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시인의 마음
거울

 

집시(Gypsy)를 말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어느 술자리였다. 그는 백발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러운 새치에 꾸미지 않은 장발을 하고 있었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주변의 권유로 그는 옆에 있던 우쿨렐레와 하모니카를 집어 들고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패턴의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또한 낯선 느낌의 노래가 그의 투박한 음성과 함께 작은 술집에 울려 퍼졌다. 그는 주로 듣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욕망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우쿨렐레를 메고 다녔으며 어디든 걷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재래시장을 돌며 봄나물 한 바구니를 사서 들고 다니거나 빈티지 옷가게에서 몇천 원 되지 않는 바지나 자켓 따위를 고르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그를 따라다니며 시장 구경을 하거나 그의 옷 고르는 탁월한 안목 덕으로 마음에 드는 옷들을 손에 들고 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작금의 자본주의 시대에 일이란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는 좀처럼 어디든 얽매여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인들이 이사를 가거나 인테리어를 하거나 할 때는 대부분 그에게 손을 뻗었고 그는 젊은 시절, 막일을 하며 지낸 노하우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주곤 했다. 그렇다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금전으로 받은 적은 손가락에 꼽는다. 그런 행위는 그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본인이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그에게 그 어떤 누구도 그 값에 대해 눈치를 주거나 강요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마치, 자본주의의 돈이란 상당히 불편한 것이고 함께 나누는 최소한의 공동 물품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통기타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그와 합을 맞춰 여러 번의 크고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고 결국은 마음이 맞아 2인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는 서울 한남동에 작업실을 얻어 다음 달부터 새로운 곡들을 작업할 생각이다.

인천에 그가 자주 가는 단골 막걸리집이 있다. 일반적인 단골이 아니라 그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는 매일같이 그곳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흥이 나면 즉석에서 연주와 노래를 한다. 그곳의 주인 형님이나 음식 때문이 아닌 그를 보기 위해 들르는 손님도 꽤 있으니 그는 마치 그 가게의 마스코트이자 술상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는 여간해서 심각하지 않으며 “삶은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모티브를 실천하며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니, 노력이 아니라 그는 이미 그러한 행위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 되어 어디로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그런 그도 아주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한때, 가정을 일구며 살면서 얻은 아들은 그렇게 자유로운 그에게도 아비로서의 책임이 남아있는 안타까움의 대상일지 모르겠다. 위의 시는 인천의 단골 막걸리집에서 그와 마주하면서 느낀 감정의 소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둘이어서 지금이 행복하지만 또한 각자의 집(세계)으로 돌아가야 하는 슬픈 족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어떤 누구와도 항상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외따로이 떨어져 스스로의 세계를 정비하고 그리하여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즐겁게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위안과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지금처럼 늘 방랑하기를 원한다. 어느 순간, 아무런 말없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영영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그런 그를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집시란 그런 것이다. 집이 없어서 떠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을 나눠주기 위해 이 세계와 계속 마주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 원주의 토지문화관에 레지던시로 입주해 기거하고 있다. 이달 말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고 다음 달부터는 서울의 새로운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 것이다. 가끔 새로운 작업실에 들려 그와 함께 가구를 나르고 청소를 하면서 새로운 우리의 공간을 정비하는 일은 매우 즐겁고 들뜨게 한다. 그를 보면 문득 문득 내가 보인다. 내가 자꾸만 감추고 싶어 했던 나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실천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나는 가끔 반성하고 가끔 격려를 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아홉 살 차이라면 친구가 되기 쉽지 않지만 우리는 그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는 집시 친구가 있다. 매우 여리지만 매우 강한, 언제든 호명하면 걸어서 달려올, 나보다 훨씬 더 시인 같은, 그는 완벽한 집시다.

 

 






김산 시인
●1976년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시인세계 신인상 등단
2017년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키키』와 『치명』이 있음

김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