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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방황, 그 끝(Anfang vom Ende)

“그곳에서는 두 세계가 뒤섞였다.
밤과 낮이 두 극단으로부터 나왔다”

종종 잊고 있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아이들은 태어났다. 그들은 미래다. 그들은 방탄소년단(BTS)이라는 그룹을 좋아한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오래된 소설을 읽고 있다.『데미안』이다. 어쩌면『데미안』이 가진 싱싱한 생명력, 고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방탄소년단의 앨범(『WING』) 뮤직비디오에 제시된 여러 암시(Sign)들이 옛 책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원동력일 수 있다. 전 세계 소년소녀들은 그 표지에 환호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들은 데미안의 여러 기호들을 인용했다. 삶과 죽음, 꿈과 현실, 속박과 자유, 빛과 어둠, 불과 물, 선과 악, 흑과 백, 전쟁과 평화 그리고 소년과 청년...
음악은 환상을 그려내고 영상은 신비스럽다. 소년이 무지와 방황을 뚫고 청년으로 커버린다는 이야기 속에서, 몽환적인 상황에서 자아를 찾아내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윽고 새는 알에서 깨어나 날아간다. 모든 것은 하나의 성장 과정일 것이고 그러한 암시와 코드에 신세기(New Era)의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새 시대의 청년들은 방탄소년단에게서 혁명가이자 구도자의 몽타주를 발견한 것이었을까.
『데미안』은 수천 년 넘은 고전이 아니다. 백 년 전 즈음에 새롭고 인기 있는 읽을거리였다.
『데미안』은 노벨문학상 작가의 심오한 성찰이 있는 소설이기보다는, 무명작가의 신선하고 괴팍하며 충격적인 대중소설로 알려졌다.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을 빌려 발표한 이후 수만 권이 삽시간에 전 유럽에 퍼지자 사람들은 작품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되었다. 당대인들은 작품 속 수많은 문장들에서 자신만의 기호와 코드를 발견했고 새 시대의 가치관을 만들어 갔다.
당시는 전쟁 직후였다. 전쟁이 종결된 후 사람들은 흩어지고 모든 세상이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허무 속에 무력했고 같은 시대의 소년·소녀들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몰랐다. 청춘들의 방황은 더 극심했다.『데미안』은 그 시기의 그 청춘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소년소녀가 청년이 되는 과정은 꼭 방황과 시련이 있다. 불완전함 속에서
아집과 오만이 싹트기도 하고 부지(不知)에서 오는 무기력이 공존한다. 반항 또는 순종 속에서 수년을 보내고 결국 ‘나를 찾는 길’은 그 답을 모른 채 끝나 버린다. 하지만 방황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방향은 있지만 길이 없는 시기. 종종 방향이 바뀌는 시기. 그 시기를 청춘들이 보낸다. 청년이 되기 위해 꼭 거치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다. 유년과 소년 그리고 청년 이후의 삶들은 너무나 단조롭다.
밤이 없는 나날들은 얼마나 창백할까. 겨울 없는 계절은 얼마나 실없을까. 옹이 없는 나무는 얼마나 멋없을까. 밤이 지나야 먼동이 트고, 겨울이 지나야 계절이 돌고, 옹이가 있어야 나뭇결이 산다. 유년이었던 아이들은 각자 나름의 성장통을 이겨내고 어른이 되었다.



“ 새는 알을 깨고 태어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 속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성장통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답이 없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설 말미에 큰 폭풍을 여러 차례 겪은 싱클레어는 마침내 데미안을 가리켜 ‘나 자신’,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라고 표현한다. 청춘에게 ‘방황’은 크나큰 ‘방향’이었다. 시련과 방황이 없는 청춘은 어쩌면 표적(표지)이 없는 카인, 방향 없는 구도자였던 셈이다.
존경하는 은사님은 20여 년 넘게 독일 문학을 가르치셨다. 당신께서 발굴하신 것은 괴테, 헤세, 카프카, 노발리스 같은 산문작가와 쿤체, 란 등의 시인들이 아니었다. 그분께는 옛 고전에 생명을 넣어 줄 참신한 독자들이 필요했다. 학생들이 작가와 작품에 눈을 뜨도록 계속 감성과 지성의 맥을 살려주셨다.
『데미안』을 번역하시면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부분을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라고 번역하시는 등, 당신의 『데미안』은 작가의 언어 구사와 독자의 감성을 적절하게 연결하고자 한 배려가 보인다. 그분의 해설을 일부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이런저런 책을 읽히는 일을 십 년쯤 한 적이 있다. 『데미안』에 대하여 젊은이들이 썼던 빛나는 글귀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작품 내용의 해설은 그런 이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그 고통스러운 성장의 세계를 방금 뒤로했거나 바로 그 한가운데 있는 젊은이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길>을,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하여도 그 누구도 근본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한 시절의 아픈 방황과 그 끝을 이 책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 헤세 선집 『데미안(전영애 역)』 중 작품소개

 







유재원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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