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리 : 박주희 본보 편집위원

연륜과 관록에서 묻어 나오는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 인덕(人德)까지 더해진다면 범인(凡人)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일만 논설위원이 바로 이 같은 사람이다. 오 논설위원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 이면까지 꿰뚫어보는 그의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에 한 번 감탄하게 되고, 냉정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인간적인 매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25년차 베테랑 기자출신인 오일만 논설위원을 만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수상한 시절을 지나는 지금, 우리 사회와 법조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따끔한 일침부터 따뜻한 격려까지 그의 내공이 빛나는 인터뷰였다.

오늘(인터뷰 일자 2. 6.)도 방금 분쟁조정위원회에 외부 조정위원으로 참석하고 오신 걸로 아는데요. 서울지방변호사회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부터, 작년 한 해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이달의 법조기사 선정위원회 위원장까지 하시고, 저희 서울회와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외부 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변호사의 민낯도 많이 접하셨을 텐데, 활동 전후로 변호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생각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외부에서 변호사란 직업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기득권 집단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많습니다.하지만 외부 위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달라진 법조계 환경으로 일부 변호사들을 제외하고, 특히 젊은 변호사들은 다른 생활인들처럼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호사회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변호사들마다 다릅니다. 변호사회가 사회·정치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대언론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언론인으로 보시기에 변호사회가 사회 문제에 성명을 발표하고, 대언론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진공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직면하는 직업이고 그 역할 또한 중요합니다.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익단체라는 변호사회 단체의 특성상 변호사 전체의 복지와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병행해야 하겠지요.

이달의 법조기사 선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셔서 더욱 잘 아시겠지만, 안타깝게도 작년 한 해 법조인들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 유독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법조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습니다. 지난해 홍만표 전 검사장, 진경준 전 검사장, 김형준 검사 파동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졌습니다. 특히 공정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는 검찰 권력의 부패상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에 도달했습니다. 검찰 이외에도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할 일부 판사들까지 비리에 연루되면서 사법부 전체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법은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법치국가의 근본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법이 강자를 위해 존재하고 법조인들은 그들만의 법조계 카르텔을 통해 이들 강자들이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제공해 주고 부를 축적하는 집단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현실이 된 측면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사법부 부패는 민란의 직접적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구에서는 프랑스 혁명이고 우리의 경우 동학혁명입니다. 국민들의 입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 만큼 사법부 개혁은 아마도 우리 시대 당면한 절실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시국 얘기를 안 여쭐 수 없습니다. 소수의 누군가가 법과 체계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사유화한 이번 국정농단사태 대해 국민들은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번 국정농단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합니다. 법치가 단순히 헌법이나 법률에 적혀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에 확인됐습니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해서 돈벌이로 연결시키려는 권력자들의 행태와 이에 기생해서 권력에 아부한 청와대 정부부처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는 이미 나라이기를 포기한 수준입니다.
국정농단을 막고 은폐하려는 정치인들을 포함해 근본적으로 직업윤리라는 것 자체가 실종된 상황입니다. 오로지 돈과 권력이 삶의 기준이 된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자체가 안으로 곪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를 제대로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절실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기득권층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국가 자체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더 이상 헬조선이니 삼포시대니 하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오 위원님께서는 대한민국이 여기서 한 발짝 발전하려면 분노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제 근본적인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고 글을 쓰셨는데, 오 위원님이 보시기에 우리 사회에 가장 먼저 시급한 개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사회는 현재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절박한 것은 빈부격차의 해소입니다. 국가의 흥망사를 보면 대부분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닥쳐옵니다. 빈부격차가 클수록 사회의 활력은 떨어지고 계층 간 증오감이 커지면서 반목과 갈등이 늘어가게 마련입니다. 국가의 역할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 갭을 줄이는 정책을 펴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출발부터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들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국가가 기회의 균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모든 구성원들의 역량을 모을 수 없습니다.
공정사회라는 화두도 중요합니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은 사회 자체가 사회·경제적 룰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공정사회를 위해 사법부 시스템과 재벌에 편중된 경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여론도 이런 이유입니다.

기자 생활을 하신 지 25년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중 인상 깊은 취재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네. 93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니 25년차입니다. 그간 다양한 사건을 경험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언론사 사주의 도박 사건인 장존 사건입니다.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미국 라스베가스까지 날아가 현지 취재하고 결정적인 물증을 찾아내 부도덕한 언론사 사주의 행태와 당시 재벌들의 도박 실태를 파헤쳐 경종을 울린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고 언론사 사주를 물러나게 하고 법적 처벌을 받게 한 것 자체가 커다란 보람이었습니다.

2011년에 출간하신 『세계의 운명을 바꿀 중국의 10년』부터, 최근에 펴내신 『2022년, 시진핑의 신장정』까지 중국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집필하셨어요. 책을 읽어보면 중국의 역사뿐만 아
니라 정치, 경제를 모두 꿰뚫어보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파원 경력이 있다고 해서 몇 년 안에 한 나라의 전반에 대해 알지 못할 텐데, 중국에 특별히 관심 갖게 된 계기는요?

누구나 그렇듯이 어릴 때는 삼국지 연의나 수호지 등에 관심을 갖다가 대학 시절 에드가 스노가 쓴『중국의 붉은 별』이란 책을 통해 중국의 근대사와 현대사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 벌어졌던 생생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목도한 것은 인생 전체를 봐서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위원님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 보니 기자 중에서도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걸로 유명하신던데, 바쁜 와중에도 다독할 수 있는 비법이라든지 젊은 법조인들에게 추천해 주시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누구나 생업에 몰두하다 보면 폭넓은 경험이 부족하고 자칫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100년 후』(저자 조지 프리드먼)나 『시빌라이제이션』(저자 니얼 퍼거슨) 등의 책은 보다 멀리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분석의 힘을 갖게 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사피엔스』(유발 하라리)나『제3의 침팬지』(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근원적 뿌리
와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다독의 비법은 특별한 것은 없고 결국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잠깐이나마 책을 읽으려는 습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다독의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오늘 자(2. 6.) 서울신문 기사에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습니다. 변호사는 사회 기득권이라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변호사 내부도 양극화가 심화돼 있습니다. 청년
변호사들은 개인 사건 수임은커녕 일자리도 부족한 현실인데요. 어렵게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는데, 현실의 벽에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낙담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선배이자 사회의 어른으로서 청년변호사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어떤 직업이든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어려움이 교 차되면서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당당히 사회에 발을 디딘 청년 변호사들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늘 초심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왜 변호사가 됐는지 그 근원에서 고민을 풀어가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