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소설을 읽는 편이지만, 다독하는 편은 아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책은 마침 아내가 읽고 남겨놓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중편소설은 각자 나름의 완결된 이야기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한 여인(영혜)을 주변에서 관찰하거나 그녀와 소통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화자에 따라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관찰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정작 영혜는 관찰 대상에만 머문다.
영혜의 언니(인혜)가 화자가 되는 마지막 중편소설(나무불꽃)을 읽 전까지 나는 이 소설을 영혜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남편과 형부에 의해 관찰되고 묘사되는 그녀의 기이한 언행을 통해 작가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책을 읽었다. 영혜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남편이었는데, 영혜와 끝내 어떠한 정신적 교감도 나누지 못한 그는 사실은 지극히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남성 혹은 남편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히려 형부라는 사람(인혜의 남편)이 영혜와 교감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술적, 육체적 욕망이 그의 주된 동인이었다는 점에서 그 교감은 반쪽짜리였다. 영혜의 시선은 형부가 바라본 곳에 정확히 닿지 않는다.
남편과 형부에게서 영혜와는 전혀 정반대의 인물인 듯 묘사되던 언니가 화자가 되면서부터, 평범해 보이는 남편의 목격담이나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형부의 이끌림은 모두 부족한 것이었고, 그들의 시선에서 영혜는 대상 혹은 오브제로 머물렀을 뿐임을 알게 된다. 언니는, 외모도 성격도 다른 동생의 내면적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언니는 큰딸, 가장, 엄마의 역할을 거치면서 능동적인 사람으로 사회화되었고, 반면 동생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 먹는 것보다 먹지 않는 것에 경도되어 간다. 언니는 작위의 영역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동생은 부작위의 늪으로 빠져든다. 소설은 식물로 상징되는 영혜의 지향점의 역동성을 충분히 묘사하고, 사실 애초에 작위와 부작위의 구분도 사회적인 것이겠지만, 언니와 동생은 그렇게 한 여성의 내면의 서로 다른 평면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언니와 동생, 인혜와 영혜는 결국 같은 내면의 주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관해서 의문하는 작가는 남에게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 영혜의 ‘비정상성’을 참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선입견과 불관용, 그 안에 담긴 폭력성을 담담 묘사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이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선입견과 불관용으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접근마저 쉽게 외면하는 내가 과연 영혜의 아버지와 다르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문종우 변호사
● 법무법인 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