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친구가 “나이 들어간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르렀다. 거울 속에서 새치라고 보기 어려운 흰머리를 제법 본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날마다 쑥쑥 큰다.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 때 벌써 아홉 남매의 아버지셨다. 내 나이를 겨우 지나 스물네 명 중 첫째 손주를 보셨다.
이런 생각을 하던 도중 만난 책,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삶’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학자인 앤 이니스 대그가 쓴 이 책은 그 원제(The social behavior of older animals)처럼 ‘나이 든 동물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나이 든 동물은 긴 생존 경쟁을 극복해 온 것으로 확인되는 훌륭한 유전자를 경험과 지혜를 통해 이타적으로 활용한다.
늙은 랑구르원숭이는 평소 딸로부터 먹이와 그늘을 뺏기지만, 위험한 적이 나타날 때는 구경만 하고 있는 딸과 손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암컷 최연장자인 코끼리 가모장은 20마리에서 많게는 100여 마리의 집단을 지휘한다. 반면에 늙은 침팬지는 공동체 속에서 다른 무리들과 털 골라주기 정 도의 작은 교류를 하며 노후를 보내기도 한다. 그중 운 좋은 침팬지는 아들이 대장 수컷이라 다른 이들로부터 털 골라주기 서비스를 받기만 할 뿐 하지는 않는다.
죽음 역시 나이 든 동물과 따로 뗄 수 없는 부분이다. 긴부리돌고래를 포함한 고래의 최후는 특히 인상적이다. 허파 호흡을 하는 고래는 40~50년 생존하는 동안 매일 100번 정도씩 물 위로 올라 공기를 마셔오다, 그 인생 최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흡 실수를 하며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모로 누워라앉으며 익사한다. 동료들은 문제가 생긴 걸 감지하고 도와주려 온몸을 써보지만 소용없음을 곧 알게 되고 다시 무리로 합류한다. 평생 바다를 헤치며 살아온 고래가 익사를 피할 수 없다니 그 인생의 치열함을 느끼게 된다.
책은 그 내용 속 동물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개개의 이야기는 언뜻 풍부하지 못하고 산만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연구는 그들의 야생성 유지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특히 늙은 동물은 소수인 데다 구별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연구가 갖는 한계역시 인정할 만하다. 그런 한계 속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관찰과 연구를 통해 얻어진 귀한 동물 이야기들은 인간과 나 자신을 느끼고 돌아볼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저자 자신이 일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이기 때문일까. 저자는 집단에서 훌륭한 역할과 기여를 하고 있는 ‘할머니 동물’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예 ‘할머니’라는 장을 따로 두고있기도 하다. 저자 스스로를 위해 쓴 책 같기도 하다. 저자의 개인적 생각과 성품을 느끼는 것은 책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제 답을 시도해 볼 때이다. 각각의 나이 든 동물들이 그 다양한 공동체 내에서 수많은 모습으로 자신의 변화된 역할을 찾아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나이 들어간다는 건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 정신적 육체적 변화에 맞추어 자신과 더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자리와 역할을 계속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산해 변호사
●정부법무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