 주신 분들은 총 1,053명이며, 기부액은 총 48,174,580원입니다. 모여진 기부액은 밴드원들 간의 협의를 거쳐 도움이 필요한 단체나 기관들에 전달되며, 지금까지 총 17곳에 소중한 정성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중 난치병 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지원하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과는 5년간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멀리는 기업들이 몇 백억, 몇 천억 원을 출연하여 공익재단을 설립하였다거나, 가깝게는 대형 법무법인들이 규모 있는 공익활동법인을 설립하고 명망 있는 선배님들을 모셨다는 뉴스들 사이에서, 소울 바이트가 주변의 법조인들과 지인들로부터 5년간 전달받은 위와 같은 액수는 미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기부문화의 발아기를 이제 막 지난 것으로 보이는 법조계에서, 개인들에 대한 기부문화 확산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 소울 바이트의 활동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성과를 이뤄왔다고 믿습니다.
참고로 소울 바이트는 지난 5년간 쏟아 왔던 열정에 대하여 자신에게 주는 소소한 보상으로써, 2017년은 정기자선공연 없이 휴식을 가졌습니다.

탐스러운 사과를 사람이 욕망하는 방법은, 보고 만지는 간접적인 방법부터, 맛보고 먹어서 나의 일부로 만드는 직접적인 방법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바쁜 법조인들이 왜 밴드 활동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없고,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여 나의 일부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간단하고 명쾌하게 말하자면, ‘음악이 너무 좋기 때문’이겠지요. 음악은 합법적인 마약이니까요.
자랑스러운 휴식이 끝나는 올해 연말에는 여섯 번째 자선공연이 열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선후배·동료 회원분들께서도, 기회가 닿아 공연 소식을 전해 듣게 되신다면 당신의 아름다운 두 번째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무대 위에서, 소울 바이트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전성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