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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연일 비를 뿌린 지리산에 구름이 걷히자 연초록 생명들이 세상을 향해 살아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봄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그 보드라움에 어찌 산객의 마음을 뺏기지 않을까. 곧 쏟아질 한여름 뙤약볕조차 물리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발가벗은 채 받아들이는 고운 빛깔은 점점 짙은 녹색으로 여물어 갈 것이다.

바람에 실려 온 세상 연륜이 묻었을까, 두껍고 거칠긴 해도 늙어가는 녹색의 단단한 살결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그 생명들의 합창은 끝나지 않았는데, 속절없는 세월은 메마른 바람을 불러 물기를 내리고, 찬란했던 날들의 기운을 밀어내는 가을이 와도, 못 견디게 그리운 날일지언정 흘러가버린 시간에 미련을 두랴.

안간힘 쓰며 매달려 있을 차디찬 겨울, 마지막 시간이 와도 때가 되면 피고 지듯 손을 놓는 것이 세상사 아니더냐. 한생 그렇게 왔다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느냐.

연간 학교를 그만 두는 청소년들의 수가 초,중,고의 4%정도니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26만 명에 육박한다. 2~3년 전 숫자이니 지금은 학생 수가 줄어 그보다 적겠지만 적어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그중에서 영화에 관심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모아 몇 년 전부터 무료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밀짚모자 영화학교다. 영화교육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영화교육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는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 경험을 했거나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결국 자기 앞에 당면한 학교 문제, 이성, 친구, 가족 등등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게 된다. 내면 깊숙이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스스로 풀어 헤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고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

서울에서 강의실을 구하지 못해 아는 스님의 암자 (관악구 성불암)를 빌려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쳤지만, 하동 지리산으로 내려오면서도 강의실 문제로 아직 개강을 못하고 있다. 그때 한 아이로부터 “어찌 살아야 잘 사는 삶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학생의 질문을 받고 잠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이 어린아이가 벌써 삶을 고민하다니, 한편 기특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아도 모자라는 시간일 텐데, 그런 무거운 물음을 지고 살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들 중에 가정 형편이 나은 아이들은 대안학교를 간다거나 또는 유학을 가기도 하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하루 종일 거리에서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내일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결손 가정이며 아르바이트를 해 스스로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난 그 학생을 햄버거 가게로 따로 불러내어 마주 앉았다. 그때만큼은 나는 그 학생에게 영화감독도 선생도 아니었다. 사회 선배로서 그 학생의 질문에 답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가? 불편하지 않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 경제적인 불편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노동을 하면 해결되는 일이다. 내가 말하는 불편함이란? 마음의 불편함이다.

 인간은 평생 세 가지를 얻기 위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소중한 일생을 허비한다. 재력과 명예(권력) 그리고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을 얻었다고 해서 잘 산 삶인가? 난 아니라고 말한다. 그 세 가지는 손에 쥐면 쥘수록 인간을 더 불편하게 한다. 돈이 많으면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야 하니 그것이 마음에 불편함이요, 명예와 권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내려가지 않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야 하니 또한 불편함이며, 사람을 얻었으니 내 사람으로만 관리해야함이 불편함이다.
마음이 불편하니 잘 산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 마음의 불편함이 결국 모든 병을 불러오고 범죄를 발생시킨다. 잘 산다는 것은 마음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지(자기) 맘으로 사는 것이다. 지 맘이란? 원래의 마음이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내가 먼저가 아니고 내 앞의 사람이 먼저다. 내 앞의 사람이 먼저일 때는 내가 불편하지 않고 내가 행복하다. 내가 먼저일 때는 그것 자체가 불편함이며 지옥이다.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옥에 있는 것이다.

마음이란 것이 그렇다. 내 앞에 사람을 먼저 위할 때는 바닷물도 담을 수 있지만, 그 마음이 닫히면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 마음일 때는 넉넉하고 세상을 다 품을 수 있지만, 남의 마음일 때는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세상과 단절된 불행을 안고 사는 것이다.

생사는 한 솥인데 우리는 늘 사는 일만 생각한다. 오직 한 번뿐인 유한한 삶의 소중한 시간을 불편하고 불행해지는 데 쓰다 버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살아 있는 것만큼, 자신의 죽음도 생각해 보자. 끝이 있다는 말은 내 것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영원히 내 것이라 생각하는 데서 마음의 불편함이 생긴다.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내 것이라면 영원히 내 것이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영원한 것은 없다. 하물며 매일 좋은 것만 먹이던 내 육신도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때 햄버거 가게에서 내 얘기를 듣고 있던 학생의 표정에서 편안함을 발견했다.

최근 『공유(空有/도서출판 말벗』”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하였다. 인간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잘 살다 갈 것인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보태 본다.









김행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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