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CIArb(Chartered Institute of Arbitrators)Fellow를 취득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자격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CIArb은 mediation, 중재, 국제중재 등 ADR에 관한 교육, 훈련, 실무를 목적으로 1915년 영국에서 설립된 직업적인 전문가 기구인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000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회원은 mediation, arbitration, international arbitration 등 각 분야별로 Associate, Member, Fellow 등 3등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는 2017년 7월에 CIArb의 international arbitration 분야에서 Fellow가 되었습니다. 이미 세계 각국에 Fellow들이 많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CIArb Fellow를 취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2014년 6월부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2014년 11월 중재에 관한 국제행사가 있다고 참석을 권유받고 참석해서 그때서야 국제중재, 국제중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행사장에서 KLRCA(The Kuala Lumpur
Regional Centre for Arbitration) director로서 행사에 참석했던 Mr. Sandra Rajoo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말레이시아의 KLRCA에 국제중재에 관한 course가 있으니 참여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를 탔고 거기서부터 일이 시작되었지요(웃음).

CIArb Fellow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제가 처음에는 CIArb이나 Fellow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국제중재에 관한 행사에 참석하는 정도로 알고 쿠알라룸푸르에 갔는데, 생각보다 엄청 터프한 과정이었습니다. 국제중재인이 되고자 미국, 영국, 아프리카, 중동, 인디아,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쿠알라룸푸르에 온 40여 명의 나름 전문가들과 열흘간 숙식을 함께 하면서 강행군을 했는데 반 정도는 변호사였고, 나머지는 각 분야의 전문가, 각국의 중재기관 실무자들, 심지어 판사들도 있었고, 연령대도 다양하더군요. 한국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오전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CIArb Fellow들이 presenter가 되어 국제중재 실무와 절차 등 강의를 했고, 오후에는 8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두 세 명의 CIArb Fellow들로 구성된 tutor의 지도하에 다양한 케이스를 놓고 arbitrator로서 어떻게 사건을 진행할 것인가에 관하여 토론했고, tutor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으며 진땀을 빼야 했어요. 저녁 식사 후에는 각종 social events에 참석하고 다음날 토론할 case에 관한 준비를 해야 했는데 간신히 과정을 마쳤지만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Hyatt Hotel에서 열린 course banquet에서 동기생 대표로 뽑혀 영국에서 온 CIArb 간부들, Fellow들, 동기생들 앞에서 연설하는 영광도 누린 특별한 경험이었지요.
저는 이걸로 이제 다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해 3월에 practice and procedure exam이라는 3시간짜리 주관식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저를 포함한 동기생들 반 이상이 떨어졌는데 동기생 대표노릇까지 하고 나서 떨어지니 창피했지만, 같이 떨어진 사람들이 나로 인해 많은 위안을 받은 듯 하더군요(웃음). 다음해 2016년 3월에 시험을 다시 봐서 CIArb Member가 되었습니다.
CIArb Member에서 CIArb Fellow로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international award
writing 과정을 통과해야 했는데, 멋모르고 발을 담갔지만 중간에 뺄 수도 없어 2016년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여섯 달에 걸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CIArb에서 받은 교재 여러 권을 읽고 숙제로 받은 케이스에 관해 award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두 차례 싱가포르에 가서 Fellow로부터 판정문 작성방법에 관한 수업을 듣고, 동기생들이 제출한 award 들에 대한 코멘트를 받아야 했고, 시험도 봐야하는 고단한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과정의 final 시험은 시험 며칠 전 중재사건 신청서와 답변서를 받아 판정문의 형식적 기재사항을 작성하고, 싱가포르 시험장 현장에서 쌍방 준비서면, 증인들의 증언기록, 증거서류들, hearing 과정에서의 당사자 본인들과 대리인들의 공방내용에 관한 기록 등 나머지 자료를 받아 읽고 4시간 반 동안 판정주문, 이유, 결론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작성하여 usb에 담아 제출하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속도는 느렸지만 정신없이 노트북 자판을 쳤는데, 법원에서 10년 동안 신속하고 간결하게 논리적으로 판결문 작성하는 훈련을 잘 받아서 그랬는지 제일 먼저 판정문을 완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제출된 판정문이 영국에 보내져서 채점 결과가 나오는 데 석 달이 걸렸고, 여기서 또다시 동기생들 반 이상은 떨어졌지만 저는 다행히 통과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Fellow 후보자들은 CIArb에서 지정한 Fellow와 peer interview를 해야 했는데 서울에서 인터뷰 할 수 있게 배려해 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CIArb Fellow 중 한 분인 Benjamin Hughes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에게 인터뷰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CIArb Fellow와 international arbitrator로 활동하면서 지켜야 할 윤리규범(code of ethical conduct)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소요된 기간이나 비용은 어느 정도였나요?
제가 peer interview를 마치면서 벤자민 휴즈 교수로부터 CIArb Fellow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을 들은 때가 2017년 7월 이었으니 처음 시작해서 2년 반 정도 걸린 셈입니다. 소요되는 비용은 사실 적지는 않아요. 과정 이수 및 시험을 위해 납부해야 하는 비용은 숙박비, 항공료 등을 제외하고라도 1천만 원 이상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본전 생각이 나서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자격 취득을 위해 높은 수준의 언어(영어) 능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제가 1982년에 시험으로 선발하는 카투사 1기로 선발되어 그해 1월부터 1984년 2월까지 미제2사단 최정예 8인치 자주포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험악한 전투부대에서 거친 미군들과 함께 함께 2년간 통역, 32톤 자주포 조종수, 포사수 노릇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어요. 군부대 특성상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영어였지만요(웃음). 여기에 추가하여 영어학습 교재를 통해 보충하기도 했지만 미군들과 함께 훈련하고 같은 막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실력과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찌어찌 해서 미국 CPA 시험도 통과하고 미국 변호사도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영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2015년 1월 쿠알라룸푸르에 가서입니다. 거기서는 미국식 영어와는 달리 영국식 영어가 대세를 이뤘고, 거기다 아프리카식, 인도식 또는 동남아시아식 발음이 섞인 영국식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그런 발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유창하게 자기 할 말 다 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상이 깊었습니다. 서울로 오자마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해서 체계적으로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지요. 중상급 정도 과정에서 시작해서, 심화과정을 거쳤는데, 나이 들어서 하는 영어회화라는게 갑자기 느는 것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미군 전투부대에서 험하게 익힌 영어보다는 좀 세련되어 진 것 같기는 합니다.

