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회원의 상념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나라는 사람도 분명 결정적 쓰임새가 있을 것인데, 가끔은 어떠한 중요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서 실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주로 회사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의 특성인지 다른 회사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회사 내부에서는 결정할 수 있는 자 혹은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자를 찾는다. 이는 내부 규정상 누구에게 결정권한이 있는가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떠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직함을 가진 누구누구의 의견이라고 쉽게 특정될 수 있고, 나름대로 그 의견을 말한 자가 신뢰를 받을만한 직위에 있는지, 특정 자격이나 경험이 있는지 여부 등이 고려된다. 그러면 법무분야에서 그것은 대부분 사내변호사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게 되는 법무부서의 수장이라면 위와 같은 몫을 당연히 수용하여야 할 것이나, 현재의 나는 그러한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강력한 요청과 압력을 뿌리치고야 만다. 이는 내 업무 경험의 일천함이 가장 큰 이유겠으나, 확신하는 사안에 대해서 역시 향후 쏟아지게 될 내부적인 불만의 화살을 고려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부의 의견에 대해서 더 많은 감사가 쏟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며, 민감한 사안의 경우 나를 포함한 부서원 전체 또는 부서장이 느끼게 될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회사 복도를 지나가다 만난 어느 누군가의 안부인사와 더불어 스치는 질문에 대해 같은 무게의 가벼운 사견을 말하여도 그것은 삽시간에 법무부서의 의견이 되어 있고, ‘그 여자변호사’가 검토한 의견이 되어버린다. 만약 민감한 사안이라면 곤란해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보고 고민하고 검토하고 있지만 ‘그 여자변호사’ 혹은 그 누구의 의견으로 특정되지 않는 의견을 만들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으려) 회사 내의 누가 보아도 수긍할 만한 의견을 만들기 위해, (감사를 받지 않으려) 충실한 근거를 갖춘 객관적인 의견을 만들기 위해, 아픈 머리가 깨끗이 정리되어 나을 때까지 계속 고민한다. 그리고 탄탄하게 잘 써진 의견서 뒤에 철저히 숨는다.

가끔은 나도 소설이나 영화처럼 사업 운영에 관한 keyman 내지 중대한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막대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 사내변호사의 현실이다. 외부에서 고문계약을 맺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 자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 의견을 드린 분들과 회사 내에 남아있어야 하므로 향후 수 년 후에라도 발생하게 될 그 파급효과에 대하여 예상해 보고 스스로에게 닥쳐올 위험을 헷지할 수 있는 길을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곳에서 권한 없이 책임만을 부담토록 하기에 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한 가깝게는 몇 달 후 멀리는 10년 후 미래의 생존을 위해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한다.
 

 

 

 

 



장여리 변호사
●한국가스공사

장여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