오랫동안 공인회계사를 하시다가 사법시험을 보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용된 특이한 경력이 있으신데요.
공인회계사 생활 10년차에 제가 책임회계사로 감사했던 상장회사가 부도났다고 서울지검 특수부에 불려가 하루 종일 한밤중까지 조사를 받으면서 시달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복잡한 회계시스템과 생산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검사가 되어 기업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결심하고 처와 아이 둘이 있는 상태에서 일생일대 모험을 걸어봤어요. 목표로 했던 기간 내에 시험에 붙어 다행이었는데 나이가 많아 사법연수원에서 조장 노릇도 했습니다. 같은 조 출중한 조원들의 도움 덕분에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데 지도교수님이 판사직을 강력하게 권유하셔서 생각을 바꾸어 판사가 되었습니다. 형사단독 재판장까지 하면서 10년 가까이 판사생활을 했습니다.

판사시절 많이 바쁘셨을 텐데 미국 CPA 시험도 통과하셨나요?
2000년부터 서울지법 민사 21부 국제거래상사전담부 배석판사로 근무했는데, 당시 IMF사태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거창한 사건들이 많이 밀려들었고, 한국적인 관행과 관점은 무시되고 소위 American Standard가 최고로 추앙받는 분위기였어요. American Standard가 뭔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겠다고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큰사건이 많아 야근을 밥 먹듯이 했지만, 퇴근 후 집에서 잠을 안자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젊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당시 법원에서 판사가 일주일 이상 휴가내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더구나 해외여행을 하려면 법원장 허가가 필요했어요. 당시 수석부장님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님을 설득하여 판사의 일 년 치 휴가를 한꺼번에 다 썼습니다(웃음). 그때 난생 처음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시험보고, 시험 후 2주 동안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행했는데 당시 처량했던 한국과 잘 나가던 미국을 비교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판사생활을 10년 만에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한 후 미국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판사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법원에서 배울만한 중요한 것은 다 배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막상 변호사 개업해서 일하다 보니 사건과 관련해서 영국법, 미국법 얘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게 뭔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미국변호사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50대 중반이라 총기가 사라졌는지 2013년 여름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본 시험, 2014년 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본 시험은 떨어지고, 2014년 여름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에 가서 본 시험에서 천신만고 끝에 통과했습니다.

많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다양한 분야로 지평을 넓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부럽습니다. 그러한 열정을 유지하는 비법이 있다면 알려 주십시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이를 실현시키려는 의지, 그 과정을 즐기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해외로 나갈 때마다 가능하면 와이프와 함께 가서 해당 지역을 짧게는 한 주, 길게는 한 달씩 여행하고 왔는데 신혼여행 할 때보다 훨씬 재미있고,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젊어져 있음을 느낍니다.

후배 변호사님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겁내지 마라.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저질러 봐라. 사는 일이 재미있어진다. 변호사 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인터뷰/정리 : 김승현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